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연산 횟감 계절·물때따라 선별
- 어종마다 다른 숙성기간 거치면
- 이노신산의 감칠맛 극대화돼

- 담백한 병어 등살, 구수한 뱃살
- 살이 깊어 차진 노랑가오리
- 은은한 갈농어·감칠맛 도다리
- 사박사박한 여름생선 민어
- 깍뚝 썬 눈볼대의 고소함까지
- 궁합에 맞는 양념장 갖추면
- 다양한 맛, 한 접시의 행복

생선은 몸에 좋은 양질의 단백질과 불포화지방산을 다량 함유한 식재료이다. 때문에 인류는 유사 이래로 생선을 여러 가지 방법으로 조리해 먹었는데, 날로 먹고 불에 굽고, 쪄내거나 국물 요리로 널리 활용해 왔다.

부산 서구 부산공동어시장 인근의 선어횟집에서 차려낸 선어회. 민어 노랑가오리 갈농어 눈볼대 등 푸짐하게 차린 선어회가 먹음직스럽다. 작은 사진은 감칠맛의 정점을 찍어준 눈볼대회. 사진 최원준 시인

특히 생선을 날로 요리해 먹는 '생선회'는 세계적으로도 다양한 문화권에서 즐기고 있는 섭생방법 중 하나이다. 주로 동아시아를 중심으로 소비되는 생선회는, 공자도 즐겨 먹은 것으로 '논어'에 기술할 정도. '맹자'의 문장 중 '인구에 회자(膾炙)되다(널리 사람의 입에 오르내리다)'라는 말의 '회자' 또한 '회와 구운 고기'를 일컫는데, 그만큼 생선회가 음식으로서 위치가 공고하다는 뜻일 게다.

생선회는 우리나라의 활어회 문화권과 일본을 중심으로 한 선어회 문화권으로 대별된다. 활어회는 살아있는 생선을 즉살시켜 바로 먹는 방식으로, 횟감의 사후경직으로 인해 식감이 질기다 싶을 만큼 쫄깃하고 씹힘성이 좋다. 그러나 음식의 지향점인 감칠맛이나 생선회 본연의 풍미는 상대적으로 덜하다.

■일정 시간 숙성하는 것이 핵심

선어회는 활어를 잡는 즉시 얼음에 빙장하거나 '시메'시켜, 일정 기간 숙성하여 음식으로 내는 방식이다. '시메'는 일본의 '이케시메(活けしめ)'의 줄임말로 '활어를 즉살하고 피를 빼내는 방법'이다. 활어의 스트레스를 줄이고 신선한 횟감으로 오래 보관할 수 있는 방법이다. 때문에 숙성 후 발현되는 이노신산의 감칠맛이 극대화돼, 입 안 가득 퍼지는 생선회의 진함과 풍성함이 정점을 이룬다. 반면에 살이 연하고 부드러워지는 '연육화 현상'으로 인해 탄탄하고 쫄깃한 '다이내믹한 식감'은 기대하기 어렵다.

선어회의 숙성기간은 어종마다 다른데 한나절에서 열흘까지로 다양하다. 삼치, 병어, 다랑어 등, 등 푸른 생선과 몸집이 작은 생선은 숙성시간이 짧고, 광어, 다금바리, 돗돔 등 흰살생선과 대형 어종은 숙성시간이 상대적으로 길다. 삼치, 병어 등은 대략 반나절, 대형 어류인 돗돔 등은 열흘까지도 숙성시킨다.

선어회는 일본인이 즐겨 먹는 방식이지만, 우리나라도 동남해의 해안마을과 포구를 중심으로 선어회를 즐겨 먹었다. 활어의 운송과 보관 기술이 열악했던 이유도 있지만, 일정 시간을 경과하여 먹던 생선회의 감칠맛에 매료됐기 때문이다. 선어회에 익숙한 선원들이 즐겨 먹었다.

부산에서도 서구 부산공동어시장 부근에 선어회를 파는 곳이 산재해 있었다. 선원들은 바다에서 잡은 생선을 몇 마리 남겨두었다가 자갈치 어시장 근처의 단골식당에서 장만해 먹곤 했는데, 귀항하는 동안 잘 숙성된 생선회는 선원들의 깔깔한 입맛을 단번에 다독여 주곤 했다.

단골 선원들에게 술과 양념값을 받고 선어회를 장만해주던 몇몇 식당들은, 가당찮은 선어회 맛의 입소문이 잦아지자 전문적으로 선어회를 팔기 시작했다. 그래서 지금도 서구 충무동 교차로 인근에는 20여 년을 넘긴 선어횟집이 다수 영업하고 있다.

