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량에 봄이 들면 뱀장어 물때 좋아

그를 잡으러 활배가 푸른 물결 헤쳐 간다.

높새바람 불어오면 일제히 나갔다가

마파람 세게 불면 그때가 올 때라네.

세 물때가 지나가고 네 물때가 돌아오면

까치파도 세게 일어 옛 어대(漁臺)가 파묻힌다.



-정약용(丁若鏞)의 '탐진어가(耽津漁歌)' 10장에서-

	붕장어 구이(왼쪽), 갯장어 회

중복(中伏)과 입추(立秋)를 지나 말복(末伏)을 향해 가건만 폭염의 기세는 도무지 꺾일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무더위에 땀을 쏟고 나면 지친 나머지 입맛을 잃기 쉬운데 이럴 때일수록 잘 먹어야만 건강을 해치지 않는다.

무더위에 보양식을 먹던 풍습은 진한(秦漢)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중국에서는 무더위가 기승을 부릴 때면 나라에서 고기를 내려 잔치를 베풀었다고 한다. 진나라에서는 개(犬)를 잡아 북문(北門)에 달아매고 역병(疫病)을 막는 풍습이 있었는데, 이것이 우리나라에 전해져 복개라고 하여 복중에 보신탕을 먹게 되었다고 전한다.

복중에 즐기는 보양식으로는 장어(長魚)도 빼놓을 수 없다. 장어에는 여름철에 부족하기 쉬운 비타민A가 많다. 또 단백질과 지방도 풍부한데 단백질에는 필수 아미노산이 풍부하게 들어 있고 지방은 모세혈관을 튼튼하게 해준다고 한다. 복중에 장어를 보양식으로 먹게 된 것은 일본의 영향 때문이다. 일본에서는 토용장어(土用長魚)라고 해서 복중에 장어(長魚)를 먹는 풍습이 있는데, 이것이 전해져 우리도 여름철 스태미너식으로 장어를 즐기게 되었다고 한다.
◇ 뱀장어

■우리가 흔히 '민물장어'라고 부르는 장어가 바로 뱀장어다. 뱀장어는 다른 장어와 달리 담수와 바다를 오가며 산다. 그래서 사람들이 '민물장어'라고 부르는 것이다. 산란은 바다에서 하는데, 부화된 새끼는 담수로 올라와 5~12년간 성장하고 다시 산란을 위해 바다로 나간다.

뱀장어라는 이름이 붙은 것은 그 모습이 뱀과 닮았기 때문이다. 정약전(丁若銓, 1758~1816)은 '자산어보(玆山魚譜)'에서 뱀장어를 해만리(海鰻鱺)라고 하고 "큰 놈은 길이가 십여 자, 모양은 뱀과 같으나 짧고 거무스름하다. 대체로 물고기는 물에서 나오면 달리지 못하나 이 물고기만은 유독 곧잘 달린다. 뱀처럼 머리를 자르지 않으면 죽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뱀장어는 맛도 좋지만 약효도 있다. 정약전에 따르면 장어는 맛이 달콤하여 사람에게 이로우며, 오랫동안 설사를 하는 사람은 장어로 죽을 끓여 먹으면 이내 낫는다고 한다.

뱀장어는 산란과 성장 과정이 베일에 싸여 있다. 정약전은 '조벽공잡록(趙辟公雜錄)'에는 "장어는 수컷만 있고 암컷은 없으므로 예어(鱧魚: 가물치)가 비치면 그 새끼를 곧 예어의 지느러미에 부착하여 낳는다"고 했는데, "유수(流水)에서 낳는 놈은 그렇다고 하더라도 바다에서 낳는 놈은 바다에 예어가 없으니 어느 곳에서 퍼져 부식할 수 있는지 아직은 밝혀지지 않았다"고 했다. 또 서양의 아리스토텔레스는 "뱀장어는 강바닥 진흙 속에서 뱀과 교미하여 태어난다"고 했다 한다. 모습이 뱀을 닮아서일까 우리나라에서도 뱀이 변한 물고기라든지, 석굴 안에서 무리지어 뱀으로 변한다는 설들이 있다고 정약전도 전하고 있으나 믿거나 말거나이다.

뱀장어를 찾는 수요가 늘어나면서 요새는 대부분의 장어가 양식에 의해 생산된다. 우리나라에서는 1966년에 경남 김해시 녹산(현재 부산시 강서구)에서 처음으로 양식에 성공했다고 한다. 1970년대에 들어와서는 더 많은 사람들이 양식을 시도해 일본이나 대만 등으로 수출하기도 했다.

◇ 갯장어

■뱀장어와 달리 갯장어는 바다에서만 사는 '바다장어'의 일종이다. 우리나라 남해안에서는 놋장어, 개장어, 해장어, 참장어 등으로도 불리며, 일본에서는 잘 무는 습성이 있어서 '물다'라는 뜻의 '하무'로 불린다. 우리가 흔히 부르는 '하모'라는 말은 여기에서 유래된 것이다.

정약전은 갯장어를 견아려(犬牙鱺)라고 쓰고, 속명을 개장어(介長魚)라고 한다고 했다. 또 "입은 돼지같이 길고 이빨은 개와 같아서 고르지 못하다. 뼈가 더욱 견고하여 능히 사람을 물어 삼킨다"고 갯장어의 모습과 습성을 설명했다.

