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치를 우째 아노
기장 사람들 미역·몰 나올때
잘 해묵는 음식 아이가

- 생미역과 삶은 콩나물을
- 된장·간장 양념해서
- 콩나물 국물 부은 미역설치
- 된장멸치장국에
- 모자반·콩나물 넣은 몰설치

- 부산해안지방 토속음식
- 잊혀져가는 '표준조리법'

기장 해안 지역 사람들이 즐겨 먹는 음식 중 '설치'란 향토음식이 있다. 부산 기장군에서 나는 해조류를 콩나물과 함께 무쳐 먹는 음식으로, 국물이 자작하게 있는 해초나물무침이라고 보면 되겠다. 설치는 나물무침이라기엔 국물이 넉넉하고, 해초냉국이라기엔 국물이 자작한, 무침과 냉국의 중간쯤에 해당하는 음식으로 그 독특함이 남다르다.

	기장의 향토음식 미역설치.

주로 기장의 특산물인 미역을 식재료로 하는 설치가 발달했는데, 몰(모자반)이나 개내이(몰의 일종)로도 설치를 만들어 먹는다. 미역으로 설치를 만들어 먹으면 '미역설치'이고, 몰을 재료로 쓰면 '몰설치'가 된다. 평소 반찬으로 먹기도 하는데 큰 잔치 때는 빠져서는 안 되는 음식 중 하나이기도 하다.

예부터 기장 바다는 한류와 난류가 만나는 곳으로 바다 생물에게 유익한 유기물이 풍부해 다양한 어족 자원이 다량으로 분포하는 지역이다. 해조류도 예외는 아니어서, 기장 특산물로 높은 품질을 인정받는 미역과 다시마 등을 비롯해 몰, 톳, 서실, 까시리, 개내이, 진도바리, 까막바리 등 다양한 해초류가 풍성하게 생산된다.

그중 생산량이 많고, 맛도 좋은 데다 식감과 향까지 좋은 미역과 몰은 오래전부터 다양한 음식의 재료로 활용됐다. 특히 설치는 해초무침처럼 해초의 식감을 즐기면서도 냉국처럼 국물도 먹을 수 있어, 기장 사람들에게 널리 사랑받았다.

밥반찬으로 제 몫을 다할 뿐만 아니라 입이 깔깔할 때 한 모금 들이켜 입을 다시거나 술 먹고 난 다음 날 후르륵 후르륵 시원하게 마시면서 해장하기에도 안성맞춤이다. 입맛이 없을 때는 자작한 국물에 밥을 훌훌 말아 먹어도 그저 그만이다. 갯가 사람들에게 설치는 가히 '가정 상비음식'이라 할 수 있다.

■잔치 때 빠지지 않은 기장의 음식

	몰설치와 미역설치로 차린 밥상. 사진 최원준

기장시장을 어슬렁거리다 좌판에 기장 해초를 놓고 파는 할머니 옆에 쭈그리고 앉는다.

"모친! 요새 미역이 좋네요?"

"요새 햇미역이 나온다 아이가. 미역이 어리서 보돌보돌하이 좋타."

"기장에서는 미역으로 설치를 해먹는다 하던데요?"

"설치를 우째 아노? 요새 사람들은 잘 모를 낀데… 설치 맛있지. 미역 나올 때나 몰 나올 철에 여(여기) 사람들 잘 묵는 음석(음식) 아이가."

"잔치 때 설치 없으면 안 된다면서요?"

"하모~! 잔치 때 설치가 없시모 안되지. 고기 음석 묵을 때 설치국물로 입도 다시고, 밥반찬으로 묵고, 술안주로도 내고, 약방에 감초지."

할머니는 흥이 나서 설치에 대해 줄줄이 꿴다. 설치의 재료인 기장미역은 '세종실록지리지' 동래현조에 '기장미역을 진상하였다'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15세기 이전부터 기장 특산물이었음을 알 수 있다. '비변사등록'에는 현재 고리 지역인 '화사을포'에 있던 곽전(미역밭)이 왕세자의 소득원이 되었다는 기록도 있다. 여러 기록에 아이를 낳은 왕후가 산후 음식으로 기장미역국을 먹었다고도 전해진다.

처음에는 해안가 바위에 붙은 자연산 미역을 채취했으나 1966년에 미역 양식에 성공하면서 1980년대 이후로는 양식 미역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국내 미역 양식 역사에서 최초의 배양지가 기장 일광읍 학리이다.

기장 미역은 북방형 미역으로 줄기와 엽체가 좁고 두텁다. 식감이 쫄깃하여 '쫄쫄이'라고도 한다. 국을 끓이면 잘 풀어지지 않고, 무침을 해 먹으면 오돌오돌하니 씹는 재미가 있다.