■왜 선어회는 '복불복'인가

충무동 선어횟집 중 한 집에 들러 선어회를 시킨다. 오늘은 어떤 횟거리가 있는지 물으니 "민어, 노랑가오리, 갈농어, 눈볼대…" 다양한 선어를 주워섬긴다. 선어횟집에서만 맛 볼 수 있는 전설의 거대 물고기 '돗돔'을 섞어 맛을 보자니까, "선어회는 그날그날 먹을 횟감을 하늘이 정해주기에, 사람이 먹고 싶다고 바로바로 먹을 수 있는 게 아니다"며 주인장이 일침을 놓는다. "오로지 자연산 생선만을 선별하여 들여오기 때문에 계절에 따라, 물때에 따라, 바다의 상황에 따라, 횟감의 종류는 오늘 다르고 내일 다르다"는 것이다. 말인즉슨 '그날그날 먹을 회는 그날이 되어야 알 수 있기에, 복불복의 먹는 재미가 더욱 쏠쏠하다'는 것.

선어회 한 접시가 상에 올라온다. 민어, 노랑가오리, 갈농어, 도다리, 눈볼대, 병어 등속이다. 희고 붉은 선어회가 종류에 따라 제대로 가지런하다. 둥근 접시에 돌아가며 차곡차곡 쟁여져 보기에도 먹음직스럽다. 각각의 회를 일별해보고 있는데, 주인장이 다가와 먹는 순서와 방법을 알려준다. 대충 들어보니, '담백한 회부터 시작하여 기름진 회로 끝내라' '먹는 회에 따라 고추냉이, 초장, 된장 등 궁합이 맞는 양념장에 찍어 먹어라' 등등이다.

■병어 노랑가오리 갈농어 도다리…

우선 병어회를 맛본다. 30~40㎝ 정도 되는 큰 놈이라 등살과 뱃살로 나누어 장만했다. 된장에 찍어 입에 넣으니, 등살은 부드럽고 담백하게 씹히며 짭조름한 양념과도 잘 어우러진다. 뱃살은 육즙이 구수하게 우러나는 것이 된장소스와 궁합이 제대로다.

이어 최대 몸길이 2m, 몸무게 10여 kg까지 자라는 노랑가오리를 맛본다. 살이 깊어 붉은 살이 선연하다. 감칠맛이 덜하기에 초장에 푹 찍어 먹는다. 쫀득쫀득, 꼬득꼬득한 식감이 장난 아니다. 살은 깊어 차지고 연골은 오독오독 입안에서 저항을 하며 씹는 재미를 배가시킨다.

갈농어도 한 점 맛본다. 제주도 해역에서 잡은 것이라 하는데, 다금바리, 붉바리, 자바리 등 바릿과 생선의 새끼인 듯하다. 새끼이지만 바릿과 생선의 특성대로 살이 탄탄하고 밀도가 좋다. 부드러우면서도 쫀득이는 식감이 꽤 괜찮다. 은은한 향이 도는데, 나름의 풍미 또한 흔쾌하다.

곧이어 도다리를 맛본다. 낚시로 잡은 큰 놈이라 살이 깊고 탱글탱글하다. 우선 씹을 때는 광어의 식감이 돌지만, 씹을수록 담백하고 입안으로 은은하게 감치는 감칠맛이 소소한 재미를 준다.

전라도 사람들에게는 최고의 여름 생선으로 알려진 민어도 고추냉이 소스에 한 점 찍어 맛을 본다. 60~90㎝ 정도의 대형 어종으로 살이 많고 맛이 좋아 회나 구이, 찜, 탕 등 다양한 음식재료로 널리 쓰이는 어종이다. 살이 많은 어종이라 뱃살과 등살로 장만했다. 뱃살을 먹으니 두 가지 부위의 식감이 함께 느껴진다. 부드럽고 쫀득한 데다 씹을수록 풍미가 더해져 궁극에는 입안 가득 풍미로 넘쳐난다. 등살은 담박하면서도 식감은 사박사박하다. 기분 좋은 씹힘이다.

■'참치 뱃살 저리 가라' 눈볼대의 맛

마지막으로 40㎝짜리 눈볼대를 깍둑 썰어낸 회 한 점을 입에 넣는다. 원래 15~20㎝ 정도의 크기인데, 큰놈들은 돔 종류보다 더 귀한 대접을 받는다. 일명 '아까무스'라 불리며 좋은 놈들은 일본으로 전량 수출되는 고급 생선이다.

일명 '고데고리'라는 '외끌이 배'에서 잡은 것으로, 입에 넣자마자 감탄이 터져 나온다. 끝없이 부드럽고도 고소한 맛이 극에 달한다. 참치 뱃살도 저리 가라다. 씹을 때마다 고소한 육즙이 쏟아지듯 흘러넘친다. 구이나 물회 재료로만 생각했다가 큰 코 다칠 뻔했다.

한참을 다양한 식감과 감칠맛의 회를 일별하면서 잠시 생각해 본다. 생선회는 여러 가지 방법으로 먹을 수 있는 아주 민감한 식재료이다. 횟감 장만법과 보관법, 칼질법과 소스의 선택, 곁들이는 양념 등에 의해 다양한 맛의 변주를 가져온다. 하여, '생선회의 수도, 부산'에서 생선회를 즐기는 다양한 방법을 먼저 연구·개발하고, 널리 활용할 때, 우리나라 생선회 문화는 더욱 윤택하고 풍성해질 것이리라 감히 기대해 본다.

※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아 취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