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빠 이거 진짜 낼 거예요? 이거 저는, 절대 유통사에 못 보내요. 이거 내고 싶으면, 오빠가 스윙스 오빠랑 직접 얘기하고. 아, 진짜 왜 맨날 이런 것만 쓰려고 하는지 모르겠어요. 뒤가 어떻든 전 무조건 반대예요. 좀, 다른 내용으로 쓸 수 없어요?"
힙합 씬의 문제아 블랙넛이 지난 3월 31일 낸 싱글앨범 'ㅍㅍㅍ' 첫 번째 트랙에 수록된 '펀치라인 애비 2'의 2분 30초쯤. 저스트 뮤직 신나래 팀장의 나래이션이 등장한다. 음원 속 목소리가 진짜 그녀인지는 알 수 없지만, 블랙넛 음반 유통을 담당한다면 그 고충은 십분 이해할 만하다. 작년 '쇼미더머니 4'를 봐서는 모른다. 그 때 블랙넛의 가사는 소위 방송용으로 많이 순화된 것이다. 블랙넛의 가사는 절대로 지면에 그대로 옮길 수 없다. 궁금하다면 아래 링크를. 나래 팀장이 언급한 스윙스는 어제 자정 기나긴 침묵을 깨고 'Your Soul'을 발표한 저스트 뮤직 레이블의 수장이다. ☞'펀치라인 애비 2' 가사 링크 연결
1991년 발표한 게토 보이즈의 앨범 자켓 이미지. 부쉬윅 빌이 총에 맞아 들것에 실려 가고 있다. 멤버들의 표정이 좋지 않다. 믿을 수 없겠지만 실제 상황이다.
비슷한 일이 16년 전 미국에서도 있었다. 힙합 평론가 시어 세라노가 쓴 책 'The RAP'에 소개된 일화다. 1990년 게펜 레코드는 게토 보이즈(Geto Boys)의 리믹스 앨범 'The Geto Boyz'를 발매할 예정이었다. 그들이 발매 전날 밤 돌연 앨범 판매를 취소하기 전까지는.
당시 게펜 레코드(Geffen Records)의 중역이었던 브린 브라이덴살은 이렇게 말한다. "저는 지금껏 살아오면서 한 번도 음악 때문에 겁 먹은 적이 없었어요. 그런데 이 앨범의 폭력에 대한 묘사는 저를 정말로 겁먹게 했죠. 우리는 민간기업으로서 어떤 콘텐츠와 함께할 것인지 결정할 권한이 있었고, 결국 그 앨범을 발매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저스트 뮤직 나래 팀장이 했던 말과 비슷하지 않은가. 블랙넛과 같은 이유로, 게토 보이즈의 가사 역시 링크로 대체한다. 'The Geto Boyz' 앨범에서 가장 문제가 되었던 수록곡 'Assasins'의 가사다. 학교 선생님을 때리고 총으로 쏘는 내용이다. 'Mind of Lunatic'은 노래가 시작되고 고작 가사 세 마디 만에 살인을 저지른다. 윤리적으로는 도저히 용납할 수 없다. ☞'Assassins' 가사 링크 연결
그러나 게토 보이즈가 품었던 폭력성은 역설적으로 명반을 잉태했다. 1991년 'Mind Playing Tricks on Me'는 'Mind of Lunatic'의 아이디어는 유지하면서 정신 이상이 되어가는 과정에 좀 더 초점을 맞춘 노래다. 게토 보이즈의 멤버 부시윅 빌(Bushwick Bill)은 뮤직비디오에서 정신 착란증 환자로 등장해 보이지 않는 허상과 싸운다. "Every twenty seconds got me peeping out my windows." "Then he disappeared and my boys disappeared."
20초마다 창밖을 내다보게 되는데, 갑자기 그놈이 사라지더니 내 친구들도 사라졌다는 것이다.
정신병을 다룬 랩은 1983년 락웰(Rockwell)의 'Somebody's Watching Me'도 있었지만 게토 보이즈 이후에야 자리를 잡았다. 그 뒤로 노토리어스 비아이지(The Notorious B.I.G)가 'Suicidal Thoughts'에서, 에미넴(Eminem)이 'Kim'에서 정신병을 소재로 가사를 썼다.
모 포털사이트에서 블랙넛의 노래를 정확도순으로 검색해보았다. 소위 '19금' 딱지가 안 붙은 음악이 상위 13개 중 인스트루멘털을 빼면 단 1개 뿐이다.
끝없이 여성을 폄하하고 폭력적인 자세를 유지하거나 성적인 단어로 언어유희를 즐기는 것은 솔직해서 좋기는 하다. 하지만 저열하게 느껴지는 것 또한 어쩔 수 없다. "내가 하는 게 리얼 힙합"이라는 블랙넛의 입장에도 동의하기 힘들다. 블랙넛의 음악이 힙합의 전부가 절대 아니기 때문이다. 힙합은 분노를 품기 전에 먼저 사랑을 품었던 문화다. 힙합 속 여성 폄하는 노예제도 속에서 흑인 여성을 지켜줄 수 없었던 흑인 남성의 비애와 열등감으로부터 시작했다. 2016년의 한국에는 어울리지 않을 뿐더러 시대 착오적이다.
그렇다고 블랙넛의 음반 발매를 나래 팀장이 막아설 수도 없는 노릇이다. 블랙넛의 가사에는 국내 래퍼들이 쉽게 따라하기 힘든 긴장감이 있다. 블랙넛이 1991년 게토 보이즈처럼 명반을 탄생시킬 수도 있지 않은가. 새삼 예술의 자유와 보편적 윤리의 병행이 이토록 힘들 수도 있구나 싶다. 신동욱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