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심사위원님께 절부터 해야 한다. 수상이 뜻밖이라고 놀란 눈을 치켜뜨고 부산스럽게 겸손을 떨긴 싫다. 갈 길이 멀고 목이 타는 보따리장수에게 찬물 한 대접 크게 주신 것을 감사하고 오래 기억할 것이다.
그러니까 오늘까진 딱 사십 년이 걸린 셈인가. 전라도 땅에서 무작정 낙동강다리를 건너와 몸을 둘 곳은 노동 현장밖에 없었다. 눈높이를 조금만 낮추면 그럭저럭 밥은 먹을 수 있었다. 그래도 밥만 먹고 살아야 하나.
하루는 동아대 근처 사하 하단이란 곳, 김정호의 하얀 나비 노래가 은은하게 울려 퍼지는 갈대숲에서 깔깔대며 담소하는 남녀 대학생 패거리를 보면서 괜히 혼자 울분에 사로잡히고 있었다. 뭐냐, 같은 젊음인데 저들은 왜 한껏 푸르지.
젊음은 스스로의 발굴이라 생각하면서도 내 공부는 너무 빈약했다. 어릴 때 오일장터에서 보던 판소리 마당, 자라면서 라디오를 통해 흑인 영가와 콧소리로 도배하던 샹송을 들으면서 한사코 옆길로만 새던 것을. 안 되겠다 무엇이라도 시대에 복무해야지, 오기를 주체할 수 없어 보수동 골목에 가서 산 시집들을 읽으며 여기까지 오는 동안 나를 다잡아 준건 사변이 너무 거칠다는 주변의 교화를 감사하게 받아들이며 자기 갱신이 있어야 한다는 믿음뿐이었다.
아무리 빼어난 시도 결국은 거기까지일 뿐이다. 엉뚱한 장인정신이 있는 사람들에 의해서 세상은 얼마든지 바뀔 수 있다. 그러면서 나는 아직 멀었다고 생각한다. 지평 너머엔 새로운 시의 市場이 벌써 열리고 있을 것이다. 더군다나 이순 중반을 넘는 황혼 무렵, 바쁘다 바빠, 등짐을 가득 지고 긴 침을 흘리는 낙타의 뒤를 바짝 따라붙어야겠다.
◇서규정 시인 약력
-1949년 전북 완주 출생.
-1991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시 부문 '황야의 정거장' 당선.
-시집 '황야의 정거장' '하체의 고향' '직녀에게' '겨울수선화' '참 잘 익은 무릎' '그러니까 비는, 객지에서 먼저 젖는다' '다다' 등 7권.
-2001년 한국해양문학상, 2010년 부산작가상 등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