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얀손수건'이 불러일으킨
- 여고생·여대생 기록적인 팬덤
- 개인사정으로 해체할 때조차
- 고별공연을 6번이나 할 정도로
- 젊은층의 유례없는 사랑 받아
트윈폴리오는 1968년 4월부터 TBC 라디오 '브라보 선데이'에 고정 출연했다. 이때 연출을 맡았던 조용호 PD는 그들을 음반자료실로 데리고 가서 나나 무스쿠리의 노래 '하얀손수건'을 들려주며 불러볼 것을 권유했고, 송창식이 이를 번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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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잡지 아리랑에 실린 트윈폴리오와 김세환, 윤여정 (1971년). 청년문화 세대 스타들의 모습이다. 김형찬 제공 |
트윈폴리오는 1968년 12월 22, 23일 서울 드라마센터에서 첫 리사이틀 가졌는데 3회 모두 매진됐다. 그것도 모자라 100, 200명이 더 몰려들어 계단에 앉아 공연을 봤다. 게스트로 최영희, 한대수, 박상규, 장영규, 피세영, 이석이 초대됐다. 모여든 청중은 주로 여고생, 여대생들로 트윈폴리오의 팬덤이 시작되고 있었다.
우리나라 보칼팀 중에는 가장 고음의 노래를 부르는 남성 듀엣. 세시봉에서 아마추어로 출발한 이들은 처음에는 트리오로 출발했으나 한 멤바가 군입대로 탈락 현재의 듀엣으로 자리를 잡았다. 히피모양 텁수룩하게 머리를 길러 별명이 히피폴리오. 경희대학 의예과에 다니는 윤형주(22)와 홍대 조각과 송창식(23)으로 구성돼 있다. 이들은 고음의 노래를 시원스럽게 불러 허스키 내지 저음일변도의 우리 가요계에서는 아무래도 이색존재가 아닐 수 없다… 특히 여고생들의 인기를 모으고 있는 이들은 기타연주에 편곡까지 하는 재능을 발휘하고 있다.--'새로운 보칼그룹들 청신한 스타일로 세대교체 이뤄' 동화그라프 69.4, 60쪽
트윈폴리오의 첫 음반은 1969년 6월에 지구레코드에서 김인배 작편곡집 'I Love You'라는 제목으로 발매됐다. 이 음반에는 당시에 인기가 있었던 펄시스터즈를 비롯하여 트윈폴리오, 봉봉, 박연숙 등 가수의 음악도 들어 있다. 겉으로 보기에는 지구레코드사가 젊은이들을 겨냥하여 만든 음반으로 보인다. 그러나 내용을 살펴보면 정작 펄시스터즈는 3곡뿐이고 트윈폴리오의 곡이 6곡이나 차지하고 있다. 당시의 관행에 따라 가장 인기가 있었던 펄시스터즈가 음반의 표지에 등장했지만 실제로는 트윈폴리오의 음반인 것이다. 여기에는 번안곡 '하얀손수건'과 놀랍게도 미국 프로테스트 포크의 거장 밥 딜런의 대표적 히트곡 'Blowin' in the Wind'가 '바람 속에'라는 제목으로 수록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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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트윈폴리오 1집(1969년). |
1969년 가을부터 트윈폴리오는 명동 '오비스캐빈'에서 공연하기 시작하여 각자 한 달 20만 원을 받았다.(당시 대기업 신입 사원 초봉이 14만 원) 이때 송창식은 서울예고 진학 이후 4년간의 떠돌이 생활을 청산하고 광화문 인근에 월세 집을 얻을 수 있었다. 인기가 올라갈수록 윤형주는 학업을 등한시할 수밖에 없었고 결국 연세대 의대에서 경희대 의대로 옮기는 바람에 1학년을 두 번씩이나 하게 되었다. 윤형주가 시험을 앞두고 있을 때는 송창식이 혼자 출연하는 경우도 있었다. 윤형주와 달리 음악에 모든 것을 걸고 있던 송창식은 언젠가 자신이 솔로로 나설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트윈폴리오는 1969년 12월 21, 22일 드라마센터에서 연말 공연을 앞두고 있었는데 돌연 윤형주가 활동 중단을 선언하는 바람에 졸지에 고별공연이 되고 말았다. 트윈폴리오가 '하얀손수건'이란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자 많은 10대 소녀 팬들이 울먹이며 따라 불렀다. 윤형주가 "이제 우리 튄 폴리오를 그만 해체하려 합니다"라고 말하고 송창식이 '떠나야 할 그 사람'을 노래할 예정이었으나 노래 도중에 맞붙잡고 둘이 우는 바람에 장내는 울음바다가 되어버렸다. 공연 때 팬들로부터 가장 많이 들어온 선물이 손수건이었다.
그런데 기이한 현상이 일어났다. 해체 2주가 지나기도 전에 MBC-TV와 TBC-TV에서 각각 2번씩(본방과 재방) 4번이나 방송하고도 TBC-TV는 이들의 고별공연 실황을 재편집하여 '쇼쇼쇼'에 방송함으로써 5번이나 트윈폴리오의 고별공연이 방송을 타게 되었다. 그것도 모자라 부산에서 팬들의 출연요청이 빗발쳐서 1970년 1월 15일부터 4일간 해운대 관광호텔 나이트클럽에서 평소 두 배의 출연료를 받고 여섯 번째 고별공연까지 해야만 했다.
이런 소동은 그저 한때의 해프닝이 아니라 한국 대중음악계에 중대한 변화가 시작되었다는 것을 말하고 있었다. 1960년대 중반부터 한국사회에 등장하기 시작했던 청년문화세대가 찾던 음악이 통기타음악이라는 모습으로 드러났고, 그들이 찾던 대중적 스타 또한 등장했음을 알리는 사건이었다. 이렇게 1969년은 트윈폴리오가 첫 음반을 발표하고 대중적 성공을 거두었고 한대수가 창작곡으로 공연을 가짐으로써 통기타음악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해로 기록된다.
나아가 1969년은 플레이보이컵쟁탈 보컬그룹경연대회라는 록음악 경연대회가 성공적으로 개최돼 청년문화세대의 또 다른 음악인 록음악이 수면 위에 떠오른 해이다. 그리고 클리프 리처드 내한공연이라는 전대미문의 사건이 발생한 해 또한 1969년이기 때문에 1969년은 한국 대중문화가 기성세대에서 청년세대로 이동하는 커다란 분기점이 된 역사적인 해이기도 하다. 대중음악저술가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아 취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