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일 방송된 SBS 월화드라마 '달의 연인-보보경심 려'에서는 아이유가 죽음의 고비를 넘기며 황자들 중 형제들을 죽이는 고려의 4대 황제 광종이 존재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에 따라 고려 광종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4황자 왕소는 훗날 949년부터 975년까지 약 26년 동안 재위한 고려 제4대 왕 광종으로, 이름은 소(昭)이며 태조왕건의 넷째 아들이고 어머니는 신명순성왕태후(황후 유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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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제공=이준기 스틸 컷) |
왕소는 성격이 호탕하고 과감하면서도 신중했다고 전해진다. 신라 6두품 출신으로 고려 재상까지 오른 최승로는 '정종(왕요)이 고집이 세고 남의 말을 잘 듣지 않는 성품인데 반해, 광종(왕소)은 치밀하고 조심스럽지만 기회를 잡았을 땐 과감하게 밀어붙이는 대범한 성격이었다'라고 평하기도 했다.
실제 역사 속 광종은 왕권강화를 위해 특히나 노력한 왕으로, 956년에 노비안검법을 세워 공신 세력과 충돌을 벌였으며 958년 중국에서 고려로 귀화한 '쌍기'의 의견을 받아들여 고려에서 처음으로 과거제도를 시행하기도 했다.
고려시대에는 과거 신라 때와 마찬가지로 벼슬길에 오르는 방법이 공식적인 시험이 아닌 명성이나 집안 배경이었는데, 광종이 시행한 과거제도는 권문세가의 자제가 아니더라도 관리가 될 수 있는 당시의 혁신이었으며, 권력층의 개편을 의미했다.
일련의 개혁작업은 좋았지만 960년에 발생한 공신세력의 참소사건을 시작으로 공신들의 숙청작업의 시작되었으며, 고려 제2대 왕 혜종과 3대왕 정종의 외아들을 죽이기에 이르고 말년에는 부인인 대목왕후와 자신의 외아들인 경종을 의심의 눈초리로 쳐다보기도 하는 등 공포정치가 행해졌다.
신하나 왕실세력을 가리지 않고 행해졌던 광종의 대숙청은 그가 죽기 직전까지 이어졌고, 죄없이 살육당하는 자가 끊이지않고 계속 되었다고 전해진다.
이로 인해 광종은 상반된 평가를 받고 있다. 공신세력을 축출해 왕권을 강화시킨 왕임과 동시에 지나치게 숙청작업에 몰두한 피의 군주라는 면에서 양면성을 지닌 왕으로 기록되기도 한다.
이영실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