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 강점기 시대에 대한 매혹을 드러낸 영화들이 많았다. 이 중에서도 올해의 주요작이라고 한다면 '아가씨', '덕혜옹주', '밀정'인 것 같다. 세 영화는 각자의 초점으로 이 시대를 전유하려 한다. 박찬욱 감독의 영화에는 상상적이고 혼종적인 문화 코드가 자주 등장하는데 '아가씨'에서 일본 식민지하의 조선은 그런 문화코드를 전시하기 위한 진열장이 된다. 허진호 감독은 '덕혜옹주'에서 제목 그대로 덕혜옹주에 집중한다. 일제에 의해 핍박받은 대표적 인물에의 가공된 드라마에 집중한다. 김지운 감독은 '밀정'에서 당대의 공간을 강조한다. 역사적 장소를 강조한다는 말이 아니라 그 시대에 힘입어 각 장면을 공간별로 구성한 뒤 그 공간들의 연쇄를 따라 액션과 심리극을 펼치려 한다.
세 영화가 다른 전략으로 일제 강점기라는 시대에 접근한 것은 차별성이라는 차원에서 보면 다행인 것 같다. 하지만 이 영화들이 일제 강점기라는 소재에 몰려 있다는 사실 자체가 현재 한국영화의 어떤 빈곤함을 나타내는 징표가 아닐까 하는 우려는 여전히 사라지지 않는다. 그 우려를 단숨에 떨쳐 내게 할 만큼 각 영화가 독창적이었던 것 같지는 않다.
영화 기획의 유행이란 늘 있어왔다. 2002년에서 2004년 즈음 일거다. 인터넷 문화가 급변하고 확장되면서 인터넷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들이 대거 만들어진 적이 있었다. 그 중에는 볼 만한 대중영화도 있었지만 대개는 한 철 장사를 노린 영화들이었다. 2004년에서 2006년쯤이었던가. 실화영화들이 대거 만들어진 적도 있었다. 야구선수 감사용에서부터 탈옥수 지강헌에 이르기까지 실화들이 우르르 불려 나왔다. 2010년대 초중반에는 간헐적으로 그러나 꾸준하게 사극 열풍이 불었다. 문제는 박찬욱, 허진호, 김지운 감독의 영화가 저 무리 지은 유행 안에 있었던 적은 없었다는 점이다. 이들은 유행과 무관한 방식으로 각자 영화를 만드는 대중영화감독이라는 점에서 특이했다.
이들조차 지금은 한 광산에서 금을 캐고 있다. 단순히 우연한 교차라고 치부해버릴 수도 있다. 하지만 결국 교차하게 되었다는 사실 자체가 더 중요하다.'아가씨', '덕혜옹주', '밀정'이 각각 박찬욱, 허진호, 김지운 각자의 특성을 가능한 끝까지 고양한 작품들로는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그보다는 일제 강점기라는 매혹의 소재와 얼마간 협상하는 과정에서 자의와 타의가 뒤섞여 다듬어져 나온 각자의 중재물인 것처럼 느껴진다. 물론 '밀정'의 경우엔 그 중재적 결과가 오히려 내게서 긍정이라는 역효과를 끌어내고도 있지만, 그럼에도 나의 극히 개인적인 반응과는 무관하게 필요한 건 이런 것일 거다. 저들이 각자 다른 광산의 외로운 광부로 살아가는 길 말이다.
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