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국 성공회가 전세계 설립
- 신선대부두엔 1973년 문열어
- 배 위에서 겪는 법적문제 등
- 종교 서비스 넘어 각종 지원
- 부산교구 노철래 신부 근무
- "선상미사 하면서 나도 행복"

"어느 나라에서 왔어요? 한국에는 얼마 만에 온 거예요? 뭐 불편한 건 없어요?"

노철래 신부가 '플라잉엔젤선원센터'를 방문한 선원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서순용 선임기자

대한성공회 부산교구 노철래(시몬) 신부가 필리핀 출신 선원에게 영어로 다정하게 말을 건다. 노 신부와 선원이 있는 이곳은 부산 남구 신선대부두 정문 앞 '플라잉엔젤선원센터'. 일반인은 잘 모르지만, 선원센터가 이곳에 자리를 잡은 지 벌써 43년째다.

플라잉엔젤선원센터는 1835년 영국 성공회 존 애쉴리 신부가 잉글랜드와 웨일스 사이 브리스톨 해협에 정박해 있는 배들을 방문하면서 시작됐다. 신부는 육지와 격리된 생활로 고통받는 선원들이 교회의 보살핌을 받지 못한다는 걸 알고 선원을 위한 활동을 시작했다. 신부의 헌신적인 활동이 영국의 여러 항구에 알려지면서 1856년 성공회 플라잉엔젤선원센터가 공식 출범했다. 현재 선원센터는 세계 260여 항구에서 국적이나 종교에 관계없이 모든 선원에게 '할 수 있는 모든 지원'을 하고 있다.

신선대부두 정문 앞에 있는 선원센터.

신선대부두 플라잉엔젤선원센터는 1973년 문을 열었다. 1974년 창설된 대한성공회 부산교구보다 1년 먼저 지역에 자리를 잡은 것이다. 지금은 옛 신선대부두 경비초소에 입주해 있지만 16년 동안은 현재 건물 바로 앞에 놓였던 컨테이너 가건물에서 운영됐다.

이곳은 대한성공회 부산교구가 아닌 영국 성공회 본부가 직접 운영한다. 선원센터 운영에 필요한 모든 비용은 본부가 지원한다. 부산교구 소속인 노 신부는 2002년부터 선원센터에 장기 파견을 나와있다. 한국 신부가 선원센터에 정식으로 파견된 건 노 신부가 처음이었다. 노 신부 전에는 영국 신부가 3~5년씩 파견 왔다가 본국으로 돌아가곤 했다.

선원센터 2층에 있는 예배실.

노 신부는 "북미나 호주는 완벽히, 아프리카와 유럽도 반은 재정적으로 성공회 본부에서 독립했다. 한국은 선진국 지표인 OECD 가입국이지만 선원센터에 대한 국가와 사회의 관심도가 낮아서 재정적 독립이 어려운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부산은 컨테이너 물동량이 세계 5, 6위이고, 선원센터가 부두 바로 앞에 위치해 세계 어느 곳보다 편리하다는 점에서 영국 성공회 본부가 지원을 이어가고 있다. 후원조직인 '플라잉엔젤 친구들'을 만들고, 시민을 대상으로 무료 인문학 강좌를 여는 등 지역과 함께하려는 노력을 하는 점도 높게 평가받는다.

부산을 비롯한 전 세계 플라잉엔젤선원센터는 선원들에게 크게 3가지 서비스를 제공한다. 무료 와이파이를 제공하고 전화카드나 기념품을 파는 등의 실질적인 지원, 감정적 스트레스를 받아주고 각종 법적인 해결을 돕는 정신적 지원, 그리고 종교 서비스다. 성공회에서 운영하지만, 종교색은 강하지 않다. 불교도인 미얀마인, 천주교도인 필리핀인, 개신교도인 미국인도 부담 없이 선원센터를 이용할 수 있다. 다른 종교를 가졌더라도 영적인 어려움이 있을 때 함께 기도하고 위로해주는 것이 선원센터가 말하는 종교 서비스다.

"일요일에는 센터에서 미사를 해요. 몇 년 전만 해도 평균 15명이 참석했는데 요즘은 2, 3명밖에 안 나옵니다. 해운 경기가 나빠져 부두에 1박 2일 머무르던 선박이 6시간 정도 잠깐 머물다 돌아가요. 기도할 시간도 없는 거죠. 세대가 바뀌면서 종교적 색채가 옅어진 것도 원인입니다."

선원센터는 임금체불이나 언어폭력, 스트레스 등 선원들이 배 위에서 겪는 각종 문제에 발 벗고 나선다. 임금체불로 배에서 오도가도 못하게 된 우크라이나 선원들을 국제운수노조연합회(ITF)에 연결하는 국제적 공조로 도운 사례가 있다. 최근에는 한진해운 사태가 조속히 해결되도록 선원들의 처지를 영국 성공회 본부에 전달해 국제적인 여론을 조성하기도 했다.

노 신부와 선원센터 직원 2명은 주6일 배에 직접 올라 선원을 만나는 '배 방문'을 한다. 집을 나와 1년 가까이 타국 생활을 하는 선원들에겐 노 신부가 곁에 있어 주는 것만으로도 힘이 된다. 1년에 선원센터를 방문하는 선원은 연 6000명, 배 방문을 통해 만나는 선원은 연 1500명이다.

노 신부는 "선원을 돕는 것 같지만, 사실은 선원에게 도움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겨울에 태평양을 건널 땐 산만 한 파도를 넘어야 합니다. 그때 할 수 있는 건 기도밖에 없죠. 선원들에게 종교는 생명입니다. 선원들 초청을 받아 배에서 미사를 할 때가 있습니다. 밀떡을 받는 선원들의 손이 떨리는 걸 봤습니다. 생명의 빵이고, 그리스도의 몸이었죠. 전율을 느꼈습니다. 이것이 미사구나. 하선하면서 행복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10년도 넘게 선원센터에서 활동할 수 있는 동력입니다."

박정민 기자 link@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