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학생들이 '팝송 경연'을 하던
- 세시봉 통기타 시대가 저물었다
- 직접 만든 곡에 자아를 담아
- 저항과 성찰을 노래하는
- 김민기가 홀연히 나타났다
비록 밥 딜런은 "선약이 있다"는 이유로 다음 달 10일 노벨문학상 시상식에는 참가하지 못한다고 밝혔지만, 그는 음악인으로서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받는 사람이다. 음악인 밥 딜런이 노벨문학상을 받게 된 것은 그가 평생 추구한 음악의 중심이 포크음악이었기 때문이다. 포크음악이란 자신의 내면과 세상에 대한 얘기를 간단한 어쿠스틱 악기 반주로 표현하는 음악 장르를 말한다. 그러다 보니 포크음악은 가사를 쓰는 태도가 무척 중요하고, 결국 포크음악에서 가사는 문학 못지않은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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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70년대 초반의 김민기. 불만에 가득찬 듯한 특유의 눈매가 인상 깊다. 김형찬 제공 |
밥 딜런은 1960년대부터 미국의 민속음악인 포크를 현대화하는 과정에 기여했다. 모던포크라는 새로운 음악과 그의 탁월한 가사가 만나 변화와 개혁의 시대였던 1960년대 미국 사회를 표현했다. 밥 딜런 이전까지 오락과 위안에 그쳤던 대중음악은 성찰과 비판의 새로운 영역으로 나아갔다. 이런 밥 딜런의 음악은 한국에서 1960년대 후반에 통기타음악이 형성될 무렵 도입됐지만, 그것의 의미를 주목하고 음악으로 만들어낸 한국 음악인은 드물었다.
한국에서 통기타음악은 1960년대 중반부터 청년 대학생들이 기성세대 음악과 구분되는 대중음악인 팝송을 통기타를 들고 부르면서 시작됐다. 그런 대학생 가운데 재간꾼들이 서울의 음악감상실 '세시봉'에 모여들어 저마다 솜씨를 자랑하기 시작하던 때가 1964년부터다. 이때는 비틀즈 음악, 컨트리, 스탠다드팝, 포크 등 통기타로 반주할 수 있는 음악은 전부 동원되는 상황이었다.
밥 딜런의 음악이 이미 한국 음악인들에게 인지되고 불렸다는 증거는 여럿 있다. 한국 최초 록그룹 키보이스는 1966년 두 번째 음반에서 밥 딜런의 명곡 'Blowin' in the Wind'를 번안한 '바람아 너는 아느냐'를 수록했다.(키보이스는 사랑의 노래로 가사를 바꾸어버렸다) 이 곡은 1969년 트윈폴리오의 첫 음반에서도 '바람 속에'라는 제목으로 수록됐다. 이런 사실은 밥 딜런의 음악이 팝송의 일부분으로 수용되었음을 보여준다.
밥 딜런의 음악은 아니었지만 밥 딜런과 같은 태도로 직접 작사 작곡하여 1969년 9월 19일 발표회를 했던 한대수의 등장은 아마도 통기타 음악계에 큰 충격이었을 것이다. '세시봉'에서 인기 있다고 하는 통기타 음악인들이 모두 모여 한대수의 공연을 보고 자기들의 음악은 외국 음악의 어설픈 모방에 불과함을 깨달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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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71년 청평페스티벌 때 모습. 앞줄 왼쪽부터 양희은, 임문일 DJ, 김민기, 이백천 PD. 뒷줄 검은 안경 쓴 가수가 이용복. |
그러나 김민기는 달랐다. 그는 밥 딜런의 음악을 키보이스나 트윈폴리오처럼 팝송의 일부분으로 수용하지도 않았다. 한대수처럼 미국에서 배우지도 않았다. 한국 사회에 사는 한 젊은이에 불과했지만, 그는 이미 내적 성찰의 태도로 음악을 만들고 있었다. 김민기가 처음 작곡한 때는 고등학교 2학년이던 1967년이다. '가세'란 노래의 가사는 "비가 내리누나 나 혼자 가고프나 함께 어울려 같이 간들 어떠하리 가세 산 너머로 비 개인 그곳에 저 군중들의 함성소리 들리잖나"라는 놀라운 수준이었다. 한국의 밥 딜런은 이미 1967년에 탄생한 셈이다.
김민기의 곡 중 널리 불리는 '친구'는 그가 고교 3학년 때 작곡했다. 보이스카우트 대원들과 동해안에 야영 갔다가 한 사람이 익사하는 바람에 즉시 서울로 돌아오던 야간열차에서 참혹한 심정을 가사에 담았다. 이 곡은 1970, 80년대 학원사태(학생운동)로 대학을 떠나야 했던 동료들을 생각하며 부르는 노래로 대학생의 사랑을 받았다. 곡의 화성과 가사의 수준은 고등학생이 지었다고 할 수 없을 정도의 놀라운 수준인데, 천재라 할 수밖에 없다.
김민기는 1969년 서울대 서양화과에 입학한다. 틀에 박힌 미술수업이 마음에 들지 않아 1년 낙제하는데 1970년 봄에 고교 동창 김영세가 찾아와 같이 노래하자고 해서 '도비두'란 이름의 듀엣을 결성한다. 그런데 무슨 이유인지 본인이 작곡한 곡은 부르지 않고 외국곡을 부르고 다녔다. 도비두가 불렀던 곡은 다음과 같다. 밥 딜런의 'Blowin' in the Wind' 'Don't Think Twice It's All Right', 피터 폴 앤 메리의 'Weep for Jamie' 'Three Wavens' 'Old Coat' 'It's Raining', 존 바에즈의 'Portland Town'.
김민기는 미국의 모던포크 중에서도 '프로테스트(protest·저항) 포크'의 핵심이라 할 음악인들의 곡을 택해왔던 것이다. 고교 2학년 때부터 이런 수준의 곡을 작곡한 김민기로서는 당연한 선택이었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김민기는 여느 통기타 음악인들과 출발부터 달랐다.
대학생이 팝송 부르기 경쟁을 했던 '세시봉'이 1969년 5월 문을 닫은 뒤 1년이 지난 1970년 6월, YWCA에 '청개구리'라는 문화공간이 문을 연다. 여기 모인 대학생들은 '세시봉'에서와 달리 직접 작사 작곡한 음악을 선보이며 경쟁했다. 한국의 통기타음악이 몇 년 세월을 거치며 포크음악으로서 정체성을 인식한 것이다. 여기서 김민기의 진가가 드러나기 시작하였다. 대중음악저술가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아 취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