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세상을 향해 '거울아! 이 세상에서 누가 제일 예쁘니?'를 반복적으로 묻고, '당신이 가장 예쁩니다'는 대답을 듣고서야 만족해하는 삶을 살고 있다. 어쩌면 개인의 생애나 인류의 역사는 '당신이 가장 예쁩니다'의 유효기간을 늘리기 위한 끝없는 노력의 일환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어쩌랴! '당신이 가장 예쁩니다'의 근거가 되는 용모, 총명, 돈, 세력, 명예는 잠시 일어났다가 사라진다. 국가와 민족을 포함한 다양한 공동체 역시 이 생멸의 법칙에서 예외가 될 수 없다.

이 법칙은 냉정하다 못해 잔인하기까지 하다. 불가항력이다. 불교적 실천은 이 무상한 생멸의 법칙을 지금 당장 유감없이 수용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그것은 자포자기에 가까운 완전한 내려놓음을 수반한다. 그런데 이렇게 완전히 내려놓고 나면 완전히 새로운 탄생이 일어난다. 피는 꽃, 떨어지는 낙엽이 한결같이 부처의 세계를 웅변하는 일이 일어난다.

그리하여 우리는 불법 속에서 성인과 하나로 만난다. 하나로 만난다는 것은 부처와 '나'가 따로 나뉘지 않는다는 뜻이다. 옛 성인들도 진여자성에 계합하였으므로 성인인 것이고, 불법을 실천하는 사람도 그것과 하나가 되므로 조사와 한 뜰에서 노니는 것이다. 옛 성인과 불법의 실천자가 진여자성 속에 노닐어 너와 나의 구별이 없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조사의 뜰은 나라는 개인성을 내려놓을 때 열린다. 그 진여자성의 법은 석가가 됐든 누가 됐든 한 개인이 이해할 수 있는 어떤 대상물이 아니다. 나라는 개인이 불법을 이해하려 한다면 그것이 아무리 장한 노력을 수반하더라도 헛되고 어리석다. 우주법계가 전체로서의 바다라면, 개인은 접시다. 작은 접시에 바닷물을 담을 수 없다. 그래서 역대의 성인들은 자아의 접시를 깨버렸다. 나라는 접시, 안다는 접시, 진리라는 내용물을 함께 박살내버렸다. 그리하여 눈을 뜬 당사자도 없고, 새로운 앎도 없게 된다.

옛 성인의 가르침 역시 나를 내려놓은 자리에서 실천해야 한다. 말하는 성인 따로 있고 듣는 내가 따로 있으면 그 가르침은 들을 수 없다. 불이중도의 법을 이원 분별의 자리에서 들으려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법을 듣는 사람은 마음을 청정하게 해야 한다. 둘로 나누기를 멈추는 일이 청정이다. 선과 악을 나누지 않는 일이 청정이다. 나와 성인을 둘로 나누지 않는 것이 청정이다. 나를 세워 법을 소유하려 하지 않는 것이 청정이다. 바로 이러한 때 성인의 가르침이 정수리로 쏟아져 들어오고 남김없이 수용된다.

생각할 일 없이 고개의 끄덕임만 있는 진정한 청법이 성취된다. 진정한 청법은 지금 당장 진리에 맡기는 진정한 실천을 수반한다. 그리고 이때 완전한 헌신에 대한 간절한 발원이 일어난다. 원래 자아 집착의 뿌리는 깊고 깊어 새로운 분별의 싹을 틔운다. 그러므로 진리에 귀의한 사람은 완전한 헌신의 발원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옛 성인과 같은 마당에서 만나 완전한 일치가 일어나 될 때까지 멈추지 않겠다는 발원이다. 그것은 자아에 대한 집착, '당신이 가장 예쁘다'는 말에 대한 기대를 완전히 내려놓겠다는 자기포기의 맹세이기도 하다.

동의대 교양대학 학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