지금은 갯장어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이 생겼지만 예전에 우리 선조들은 갯장어를 즐기지 않았다. 그 모양새가 뱀을 닮아서였다. '조선통어사정(朝鮮通漁事情, 1893년)'을 보면, 갯장어는 경상도 도처에서 서식하는데 사람들이 잘 잡지 않고, 또 잡더라도 뱀을 닮은 모양 때문에 먹기를 꺼려 일본인에게만 판매한다고 했다. 또 '한국수산지(韓國水産誌, 1908년)'에서도 잡는 사람이 적고, 도미를 잡는 사람들이 도미가 잡히지 않을 때 잡는 정도라고 했다.

이런 우리와 달리 일본인들은 갯장어를 좋아한다. 그들은 갯장어를 회로 먹거나 유비키(ゆびき) 라고 하여 살을 발라 끓는 물에 살짝 데쳐 숙회로 먹기도 하는데, 여름에는 없어서 못 팔 만큼 인기가 좋다고 한다.

◇ 붕장어

■ 부산시 기장군 일광면 칠암항 일대는 '아나고회'로 유명한데, 이 '아나고'가 바로 붕장어(弸張魚)다. '아나고'는 일본말이다. 정약전은 붕장어를 해대려(海大鱺)라고 했고 그 속명이 붕장어라고 했다. 또 "눈이 크고 배안이 묵색(墨色)으로서 맛이 더욱 좋다"고 설명했다.

붕장어 역시 우리 선조들은 즐겨 먹지 않았다. '한국수산지'에 의하면 우리나라 남해안에서 많이 잡히는데 일부러 잡지는 않았다고 한다. 우리가 붕장어를 본격적으로 먹기 시작한 것은 해방을 맞아 귀환한 일본 동포들이 부산에 정착하기 시작한 이후이다. 당시 우리나라에선 붕장어의 가죽만 사용하고 몸통은 버렸는데, 일본에서 붕장어 맛을 본 귀환 동포들이 버려진 몸통을 먹기 시작했던 것이다. 처음에는 구워서 술안주로 팔기도 했다고 하는데, 요즘에는 구이보다는 회로 그 맛을 즐긴다. 여름철에 그 맛이 가장 좋다고 하니 꼭 즐겨보시길. 굳이 칠암항을 찾지 않더라도 부산 곳곳에서 어렵지 않게 그 맛을 볼 수 있다.

◇ 먹장어

■ 꼼지락거려 부산에선 '꼼장어'라고 부르는 곰장어의 정식 이름은 먹장어다. 먹장어는 갯장어, 붕장어와 함께 바다에서만 사는 '바다장어'다. 하지만 뱀장어, 갯장어, 붕장어와는 달리 연골어류에 속한다. 먹장어는 바다 밑에 살다 보니 눈이 멀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인데, '묵장어', '꾀장어'라는 방언도 있다.

부산에서 먹장어는 뱀장어, 갯장어, 붕장어보다 인기가 높다. 요즘은 매스컴을 통해 인기가 더욱 높아져 부산을 찾은 관광객들도 한번쯤 자갈치 시장이나 기장을 찾아 '꼼장어 구이'나 '짚불 꼼장어 구이'를 꼭 맛보고 싶어 할 정도다. 먹장어가 이렇게 인기를 끄는 것은 그 맛도 맛이겠지만 껍질이 벗겨져 시뻘건 속살을 드러내면서도 살아 꿈틀대는 강인한 생명력이 거친 바다를 헤치며 살아온 부산 사람들의 끈질긴 생명력과 꼭 닮아서는 아닐까 싶기도 하다.

지금은 많은 사람이 먹장어의 맛을 즐기지만 먹장어도 과거에는 그리 즐기는 먹거리가 아니었다. 과거에는 오히려 껍질이 인기가 있었다. 먹장어 껍질이 핸드백과 수영복, 골프장갑 등을 만드는 데 원단으로 사용되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1970년대 후반에서 1980년대 먹장어 껍질은 수출 효자 품목이었다. 이처럼 외국에서 우리 먹장어 껍질이 인기를 끌자 외국으로 먹장어 껍질을 휴대 반출하는 이들도 많았다. 그런데 이들이 조악한 제품을 무분별하게 반출하는 바람에 수출 질서가 문란해져 당국이 나서 해외여행자 휴대 반출 한도를 축소하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먹장어와 관련해 웃지 못할 이야기를 한 가지만 더 소개해 본다. 먹장어의 알은 마치 뱀의 알과 닮았다고 한다. 정약전은 자신이 직접 확인하지는 못했지만 알이 구슬과 같고 뱀의 알을 닮았다고 한 태사도(苔士島, 전남 신안군 흑산면 삼태도) 사람의 이야기를 전해들은 적이 있다고 했다. 이렇게 먹장어 알이 뱀의 알을 닮다 보니 이를 이용해 손쉽게 돈을 벌려는 사람이 구속되는 사건이 벌어졌다. 1991년 6월의 일이다. 구속된 사기꾼은 부산에서 먹장어 알을 대량으로 구입한 뒤 말려서 30알씩 포장해 정력제로 속여 팔았다고 한다. 정력에 좋다고 하면 아무거나 닥치는 대로 먹어대던 시절이 만들어낸 사건이었다.

장어는 우리 몸에 좋은 성분을 다량으로 함유하고 있으므로 자양강장에 분명 효과가 있을 것이다. 하나 과유불급(過猶不及)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장어의 풍미와 염천(炎天)에 지친 몸을 보하는 정도로만 즐겨보시길 권한다. 그 정도로도 정력 보강에는 충분할 테니까.

부산박물관 학예연구사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아 취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