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등어 전갱이 숭어 전어에

- 감성돔 돌돔 귀하신 몸도

- 살감시 가지메기 매가리…

- 새끼라고 우습게 볼소냐

- 물고기와의 힘찬 밀당 끝에

- 몇마리 회 떠서 함께 나누는

- 역동성과 넉넉함이야말로

- 부산사람 성정을 닮았다

부산은 동서로 길게 뻗은 해안을 중심으로 바다와 인접한 지역이다. 때문에 부산 사람들은 예부터 바다에 기대 그 삶을 영위하고 발전시켜 왔다. 이는 부산 사회 전반에 걸친 생활문화사에도 절대적인 역할을 바다가 해왔다는 말이다.

특히, 바다에서 생산되는 무궁무진한 식재료와 이를 활용하는 음식문화에 이르기까지, 부산에 끼친 바다의 영향력은 지대하다. 부산의 향토음식 중 태반이 바다의 식재료로 만든 음식인 것만 봐도 능히 짐작할 수 있다.

그중에서도 바다를 즐기고 바다 음식도 즐기는 독특한 생활문화가 있으니, 바다 천렵과 동네낚시다. 갯가 돌 틈 사이의 고둥이나 조개, 해삼, 문어와 성게 등을 채취해 즉석에서 조리해 먹는 '바다 천렵', 가까운 바닷가에서 간단한 낚시장비로 제철 생선을 잡아 그 자리에서 생선회로 떠먹는 '동네낚시'가 그것이다.

■세월낚시, 마실낚시, 생활낚시…

소풍 즐기듯 '세월아~ 네월아~' 하며 낚시를 즐기는 '세월낚시', 동네 어귀 바다에서 마실 삼아 낚시하는 '마실낚시', 고기 몇 마리 잡아 밥반찬 하려고 낚시하는 '생활낚시' 등이 부산 시민에게 사랑받는 '동네낚시'들이다.

동네낚시터에서 잡히는 어종을 일별해 보면 동네낚시를 우습게 볼 일이 아니다. 철 따라 고등어 전갱이 망상어 볼락 용치놀래기 자리돔 숭어 전어 갈치 청어 등의 잡어와 도다리 보리멸 붕장어 양태 노래미 쥐노래미 우럭 광어 등의 바닥고기들이 부산 바다에 진을 치고 있다.

전문 낚시꾼들의 대상어인 감성돔 돌돔 벵에돔 참돔 농어 부시리 등의 중치 급(중간 크기)도 심심찮게 올라온다. 해서 부산 사람들은 성어가 아닌 놈들에게 아명(兒名)처럼 이름을 지어 크기를 구분한다. 예를 들면 살감시(감성돔 새끼), 가지메기(농어 새끼), 매가리(전갱이 새끼), 상사리(참돔 새끼), 모치(숭어 새끼), 풀치(갈치 새끼), 고도리(고등어 새끼), 뺀찌(돌돔 새끼) 등이다.

가을로 접어든 요즘 부산 연안에는 한창 고등어와 감성돔이 붙어 동네낚시꾼들의 가슴을 설레게 하고 있다. 낚싯대만 담그면 쉽게 잡히는 고등어는 동네낚시꾼들에게는 최고의 선물이다. 떼로 몰려오는 고등어를 잡아, 밥반찬으로 구워 먹고 지져 먹는 것이다.

감성돔은 낚시꾼에게 꿈의 생선이다. 워낙 예민하고 까다로운 물고기라 동네낚시꾼들은 잡기 쉽지 않을뿐더러, 일단 낚시에 걸리면 지치지도 않고 끝까지 저항해 손맛을 톡톡히 보여주는 어종이다.

■송도 갯바위에서 즐긴 가을 향연

지인과 함께 송도 부근 갯바위를 찾았다. 낚싯대를 꺼내어 채비를 한다. 밑밥을 솔솔 뿌리니 다양한 잡어들이 모인다. 잠깐 수면 위의 찌가 흔들리더니, 물속으로 쑤욱~! 들어간다. 곧이어 힘찬 챔질. 낚싯대가 반원으로 휘며 꾸욱~꾹, 물속으로 처박기 시작한다. 낚싯대 끝이 팽팽하다.

고등어 떼가 들어왔다. 여기저기서 낚싯대가 활처럼 휘며 '핑핑~!' 피아노 소리를 낸다. 그야말로 폭풍 입질이다. 한참을 고등어들이 미끼를 물고 늘어지더니, 굵직한 씨알의 매가리들이 사납게 찌를 낚아채 가고, 팔뚝만 한 숭어도 묵직한 손맛을 선사한다. 잇달아 술뱅이(용치놀래기), 게르치(쥐놀래미), 돌돔 새끼, 쥐치 등이 얼굴을 보인다. 이렇게 한참의 입질에 어느새 살림망은 다양한 생선들로 가득 찬다.

