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요시다 슈이치 소설 영화화
- 도쿄 부부살인 사건 배경으로
- 사람사이 믿음에 물음 던져
- 이상일 감독 "인간문제 다룬
- '불쾌'한 영화도 의미있다"

일본 영화 '분노'(감독 이상일)의 상영이 시작되자, 영화관 안은 이내 공기까지 뻑뻑해지는 듯했다. 객석은 바늘이 하나 바닥에 떨어져도 그 소리를 들을 수 있겠다 싶게 작품에 몰입했다. 관객이 '불편'을 느낄 만한 장면이 잇달아 나왔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이 영화의 주제의식은 끄떡없이 객석까지 전달됐다.

영화 '분노' 이상일(왼쪽) 감독과 배우 와타나베 켄이 7일 오후 부산 해운대구 동서대학교 센텀캠퍼스 컨벤션홀에서 열린 제21회 부산국제영화제 공식 기자회견에 참석해 포즈를 취하고 있다. 서정빈 기자 photobin@kookje.co.kr

이번 부산국제영화제(BIFF)의 갈라 프레젠테이션에 초청된 작품 4편 가운데 가장 먼저 기자 시사와 기자회견을 가진 '분노'는 화제작으로 꼽힐 요소를 두루 갖췄다. 갈라 프레젠테이션은 BIFF '동시대 거장 감독의 신작 및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화제작을 상영하는 섹션'이다.

7일 오전 영화의전당 소극장에서 '분노' 기자 시사가 열렸다. 강수연 집행위원장이 진행한 '분노' 기자회견은 이상일 감독과 주연 배우 와타나베 켄이 참석한 가운데 기자 시사 직후인 이날 오후 동서대 센텀캠퍼스 컨벤션홀에서 열렸다.

"우리는 왜 남을 의심하고, 믿는 것일까. 우리는 사람을 의심해서 잃는 게 너무 많고, 사람을 너무 쉽게 믿어서 위태로워지는 경우도 많은 것 같다." 이 자리에서 이 감독은 작품 주제와 감독의 의도를 듣고싶다는 질문에 "누구를 믿고 의심하는 것이 인간관계에서 행복과 불행을 준다. 어쨌거나 우리는 살면서 누군가 믿는 것을 포기할 수도 없고 포기해서도 안 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일본 작가 요시다 슈이치의 소설 '분노'를 원작으로 한 이 영화는 도쿄에서 멀지 않은 하치오지에서 벌어진 참혹한 부부 살인 사건 현장을 비추는 것으로 시작한다. 살인 현장에 범인은 분노를 뜻하는 글씨 '노(怒)'를 남겼다. 긴장한 경찰과 떠들썩한 언론이 범인을 쫓지만, 1년 동안 수사는 미궁에 빠진다. 그 사이 영화는 이 사건의 진범으로 의심할 법한 세 청년의 사연을 각각 쫓아간다.

이때부터 영화는 누가 범인인지 쫓기보다 이들의 삶의 현장을 비추고 그 속에서 의심과 믿음이 낳는 극적인 결과를 강렬하게 보여준다.

주연 와타나베 켄은 "영화 안에서 펼쳐지는 세 청년의 삶에서 관객은 저마다 자기 속에 있는 고민, 고통, 괴로움 등에 채널을 맞추며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내가 비록 문제를 직접 해결해줄 수는 없지만, 힘들어하는 그 삶을 끌어안아주면 되겠다 하는 생각으로 연기했다"고 말했다.

이 감독은 "요즘 일본의 관객이 영화를 어떻게 고르는가 하는 관점에서 생각해 보면, 쾌(快)의 영화와 불쾌의 영화로 대별할 수 있겠다. 마케팅 측면에서 본다면 아무래도 쾌의 영화가 많지만, 나의 경우처럼 인간의 보편적인 문제에 초점을 맞추는 '불쾌'의 영화도 있고 그것대로 의미를 갖는다고 본다"는 의견을 말했다. 여기서 이 감독이 말하는 불쾌의 영화란, 인간 문제의 심연을 피하지 않고 그대로 응시해서 관객에게는 불편함을 안기기도 하는 영화로 이해됐다.

이 감독이 작가 요시다 슈이치의 작품을 영화로 만든 것은 화제작 '악인'에 이어 이번이 두 번째다.

그는 "요시다 슈이치는 소설이라는 허구를 만들어나가면서 그 속에 거짓이 없다. 자기가 모르는 것은 쓰지 않는다. 모른다고 내팽개치는 게 아니라 조금이라도 더 가까이 다가가려고 철저히 쓰는 작가"라는 말로 매력을 표현했다. 이 영화는 오는 10일과 15일 BIFF 상영관에서 볼 수 있다.

조봉권 기자 bgjoe@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