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문단에서 '글만 파고들며' 살기로 유명한 박정선(사진) 소설가가 사랑을 다룬 장편 소설 '가을의 유머(산지니)'를 출간했다. 지난 30년간 소설가이면서 시와 시조를 쓰고 문학평론까지 한 그는 '백 년 동안의 침묵' '동해아리랑' 등 역사와 해양을 소재로 한 선이 굵은 장편소설을 썼다.
그간 작가의 행보를 봤을 때 중년의 사랑을 다룬 이 책은 조금 특이하다.
'가을의 유머'는 사회적 금기 영역에 있는 기혼 남녀의 연애와 사랑 이야기다. 40대 주부이자 꽃꽂이 작가 승연이 남편과 전혀 다른 남자를 만나면서 그동안 잊고 있던 설렘과 떨림을 찾고 내면 깊숙이 숨겨두었던 욕망을 하나씩 꺼내게 된다. 인간 내면을 가감 없이 드러내는 승연에게서 사회가 만든 규범과 질서의 근엄함에 가려진 인간의 솔직한 모습을 들여다볼 수 있다.
박 작가는 "중년의 사랑을 다뤘지만, 근본적으로 인간 욕망에 관한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그는 "욕망은 인간의 본질에 속한다. 헤겔은 인간에게서 욕망을 제거하면 사회 자체가 성립되지 않는다고 했고, 프로이트도 사회를 욕망의 체계로 보았다"면서 "모든 욕망을 표현하고 살 수 없지만, 이를 배제하고 정형화된 틀에 가둔다면 인간은 사물화된다"고 말했다. 인간의 동경과 이상을 은유한 욕망에 관해 쓰려 했다는 것이 그의 입장이다.
주인공을 40대로 설정한 이유는 인생의 전환점이라서다. 박 작가는 "요즘 100세 시대라 하지만, 인생 전환점이 되는 시기는 40대라고 본다. 40대에 휘청거리면 그 이후 인생이 극과 극으로 갈리기에 어느 때보다 자신을 제어해야 하지만, 또 어느 시기보다 자아의 욕망에 충실히 몰입할 수 있는 나이이기도 하다"고 답했다. 먹고 사는 것만 관심사인 남편과 정반대인 남자에게 빠져드는 승연의 모습이기도 하다.
제목을 '가을의 유머'라고 한 이유가 궁금했다. 사랑에 관한 소설 제목치고 낯설었다. "반전을 거듭하는 결말을 보면 알 텐데 주인공이 남편을 속인 것 같지만, 실은 이야기가 더 있다. 허탈한 웃음이 나오며 인생의 아이러니, 유머러스함을 전하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작가의 말'에서 "이들의 만남은 아무리 순정해도 불륜이다. 불륜을 미화하기에는 아직 역부족임을 고백한다"고 쓴 이유에 대해 그는 말했다. "남녀가 사회가 규정한 범위에서 벗어난 사랑을 할 수 있지만, 아직 용납되지 않는 사회 아닌가. 스스로 속는 것을 알면서도 욕망을 좇는 것, 그것이 인간의 삶 아닐까." 지난해 11월 문예지 '문학중심'을 창간한 그는 사회적 메시지가 분명한 다음 소설을 준비하고 있다. 김현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