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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찬의 대중음악 이야기 <48> 주류음악으로 진입한 은희

맑고 독특한 떨림…70년대를 녹인 '그녀 목소리'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6-12-26 19:39:13
  •  |   본지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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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중음악 시대상 반영한 목소리
- 60년대 트로트 가수와 달리
- 통기타 뮤지션들 다양한 시도

- 가사 꼭꼭 씹는듯한 발음에
- 좌우 바이브레이션 창법의 은희
- 대히트 치자 '스카우트 전쟁'

대중음악은 시대를 반영한다. 그렇다면 대중음악의 어떤 요소가 시대를 반영하는 것일까? 리듬, 가사, 가수의 이미지 등이 있겠지만 시대의 변화에 따라 달라진 대중의 정서를 가장 잘 반영하는 요소는 가수의 목소리라고 하겠다.
'명랑' 1971년 10월호에 실린 은희. 성형수술 전의 귀엽고 복스러운 모습이다(왼쪽 사진). '시사' 1973년 11월호에 실린 은희는 성형 뒤 바비인형 같은 분위기로 바뀌었다. 김형찬 제공
좋은 예가 일제강점기 트로트의 여왕이었던 이난영과 1960년대에 새로운 트로트의 여왕이 된 이미자다. 이 둘은 목소리와 창법이 완전히 다르다. 이난영은 근대화 이전 농어촌의 정서가 담긴 여성의 자아를 반영했지만, 후배 가수인 이미자는 도시화 근대화된 여성의 자아를 반영한 새로운 목소리로 한국 트로트의 근대화를 이룩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1970년대에 들어서 통기타를 들고 나타난 가수들의 목소리는 선배 가수와 본질에서 달랐다. 트윈폴리오만 하더라도 남일해처럼 굵고 중후한 남자다운 목소리도 아니고 배호처럼 내면의 슬픔을 쥐어짜 내는 감정 과잉의 목소리도 아니었다. 바이브레이션은 거의 없고 가늘고 깨끗하며 감정을 절제하는, 어찌 보면 남자답지 못한 목소리였다.

통기타 여성 가수들의 목소리도 선배들과 본질에서 다르기는 마찬가지였다. 뚜아에무아의 여성 멤버 박인희는 서늘한 우수를 느끼게 하는 지적인 목소리로 젊은이들의 사랑을 받았다. 라나에로스포의 멤버이며 이후 솔로로 독립했던 최안순은 옥구슬처럼 맑으면서도 가늘게 떨리는 바이브레이션을 지닌 독특한 목소리의 소유자였다.

비슷한 시기에 등장한 양희은은 맑고 깨끗한 목소리에 당당하고 힘찬 목소리까지 추가하여 이전의 뭔가 사연 있는 듯한 여성 가수의 청승을 완전히 걷어내 버림으로써 적극적이고 독립적인 새로운 여성적 자아의 출현을 알렸다.

이런 여성가수들의 목소리의 변화를 보다 널리 알리면서 주류음악권에 진입해 성공을 거둔 사람이 은희였다. 제주도 출신인 은희는 1970년부터 서울의 살롱가에서 노래를 부르다가 한민을 만나 1970년 8월부터 라나에로스포로 연습을 시작했다. 12월 1집 녹음을 하고 곧바로 한민과 의견차로 탈퇴했는데 1971년 1월에 발매된 라나에로스포의 1집 음반은 '사랑해'가 대히트하면서 노래 목소리만 은희의 것이 되어버렸다.

하지만 그 덕분에 은희는 가능성을 인정받아 1971년 7월 자신의 독집을 발매해 '꽃반지 끼고'가 대히트하여 연말까지 7만 장 판매라는 홈런을 날리게 된다. 이런 성과로 1971년 MBC 10대가수상에서 신인상을 받게 된다. 이 음반을 취입할 당시 은희의 모친이 호랑이가 구름을 타고 하늘로 올라가는 꿈을 꾸었다니 길몽이 실현된 셈이었다.

은희의 목소리는 정말 독특했다. 맑고 깨끗하면서도 샹송처럼 지적인 느낌을 주는 매력을 지니고 있었다. 가사를 하나하나 꼭꼭 씹어서 발음할 때의 매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은희의 바이브레이션은 아래위로 수직적으로 떨리는 것이 아니라 좌우로 수평적으로 떨리는 새로운 차원이었다.

이런 은희의 매력이 주목을 끌자 음반업계에서 은희에 대한 스카우트 경쟁이 벌어졌다. 은희는 그랜드 레코드가 1년반 동안 월 1만 원에 계약을 하고 발매한 1집이 대히트를 했음에도 자신에게 대접이 소홀한 것에 섭섭함을 느끼던 차에 오아시스 레코드에서 전속금 120만 원에 섭외가 들어왔고, 이에 질세라 지구레코드에서 전속금 140만 원을 제의하자 그랜드 레코드에 계약종료를 통보하고 지구와 이중계약을 맺어버렸다.

은희는 목소리만 독특한 것이 아니라 이미지도 남달랐다. 강렬한 이미지의 빨간색을 가장 좋아했던 은희는 빨간색 롱드레스를 즐겨 입었고 400여 벌의 무대의상에 20여 켤레의 구두를 소유했다. 외모에 대한 관심도 남달라서 1972년 눈과 코를 성형수술한 후 바비인형 같은 모습으로 변신해 귀엽고 복스럽던 과거의 모습과 작별했다.

1집에서 은희는 통기타 반주를 주로한 음반을 취입했지만 2집부터는 홍현걸, 박춘석, 남국인, 정민섭 등의 기성 작곡가들에게 곡을 받아 음반을 발매하면서 통기타가수의 이미지에서 일반 대중가수의 이미지로 변신했다.

은희는 1975년 미국으로 건너가 1976년 재미교포와 결혼해 패션 공부를 하고 1985년 돌아와 제주도에서 미용실을 하다가 1988년 강남에서 의상실을 했으며 1991년부터는 제주의 전통 옷감인 갈옷을 개발하여 판매하는 일을 하고 있다.

한국의 통기타음악은 1960년대 중반 YMCA의 '싱얼롱 Y'와 음악감상실 '세시봉'에서 출발해서 1970년이 되기 전까지는 주류 음악권에 진입하지 못하고 수면 아래서 새롭게 움트는 젊은 층의 음악에 머물고 있었다. 하지만 1970년부터 뚜아에무아, 라나에로스포, 은희 등이 주류 음악권에서 히트곡을 내고 성공함으로써 기성세대의 음악인 트로트와 스탠다드팝과 어깨를 겨누는 젊은 층의 음악으로 통기타음악의 위상을 격상시켰다. 은희의 새로운 목소리와 대중적인 이미지는 이런 상황에 크게 기여했다.

지난해 10월 본인의 첫 저서 '한국대중음악사 산책'을 발매하고 못 다한 얘기를 이 지면을 통해 마음껏 해보는 기회를 갖게 되어 1년간 행복하게 지냈다. 다음 기회에 다른 모습으로 찾아뵙겠다.

대중음악저술가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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