■설치의 표준조리법을 알아보자

	기장미역을 말리는 모습. 국제신문 DB

몰은 '모자반'의 부산말로 우리나라에 30여 종이 자생하는 갈색 해조류다. 톳과 비슷한 모양으로, 향은 냉이처럼 향긋하고 어린 채소처럼 부드러운 느낌이 있다. 주로 무침이나 국으로 먹고 밥 지을 때 함께 넣어 먹기도 한다.

현재 참모자반 등 6종이 식재료로 활용되고 있는데, 칼슘이 풍부해 골다공증 예방에 좋고 당뇨병 등에도 유효하다. 칼로리가 낮아 체중 조절을 위한 다이어트와 피부 미용에도 효과가 있다.

몰을 재료로 한 대표적인 향토음식은 제주의 '몸국'이다. '몸'은 모자반의 제주식 이름이다. 몸국은 돼지고기와 사골을 푹 곤 육수에 몰과 신 김치를 넣고 메밀가루를 풀어 뻑뻑하게 끓여낸 제주 토속음식이다. 그 뒤를 잇는 음식이 기장의 '몰설치'가 아닐까 한다.

기장군농업기술센터에서 펴낸 '기장의 향토음식'에 설치에 관한 설명과 조리법이 자세히 나와 있다. '부산 기장 지역의 토속 음식인 설치는 국물이 자작하게 있는, 해조류를 이용한 나물로 시원한 맛이 있으며 잔치나 행사에 빼놓을 수 없는 음식'으로 기록했다.

미역설치는 '생미역과 삶은 콩나물을 양념(된장, 국간장, 다진 파와 마늘, 참기름)으로 무친 다음 콩나물 국물을 부은 것이다'라고 소개한다. 재료로는 생미역과 콩나물을 준비하고 소금, 된장, 국간장, 다진 파와 마늘, 땡초, 참기름 등 양념도 준비한다. 우선 생미역을 숨이 죽을 때까지 주물러 씻어 5㎝ 길이로 자르고, 콩나물은 씻어 물기를 뺀다. 냄비에 콩나물, 물, 소금을 넣고 삶아서 건져 두고, 국물은 식힌다. 미역과 콩나물에 갖은 양념을 넣어 무친 후 콩나물 국물을 자작하게 부어 먹는다.

몰설치 조리법도 상세하게 나온다. '된장을 푼 멸치장국 국물에 데친 모자반, 쌀뜨물에 삶은 콩나물, 다진 파·마늘, 참기름, 깨소금을 넣고 소금 간을 한 것이다. 고춧가루나 고추를 다져 넣기도 하고, 식초를 넣기도 한다'라고 소개돼 있다.

식재료는 모자반과 콩나물, 쌀뜨물, 멸치장국 국물(멸치·다시마·물), 된장, 다진 파와 마늘, 소금, 참기름, 깨소금 약간을 준비한다. 먼저 콩나물을 씻어서 쌀뜨물과 함께 삶는다. 몰은 깨끗이 손질하여 끓는 물에 데친 후 찬물에 헹궈 건진다. 멸치장국 국물에 된장을 푼 뒤 콩나물, 모자반, 다진 파, 다진 마늘, 땡초, 참기름, 깨소금을 넣고 소금으로 간을 하여 먹는다.

■해안 지역 음식문화 잘 보여줘

이 조리법대로 설치를 직접 만들어 본다. 뜻밖에 간편하고 쉽다. 주부들에게는 손쉽게 뚝딱 만들 수 있는 음식이겠다. 미역설치를 맛본다. 생미역의 신선한 향이 그대로 살아있어 청량하다. 국물 한 술 뜬다. 된장을 푼 삼삼한 국물이 구수하게 입안으로 퍼져난다. 미역설치 한 젓가락 입에 넣는다. 미역생채의 향긋한 해초향과 콩나물의 아삭한 식감이 어우러진다. 식욕을 돋게 만드는 음식이다.

몰설치도 맛본다. 삼삼한 미역설치와는 달리 국물이 진하고 바다 향이 물씬 난다. 푸르스름한 몰이 식욕을 자극한다. 설치 한 입 맛본다. 몰이 사각사각 씹히고, 콩나물도 아삭아삭하다. 미역설치와 몰설치를 번갈아 먹어본다. 숟가락 갈 때마다 흥미진진하고 젓가락 갈 때마다 흔쾌하다. 이러구러 번갈아 먹다 보면 질리지도 않고 밥 두어 그릇은 게눈 감추듯 먹겠다.

기장 사람들이 즐겨 먹던 반찬이자 잔치 음식인 설치. 부산 토속음식으로 해안 지역 음식문화를 제대로 반영하는 독특한 조리법의 음식이다. 해서 그 조리법을 자세히 기록해 두고자 하는 뜻에서 '표준조리법'을 인용해 보았다. 한 번쯤 요리해 먹어 보면 그 또한 별미가 아니겠는가.

동의대 문예창작학과 겸임교수

※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아 취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