- 팔만대장경 앞뒤 17만4000여 판
- 꼬박 7년간 찍은 '고행' 경험도

- 한 자 한 자 잘 보이게 찍으려면
- 조명 설치·후보정 작업도 중요

풍경사진, 인물사진, 보도사진 등 사진이 다루는 소재는 무궁무진하다. 하지만 유산을 '기록'하는 사진가는 생소하다.

하지권 사진가가 부산 서구 동아대 부민캠퍼스 석당학술원에서 '고려사'를 한 장씩 촬영해 데이터베이스로 만들고 있다. 서순용 선임기자 seosy@kookje.co.kr

하지권(46) 사진가는 최근 본거지인 경기도 광주를 잠시 떠나 부산 서구 동아대 부민캠퍼스 석당학술원 한 편에 임시 스튜디오를 차렸다. 부산 울산 경남에 산재한 불교경전과 '고려사' 등 기록유산을 한 장 한 장 촬영해 데이터베이스로 집적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스튜디오에선 조명이 '팟'하고 터지는 소리밖에 들리지 않는다. 집중 또 집중이다.

하 작가가 하는 일은 교육부가 지원하는 동아대 인문역량강화사업의 하나로 동남권 기록유산을 발굴·보존·연구하기 위한 원천자료 집적 과정이다. 동아대는 올해부터 3년간 여름·겨울방학 동안 지역 사찰의 불경과 주요 기록유산을 촬영해 데이터베이스로 정리한다. 이 사업이 마무리되면 실물을 직접 보지 않고도 고서를 활용해 교육과 연구를 수행할 수 있어 큰 효과가 기대된다.

그가 기록유산을 촬영하는 건 처음이 아니다. 첫 작업이자 가장 대단한 경력은 2007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지정된 경남 합천 해인사 팔만대장경 촬영이다. 2000년부터 2007년까지 7년간 주5일 하루 8시간씩 해인사 장경각에서 팔만대장경의 앞뒷면을 각각 기록했다. 해인사 장경판전 8만7000여 판(사간판 포함)의 앞뒷면 총 17만4000여 판을 촬영했다. "네온사인을 보고 싶던" 서른 살 무렵 청춘에겐 고행과 같은 시간이었다. 하 작가의 7년 수행 덕분에 연구자를 포함한 누구나 '해인사 팔만대장경 홈페이지(http://i80000.or.kr)'에서 원판 이미지를 클릭 한 번으로 볼 수 있다.

"월간 '샘이 깊은 물' 사진기자로 일하다 사진 스승인 고 박보하 선배님의 제안으로 팔만대장경을 촬영하게 됐어요. '샘이 깊은 물'에서 줄다리기, 강강술래, 산조, 녹차 등 유형·무형 문화재를 다뤘기 때문에 매력을 느꼈죠. 그런데 7년이나 걸릴 줄은 몰랐어요.(웃음)"

사진가 하지권

그는 팔만대장경을 촬영하면서 일본 교토 남선사에 있는 고려의 초조대장경, 화엄사 화엄석경 등도 촬영했다. 그의 경력은 이 분야에서 독보적이다. 그가 문화유산을 사진으로 기록하는 데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점은 "잘 보이게 찍는 것"이다. 팔만대장경이나 고서를 촬영하는 일이 단순해 보일 수 있지만 조명과 소프트웨어에 대한 이해 없이는 좋은 사진이 나오지 않는다. 팔만대장경은 검게 옻칠이 돼 있다. 한 자, 한 자가 잘 보이도록 깨끗하게 기록하려면 조명 등 장비를 섬세하게 조율하는 노하우와 후보정 소프트웨어를 다루는 기술이 매우 중요하다.

여기에 "역사를 사랑하는 마음"을 담는다. 하 작가는 "왜 이 기록유산을 찍는지 역사를 이해하려 노력하면 천 년 이상 떨어진 존재와의 거리가 가까워져 좋은 결과물이 나온다"고 말했다.

하 작가는 사찰과 깊은 인연으로 자연스럽게 불교 전문 사진가의 길로 들어섰다. 2015년 '절집', 2016년 '절집 두 번째 이야기' 개인전으로 사진계의 주목을 받았다. 지난해 10월에는 대한불교조계종이 한국의 전통 산사를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하기 위해 발간한 사진집 '한국의 전통 산사'의 사진을 맡았다. 현재 월간 '해인'의 사진편집위원이자 프리랜서 사진가로 활동한다.

박정민 기자 link@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