입질이 잦아든 틈을 타 생선회를 뜬다. 아직 살아 퍼덕이는 싱싱한 놈들이라, 살이 무지개색으로 영롱하다. 한 점 한 점의 횟감들이 거침없는 칼 놀림에 한 접시 '낚시 생선회'로 탄생한다.

고등어는 활어 상태가 아니면 회를 못 뜨기에 낚시꾼이 아니면 먹기 힘든 생선회이다. 씨알이 크지 않아 살이 선홍빛이 돌 정도로 선연하다. 쥐치는 껍데기가 질긴 가죽이라 손으로 죽죽 찢듯이 벗겨내면 유백색 살이 오동통하게 드러난다. 쥐포를 만드는 식재료로도 유명한 쥐치는 밤샘 낚시 후 아침 식사 대용으로 두어 마리 잡아서 먹으면, 끼니를 거뜬히 속일 수 있는 알진 생선이기도 하다.

술뱅이는 표피가 화려하고 미끈거리는 점액질로 쌓여있어 회 뜨기는 상그럽지만 식감이 쫄깃하고 담백하니 좋다. 그렇게 게르치, 돌돔, 매가리 등의 생선으로 '낚시 생선회' 한 접시를 만든다. 생선회 담는 접시로는 휴대용 도마를 활용한다. 도마 위에 톳을 채취해 올리고, 그 위에 큼직큼직하게 썰어낸 생선회를 생선 별로 먹기 좋게 올린다. 도마접시 위에 가을 생선회가 푸짐하게 앉았다.

■낚시생선회의 매력을 물으신다면

'낚시 생선회'는 바다에서 직접 잡아 바로 장만해 먹기에 최고의 생선회 맛을 자랑한다.

바다에서 펄떡이던 재료의 원초적 싱싱함은 물론이고, 대자연 푸른 바다를 배경으로 철썩이는 파도 소리를 들으며, 자연산 생선회 한 점 맛보는 기꺼움 또한 아무나 갖지 못하는 운치와 호사가 아닐 수 없다.

특히 낚시 생선회는 각각의 생선이 가지고 있는 식감과 육즙의 싱싱함은 물론이고 육질의 탱탱함과 생명력이 느껴지는 생선회 본연의 맛이 가득 차 있기에 더욱 그렇다.

가을 하늘은 높고 푸르고, 부드러운 바다 물결은 찰랑이는데, 청량한 바람 한 줄기 생선회 위를 스쳐 지난다. 망망대해를 마주하고 낚시 생선회를 맛본다. 쫄깃쫄깃, 오돌오돌, 살강살강, 보들보들… 온갖 식감의 생선회들이 입 안에서 야단법석이다. 생선회의 다채로운 맛의 향연이 한창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고등어회는 들큰하고 푸릇푸릇한 감칠맛이 제대로다. 게르치회는 살강거리는 싱싱한 식감으로, 온통 입안을 바다 물결처럼 일렁인다. 술뱅이는 쫄깃쫄깃하고, 돌돔은 고소하고, 매가리는 달콤하다. 초장에 푹~! 찍어 먹는 숭어는 또 어떤가? 한 입 크게 넣은 숭어회가 입안을 돌며 온통 퍼덕거린다. 쥐치뼈회는 쫄깃쫄깃, 뽀독뽀독 씹히는 게 그저 그만이다. 모든 바다 것들이 입안에서 오래 뛰어놀며 사람 입맛을 쥐락펴락하고 있는 것이다. 음~! 맛있고도 싱싱한 시간이다. 하여 이 자리는 차라리 신선놀음과 다름 아니다.

■부산의 음식, 부산의 음식문화

바다낚시는 우리 부산 사람들과 참 잘 어울리는 놀이문화다.

자연과 친화하면서도 한계를 극복하고 도전하는, 역동적인 부산 사람의 성정과 많이 닮았기에 그렇다. 펄떡이는 물고기 몇 마리에 만족하고, 직접 회를 떠서 함께 나누는 '여유롭고 넉넉한 품성' 또한 그러하다.

부산 사람들의 성정을 잘 나타내는 음식, 낚시 생선회. 다양한 생선이 각각의 개성 있는 맛깔로, 하나의 화합된 회 한 접시를 만들어내기에, 그 특성조차 부산 사람과 닮은꼴인 부산의 음식인 것이다.

※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아 취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