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행복도·노동자세대 실수입
- 초중생 학력·대졸 취업률 '1위'…
- 자력갱생 대표로 꼽는 지방도시
- 발전 비법·동력 탐구한 리포트

"지방은 '이미 끝났다'가 아니라 '먼저 시작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지방이야말로 2025년의 미래를 알 수 있는 기회가 넘쳐나고 있다."

도야마 도심을 달리는 2량짜리 경전철. 사람들을 도심으로 흡수하는 역할을 한다.황소자리 제공

줄어드는 인구와 쇠퇴하는 전통 산업으로 걱정이 많은 부산을 비롯해 지방의 귀를 솔깃하게 하는 책이 출간됐다. 이토록 멋진마을은 일본의 작은 지자체인 후쿠이 도야마 이시카와 등 일명 '호쿠리쿠' 지역이 일구어낸 기적 같은 자력갱생 생존모델을 탐구한 심층 리포트이다. 우리보다 20년 앞서 저성장의 늪에 빠져 저출산, 고령화, 지역 공동체 해체의 위기를 겪은 일본의 사례를 타산지석 삼아 현재 부산을 비롯한 지방도시의 위기를 타개할 아이디어를 엿볼 수 있다.

도쿄에서 멀리 떨어진 인구 79만 명의 후쿠이현은 객관적인 지표에서 대도시를 압도하는 마을이다. 노동자 세대 실수입에서 도쿄를 여유 있게 제치며 1위를 유지하고, 초중학교 학력평가 1위, 맞벌이 비율 1위, 정규직 사원 비율 1위, 대졸 취업률 1위, 인구 10만 명당 서점 숫자 1위인 반면 노인과 아동 빈곤율 및 실업률은 가장 낮은 지역이다. 이 때문에 '행복도' 평가에서 10년 넘게 부동의 1위를 유지하고 있다고 한다.

저자는 이 같은 후쿠이의 발전비법을 알고 싶어 2년간의 연구에 돌입했다. 하지만 세계 3대 안경 산지인 후쿠이현 사바에시를 처음 찾았을 때 안경회관에서 만난 젊은 기업인은 의외의 말은 한다. "이곳은… 일본에서 가장 빨리 중국에 당한 곳입니다." 안경 산업 뿐 아니라 섬유와 칠기 등 후쿠이현의 과거 영광을 이끈 제조업 대다수는 '사양 산업'이었다. 하지만 후쿠이의 제조업은 아직도 건재한다. 끊임없는 혁명과 사업 확장을 통해 '사양 산업판 실리콘밸리'를 만들고 있다는 것이 저자의 판단이다. 2000년 시드니 올림픽 마라톤 금메달리스트 다카하시 나오코가 신어 유명해진 스포츠 슈즈의 갑피는 후쿠이현의 직물회사가 개발한 소재를 사용한다. 의류산업이 정체에 빠졌지만 이 회사는 소재 혁명을 통해 신발과 의료용품 등 신산업 분야를 개척해 승승장구하고 있다.

후쿠이의 1978년생 벤처 기업가 '후쿠노 다이스케(왼쪽)'.

개방적이고 유연한 사람들도 발전의 원동력이다. 흔히 지방은 배타적이라고 생각하지만 '호쿠리쿠 지역'은 다르다. 항구도시 이와세에는 세계 각지에서 찾아오는 관광객들로 북적이는 마을이다. 한때 주정뱅이만 즐비했던 이곳이 바뀐 건 외지인인 수입제품 판매상 시케마쓰 히데카즈가 헌창고를 개조해 '덴카도'라는 명품점을 낸 이후이다. 민관이 함께 빈 집을 사들여 전통디자인을 적용한 복구 작업을 시행하자 이와세는 단번에 역사적 풍취가 가득한 마을로 변신했다.

칸막이가 없는 후쿠이 시민중학교 교실.

혁신적이고 개방적인 풍토의 뒤에는 중앙정부의 방침에 역행하는 후쿠이만의 교육방식이 있다고 저자는 분석한다. 이들은 주입식으로 진행되는 일본의 교육방침을 따르지 않는다. 오래 전부터 '10년 앞을 내다본 수업'을 기초로 삼아 독자적인 학습지도 요령을 구축했다. 지식을 습득하는 대신 생각하는 법을 가르치는 교실, 사고 과정을 가시화해 자신의 생각이 어떻게 바뀌어 어떤 결론에 도달했는가를 자신의 말로 써내도록 하는 수업 등 변화하는 세상에 맞게 생각하고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을 키워주는 교육이다.

저자는 일본의 전철을 그대로 밟고 있는 한국에 관심이 많다. 그는 식민지 지배 등 근대에 힘든 역사를 겪은 한국이 지금부터 다가올 저출산 고령화시대를 이겨낼 힘이 있다고 조언한다. "힘겨웠던 경험은 미래를 만드는 중요한 동력임을 후쿠이 지역을 취재하면서 알았다. 저출산 고령화 시대를 한국이 어떻게 이겨낼 것인가가 매우 흥미롭다."

박정민 기자 link@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