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통기타 문화가 낳은 트리오지만
- 기존 음악적 형식 벗지못해
- 李 입대 뒤 송창식과 윤형주
- 2인조 '트윈폴리오' 결성
- 무겁고 과한 감정 절제하고
- 사운드 가볍고 모던해져
한국에서 통기타음악이 언제 어떻게 시작되었을까 하는 물음에 답하려면 한국에 팝송이라는 새로운 음악문화가 청년문화세대에게 소개되던 시점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1960년대 초반 서울에서 '세시봉' '메트로' '디쉐네'와 같은 음악감상실이 생기고(부산에서도 비슷한 시기에 팝음악을 감상하는 음악다방이 남포동과 광복동에 등장했다) 1964년부터 동아방송에서 DJ가 진행하는 '탑튠쇼'가 매일 팝송을 소개하면서부터 청년들에게 팝송이 최첨단 음악문화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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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69년 월간화보 '동화그라프'에 실린 트윈폴리오 모습. 윤형주(왼쪽)와 송창식이 유니폼을 맞춰 입었다. 김형찬 제공 |
자연히 남보다 앞서가는 마니아나 덕후들이 생겨나기 시작했고 누가 팝송을 많이 아느냐가 세련됨의 척도로 자리 잡기 시작했다. 팝송이라는 새로운 음악문화가 날개를 달게 된 것은 청년들이 통기타라는 새로운 무기를 얻었기 때문이었다. 기성세대가 통기타를 단순히 리듬연주나 트로트 반주에 사용한 반면 청년들은 몇 개 코드를 스스로 익혀 통기타를 들고 자신들이 좋아하는 팝송을 스스로 반주하며 노래부르기 시작했다. 팝송만 많이 알아도 우러러 보이는데 그것을 통기타로 반주하며 직접 노래까지 부르니 그 모두가 가능한 사람은 친구들 사이에 스타로 떠올랐다. 대학가에서 이런 사람은 명물로 통하고 있었는데 그들의 재능과 문화를 선보일 자리를 마련한 곳이 바로 음악감상실 '세시봉'이었다.
매주 금요일 '대학생의 밤'이라는 프로그램을 마련하여 대학가의 재주꾼들을 무대에 올리면서 장안의 좀 논다는 청년들에게 '세시봉'은 필수 코스가 되었고 여기에 등장했던 대학가 재주꾼들 간에 경쟁이 붙기 시작했다. 즉 최신 팝송을 누가 통기타로 멋지게 연주하며 노래하느냐 하는 경쟁이었다.
조영남은 피아노를 치며 성악발성으로 팝송을 멋지게 불러 앵콜이 더 길어지는 현상을 초래했으며, 가난한 수도자 같은 송창식은 기타 반주로 클래식 곡을 불러 새로운 세계를 보여주었고, 엄친아 윤형주는 단정한 모습에 수려한 미성으로 노래하여 여학생들을 까무러치게 했다. 윤형주의 노래가 끝나자 송창식이 다가와서 말을 걸었다. "소리가 참 예쁘네요." 한국 대중음악사에 새로운 장이 열리는 순간이었다.
모방을 통한 경쟁은 창조를 낳게 되고 경쟁은 또한 이합집산을 낳게 되는 것이 세상 이치인지라 '세시봉'에서 상호를 딴 새로운 조합이 등장했다. 트리오 세시봉은 멜로디(송창식), 화음(윤형주), 베이스(이익균)의 3개 파트로 팝송을 편곡해서 불렀는데 이런 3인조의 출발을 기존 가요계에서 보컬그룹이라고 부르는 블루벨스나 봉봉과 같은 편성과 사운드를 갖고 있었다.
하지만 반전은 뜻밖의 기회에 찾아왔다. 1968년 1월 이익균이 갑자기 군에 입대함에 따라 2월부터 어쩔 수 없이 송창식과 윤형주는 2인조로 새출발을 했다. 팀명은 트윈폴리오. 명동 중국대사관 골목에는 외서를 파는 골목이 형성되어 있었는데 여기서 구해보던 'Song Folio'란 팝송 악보의 이름을 따서 두 사람이니까 트윈폴리오로 작명했다.
이 트윈폴리오라는 팀명은 새로운 세대의 새로운 음악적 감수성을 담은 이름이었다. 이시스터즈나 쟈니브라더스와 같은 기존의 보컬그룹처럼 시스터즈, 브라더스를 사용하지 않고 '트윈'이라는 단어로 듀엣임을 표현했다. 여기에다가 '폴리오'는 첨단 미국문화의 상징을 나타내는 단어를 덧붙인 트윈폴리오는 그 이미지 자체가 완전히 새롭고 세련된 느낌을 주는 팀명이었다.
트윈폴리오는 TBC-TV '청춘잼보리' '한밤의 멜로디'에 고정 출연하기 시작했는데 '한밤의 멜로디'는 밤 11시에 시작하여 끝나면 밤 12시 통금이 넘어 어쩔 수 없이 '세시봉'으로 가서 노래 연습과 편곡을 하다 자정을 넘기기 일쑤였다. 겨울엔 연탄을 피워 실내를 덥히고 팔걸이 없는 의자를 붙여놓고 그랜드 피아노 커버를 이불 삼아 같이 잠을 잤다.
이런 과정 속에서 트윈폴리오는 클리프 리처드의 '행복한 아침'(Early in the morning), 비지스의 '내 고향 매사추세츠'(Massachusetts), 해리 벨라폰테의 '자메이카여 안녕'(Jamaica Farewell) 등 팝송은 물론이고 '퐁당퐁당' '따오기' '오빠생각' '등대지기' 등 동요도 편곡해서 불렀다. 정훈희의 '안개', 최희준의 '빛과 그림자', 패티김의 '내 사랑아', 김상희의 '빨간 선인장' 등 가요도 재해석해서 불렀다. 베이스를 맡았던 이익균이 빠지고 송창식과 윤형주가 화음을 맞추었을 때 완전히 소리가 달라졌다. 베이스가 없으니 소리는 더 가벼워지고 얇고 높은 쪽으로 이동했다. 결과적으로 전체의 소리는 이전보다 훨씬 모던하고 세련된 느낌을 주게 되었다. 이것은 당시 한국 청년 대학생들이 기성세대의 무겁고 감정과잉의 노래에서 탈피하여 가볍고 절제된 노래를 원했던 바로 그것이었다. 비로소 트윈폴리오 사운드가 탄생한 것이다.
대중음악저술가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아 취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