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양희은이 부른 아침이슬은
- 청년이 지향하는 미래를 반영한
- '포지티브'한 힘이 있었다
- 김민기와 양희은의 '아침이슬'은
- 당시 청년대학생의 양면이었다
1969년 '세시봉'이 문을 닫고 1970년 6월 서울 YWCA에 '청개구리'라는 요일별 프로그램이 개설됐다. 수요일의 '아베크리' 라는 프로그램은 통기타음악의 주요 무대였다. 방의경, 김민기, 김광휘, 임문일(CBS PD), 송창식, 윤형주, 김세환, 서유석, 투코리언스, 쉐그린, 라나에로스포 등이 때때로 여기에 들러 청중과 호흡했다. 여기서는 이제까지 외국 팝송을 그대로 부르던 단계에서 벗어나 가사를 한국어로 번안해 부르거나 스스로 노래를 창작하는 단계로 나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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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70년 양희은(왼쪽)이 노래할 때 김민기가 특유의 자세로 반주하고 있다. 김형찬 제공 |
당시 방송사 TBC TV의 PD였던 이백천은 김민기가 창작곡을 부르게 된 경위를 이렇게 증언한다. "한번은 내가 '청개구리'를 진행하는데 김민기가 불쑥 '영어 좀 쓰지 않으면 안 되나'하고 타박을 주어 무안해서 내 얼굴이 벌게진 적이 있었다. 다음 주에 김민기가 와서 밥 딜런의 'Don't Think Twice, It's All Right'을 부르기에 '영어 노래 말고는 없을까'라고 응수했는데 그 이후에 김민기가 창작곡을 부르는 것을 보게 되었다."
김민기의 창작곡 전환에 대한 또 다른 증언은 CBS의 최경식이 했다. 최경식은 1970년 5월 7일부터 CBS 라디오에서 '영840'이라는 젊은이 취향의 음악신청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그는 '청개구리'에서 김민기의 뛰어난 노래를 듣고 놀라 다음날 김민기를 방송국으로 초대하여 '아침이슬'을 녹음하여 방송했다. 그 결과 예상을 뛰어넘는 반응을 불러일으켰다고 그는 증언했다. 1971년 1월 김민기는 도비두를 해체하고 더는 전처럼 외국곡을 부르지 않게 된다. 그 사이에 무언가 의식적인 각성이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한국 통기타 음악에서 창작곡이 처음 발표된 음반은 1970년 5월 '뚜아에무아'의 첫 음반이다. 여기에는 이필원이 작곡한 '몰래' '발자국' '약속'이 수록됐다. 이 가운데 '약속'은 방송매체 인기곡으로 떠올랐다. 김민기가 창작곡을 불렀다는 기록은 1970년 말께부터 보인다. 1970년 11월20일 서울 YWCA 강당에서 열린 '청개구리 사운드' 공연에서 도비두가 '친구'를 불렀다는 기사가 있다.('격조 보인 잔치 포크페스티발 청개구리 사운드', 일간스포츠 1970.11.22) 이 곡은 1970년 말께 발매된 '김인배 스테레오 크리스마스 캐롤집'에 '세노야'와 함께 도비두의 노래로 실린다. 이 음반은 김민기의 도비두 시절의 노래를 담은 유일한 음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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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71년 서울 YWCA '청개구리' 공연에 출연한 김민기가 기타를 연주하며 노래하고 있다. 왼쪽은 CBS의 최경식. |
그렇다면 당시 김민기에 대한 평가는 어땠을까
서울대 양화과 2년 재학중인 김민기는 당초 도비두란 듀엣으로 출발했으나 금년초부터 솔로싱거가 됐다. 여학생층의 인기가 높고 '아하 누가 그렇게' '아침이슬' 등 20여곡의 자작노래만 부르는 걸 특징으로 삼고 있는데 음악적인 외형으로만 봐선 봅딜런을 가장 많이 닮은 유망주. 기타솜씨나 작곡수준은 대단히 높으나 정리가 안 된 자기 생각을 노래에 담아보려고 애쓰고 있어 복잡한 작품이 돼 대중과의 거리를 좁히지 못하고 있다. 도둑촌을 묘사한 '귀하에게'는 그런대로 성공한 프로테스트 송이지만 나머지 작품의 가사가 해괴하게 들리는 것은 자기류로 너무 어렵게 써보려고 애쓰기 때문인 듯.-'한국의 포크스타들(8) 한대수ㆍ김민기', 일간스포츠 1971.6.10.
기자가 밥 딜런과 프로테스트 포크를 이해하는 것을 보아 나름대로 음악에 대해 상당한 식견이 있는 듯하다. 하지만 '대중과의 거리'나 '해괴한 가사'라 표현한 점에서 내면세계를 표현하는 김민기의 창작포크음악을 잘 이해하지 못한 듯하다.
김민기는 이런 과정을 거쳐 1971년 11월 CBS 최경식의 도움으로 드디어 첫 음반을 발표한다. 여기 수록된 곡 중에서 '아침이슬' '친구' 정도가 대학생의 사랑을 받는다. 당시 대학생이던 김민기가 부르는 '아침이슬'은 컴컴한 동굴 속에서 낮은 목소리로 울려나와 마치 최면을 거는 느낌으로 다가온다.
그런데 '아침이슬'은 김민기보다 먼저 양희은이 1971년 9월에 자신의 첫 음반에 수록해 발표한다. '청개구리'에서 양희은은 김민기를 만나게 되고 거기서 김민기가 노래하는 '아침이슬'에 반해 1971년 2월 자신의 첫 리사이틀에 김민기에게 기타 반주를 부탁한다. 그 인연으로 김민기는 양희은의 노래 반주를 계속 해주면서 양희은의 음반에 자신의 곡이 수록될 것을 허락한다.
양희은이 노래한 '아침이슬'은 김민기의 느낌과는 전혀 달랐다. 당당하고 또렷한 발성으로 시원하게 뻗어나가는 느낌은 이전의 한국 대중음악 여성가수들의 어딘가 모르게 사연이 있는 듯한 청승을 완전히 제거한 새로운 보컬이었다. 이것은 1970년대의 청년문화세대에서, 적어도 그 집단 내에서는 남녀평등이 이루어졌고 그것을 반영한 새로운 여성적 자아가 출현했음을 알리는 사건이었다.
박정희 군사정권의 탄압이 시작되던 1970년대 초반에 한국의 청년대학생들에게 김민기의 '아침이슬'은 두 가지 이미지가 있었다. 김민기가 부르는 낮고 컴컴한 목소리의 '아침이슬'은 탄압에 직면하여 움츠린 청년들 내면과 자아를 반영하는 네거티브 필름이었고, 양희은 '아침이슬'의 밝고 힘찬 목소리는 그들이 지향하는 세계를 반영하는 포지티브 필름이었다. 대중음악저술가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아 취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