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0년간 제도권 교회서 목회 활동
- 2014년 공동체 좁은길교회 시도
- 목사가 일방 이끄는 예배서 탈피
- 가난한 이웃 돕고 사회활동 참여
- 민주항쟁사업회 등서 사회운동
- 촛불집회·소녀상 세우기 힘보태
- 3월 새로운 교회 차근차근 준비
박철(62) 목사는 30년간 몸담았던 제도권 교회를 나와 '거리의 목사'로 살아가고 있다. 그는 왜 이런 흔치 않은 길을 걷게 됐을까. 최근 에세이집 '낙제 목사의 느릿느릿 세상 보기'(신앙과지성사)를 펴낸 박 목사를 만나 목회 활동 이야기를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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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철 목사(오른쪽)가 아내와 함께 어둠을 밝히는 촛불을 들고 서있다. 장영식 사진가제공 |
박 목사의 에세이는 짧은 글로 구성됐다. 첫 글 제목은 '아, 나는 낙제 목사다'이다. 스스로 낙제 목사라 칭하는 이유는 제자들의 발을 씻겼던 예수의 모습으로 살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고백한다. "목회자의 삶이란 한마디로 '섬김의 삶'이다. 나는 그렇게 살지 못했다. 점수를 매긴다면 낙제목사에 불과하다. 그런데 하느님은 자꾸 당신의 길을 가라고 하신다. 내가 결함과 모순덩어리라는 것을 너무도 잘 알지만 하느님의 명을 거역할 수가 없어 다시 그리스도의 길을 간다."(본문 중)
그가 말하는 '그리스도의 길'은 고통받는 자, 가난한 자와 함께했던 그리스도를 본받는 길을 말한다. 그는 30년간 제도권 교회에서 목회 활동을 했지만, 하느님의 가르침대로, 교인들에게 설교한 대로 살지 못했다고 고백했다.
강원도 철원이 고향인 그는 1985년 강원도 정선을 시작으로 경기도 남양, 강화 교동 등 세 곳 시골교회에서 목회를 했다. "신학교를 졸업할 때쯤 사회운동가가 될까, 정치를 할까 고민했어요. 두 가지 다 내게 안 맞았어요. 사회에 대한 문제의식은 갖되 관념론 말고 몸으로 살아보자는 생각으로 정선에서 첫 목회를 했습니다. 농촌을 삶의 정거장으로 생각하지 않고 농촌 전문가로 살자는 어렴풋한 목표를 가지고 하느님께 올린 기도대로 20년간 시골 목회를 했습니다."
박 목사는 2004년 부산 모 교회 초빙을 받아 아무런 연고도 없는 부산으로 왔다. 새로운 목회를 하고 싶다는 열망이 커지던 시기였다. 옮긴 부산의 교회에서도 무리 없이 10년간 목회를 했다.
"2013년 말이었죠. 조깅을 하다 '죽임'의 문화로 가득찬 시대에 고통받는 사람들과 같은 자리에 서 있지 못하다는 자책감이 밀려 왔어요. 기독교 신앙의 근간인 '살림'에 종사하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었죠." 성경의 '강도 만난 자 이야기'를 떠올렸다.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가다가 강도를 만나 죽어가던 이를 못 본 척 지나가던 제사장이 자기 모습은 아닐지 자문했다. 요즘 말로 하자면 '내가 이러려고 목사 했나' 하는 자각이었다. 그 길로 기도하는 대로 실천하는 목회를 해보자고 결심했다. 2013년 12월 31일 송구영신 예배를 끝으로 '제도권 교회'에서 나왔다.
2014년 1월 중순 '좁은길교회'를 세우고 조금 다른 목회를 시작했다. 교인은 박 목사와 같은 뜻을 가진 30여 명, 예배는 대연동 한 병원 강당을 빌려 했다. 좁은길교회의 예배 방식은 달랐다. 목사가 중심이 돼 설교하고 교인은 듣는 한국 교회의 전통적 예배 방식이 아니었다. 개신교이지만 천주교 찬미가도 부르고, 조용한 가운데 침묵하는 예배를 도입했다. 성찰하고, 일주일간 어떻게 살았는지 대화하며 신앙과 삶이 유리되지 않도록 했다. 그 주간에 사회에서 가장 큰 문제가 됐던 일, 고통받는 사람 이야기를 공동기도문에 넣었다.
"우리나라 교인 만큼 '믿음' 좋은 크리스천이 없어요. 하지만 대부분 예수를 '살진' 않죠. 믿는바 대로, 고백한 대로 살기는 힘드니까요. 예수의 삶을 반추하고, 예수를 몸으로 사는 공동체를 만들고 싶었습니다."
좁은길교회는 행동수칙도 달랐다. ▷삶의 일상 속에서 영성생활을 게을리 하지 않는다 ▷1년 1회 이상 피정에 참석한다 ▷생명, 생태목회에 적극적으로 동의하고 참여한다 ▷삶과 신앙을 하나로 아우르는 진보적 교회 방향에 대해서 찬동한다 ▷한 가지 이상의 NGO 단체를 물질로 돕거나 몸으로 봉사한다 ▷이웃 종교에 대해 열린 마음을 갖는다 ▷사회적 약자나 고통받는 자에 대한 적극적 돌봄에 참여한다 ▷민족의 평화통일 문제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참여한다.
좁은길교회의 첫 공동체는 2015년 말 깨졌다. 30여 명이 같은 보폭으로 새로운 방식의 교회를 만들어 나가기는 쉽지 않았다. 이는 박 목사가 거리로 나선 계기가 됐다. "공동체가 깨지고 굉장히 힘들었습니다. 어느 날 밤, 잠을 못자고 뒤척이는데 위에 계신 분(하느님)이 제 이름을 호명했어요. '많이 힘들었지, 다 내려놓으렴'. 꽉 막혔던 것이 뚫리는 경험이었습니다."
그는 현재 교회가 아닌 부산 녹색당 공동운영위원장, 부산민주항쟁기념사업회 이사, 동구쪽방상담소 운영위원장 등 여러 단체에서 사회운동을 한다. 주말 예배는 사택에서 간소하게 한다. 근래에는 매일 같이 촛불집회에 참여하고, 동구 일본영사관 앞 소녀상 세우기 집회에서도 힘을 보탰다.
박 목사는 "비로소 고통받는 사람들이 있는 현장에서 밀착돼 살게 됐다. 전보다 더 당당하고 아무것도 부럽지 않다"며 "거리가 교회이고, 만나는 사람이 모두 교인"이라고 말했다.
박 목사는 오는 3월 새로운 '좁은길교회'를 준비하고 있다. "전에는 교인들과 깊은 공감대를 만들지 못했던 것 같아요. 속도를 줄여 차근차근 교인들과 함께 '작은 교회'를 만들어 나갈 생각입니다." 박정민 기자 link@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