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늘대는 촉수있는 '바다의 꽃'
- 해독 효과로 간에 좋다 소문
- 기장의 대표 보양 재료로 꼽혀
- 점막·촉수 제거 후 내장 손질
- 바락바락 문질러 독 빼내야
- 붕장어와 함께 끓이는 매운탕
- 부부금슬 좋아져 '용봉탕' 별칭
- 부드러운 연골 씹는 듯한 수육
- 숯불향 고추장양념 밴 구이…
- 일광 '부자집'에서 최초 개발
- 칠암·학리 해녀촌에 식당 즐비
폭염이 연일 기승을 부린다. 자칫하면 입맛과 기력이 뚝 떨어지는 염천의 나날이다. 사람들은 절절 끓는 이 삼복을 견뎌내기 위해 다양한 보양식으로 체력을 보충하는데, 영양탕, 삼계탕, 용봉탕 등이 대표적인 음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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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려한 촉수가 하늘거리는 바닷속 말미잘. |
바닷사람들은 바다에서 구할 수 있는 식재료로 나름의 여름철 보양식을 만들어 먹어 왔는데, 다양한 잡어를 푹 고아서 만든 생선곰국, 땡볕 속에서 냉수 마시듯 시원하게 훌훌 둘러 마시던 생선물회, 장어를 넉넉히 넣고 끓여내는 장어매운탕 등이 그것이다.
부산의 기장 지역에서도 대표적인 여름보양식이 있는데, 그 음식의 재료가 특별하다. 기장의 깊은 바다에서 나는 '말미잘'을 주재료로 하는 '말미잘 요리'가 그것이다. 말미잘을 잘 손질한 후 수육이나 매운탕 등으로 만들어 먹는데 식감도 좋은데다 고단백질로 몸에도 좋아, 기장 사람들에게는 최고의 여름철 보양식으로 첫손 꼽히고 있다.
◇ 독특한 맛과 효능 지닌 보양 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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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산 기장 바다에서 잡은 말미잘로 장만한 음식이 먹음직스럽다. 붕장어를 함께 넣고 얼큰하게 끓인 매운탕. 최원준 사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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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부터 말미잘은 조류 따라 화려한 촉수를 '꽃잎처럼 하늘거린다'하여 '바다의 꽃'이라 불렸다. 서양에서는 '바다의 아네모네(sea Anemone)'라 한다. 그러나 그 아름다운 꽃 이름 뒤에는 치명적인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마치 로렐라이 언덕에서 부르는 아름다운 인어의 노랫소리처럼 말이다.
말미잘은 원통 모양의 몸 끝에 왕관 모양의 촉수가 뻗어있는 '산호충강 해변말미잘목'에 속하는 강장동물이다. 세계적으로 1000여종이 서식한다. 말미잘은 독이 있는 촉수를 한들한들 흔들어 작은 생선을 유혹, 총을 쏘듯 마비시켜 먹이를 잡는다. 보기에는 한 송이 꽃처럼 아름답지만, 그 속에 독을 품고 도사리는 치명적인 바다 사냥꾼인 것이다.
말미잘은 입과 항문이 하나인 자포동물이다. 그래서인지 자세히 들여다보면 '말의 항문'처럼 생겼다. 말미잘의 원래 뜻도 '말의 미주알(항문)'에서 유래되었다. 우리 조상의 관찰력과 해박함, 해학이 어우러져 만들어낸 이름이다. 기장에서는 이 말미잘을 '몰심'이라고도 하는데, 아마도 '말의 암컷 성기'를 이르는 말이 순화된 것으로 보인다.
말미잘은 주로 '붕장어 주낙'에 걸려서 올라오는데, 한때는 붕장어 잡이 배의 객식구로 환영받지 못했다. 그러던 것이 색깔도 좋고 통통한 모양새도 그럭저럭해서 '붕장어매운탕'에 함께 넣고 끓여 먹었던 것이, 지금 기장의 대표 여름보양식 '말미잘매운탕'으로 거듭났다. 이 말미잘을 기장에서는 붕장어와 갖은 채소, 넉넉한 양념을 넣고 보글보글 끓여서 여름 한 철 즐기는 것이다.
현지인들에 따르면 말미잘이 위장에 좋다고도 하고 간에 좋다고도 하는데, 그만큼 해독이나 치유 능력이 뛰어나다는 뜻일 게다. 특히 말미잘 촉수의 독은 피부 노화 예방과 미백 효과에 관한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고 하니, 여성에게는 이래저래 효과가 있긴 있겠다.
◇ 말미잘 수육, 숯불구이, 매운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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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씹는 맛이 독특한 숯불구이. |
기장에 '말미잘 요리'가 자리 잡게 된 것은 20여 년 전. 일광 신평마을의 '부자집'이 최초라고 알려졌다. 이곳 주인장이 기장으로 시집와서 부산 최초로 개발해 음식으로 팔았다는 것이다. 현재는 일광 해안 곳곳에 말미잘 요리를 취급하는 음식점이 많이 생겨났다. 특히 칠암 쪽이나 학리 해녀촌에 가면 '말미잘매운탕'과 '말미잘수육' 등으로 맛볼 수가 있다.
앞서 말했듯이 말미잘은 붕장어 배의 주낙으로 잡는데, 부산에서는 기장 지역에서만 나는 특산물이다. 수심 100m 개펄에서 장어주낙의 미끼를 물고 낚여 올라오는 것이다. 크기는 지름 15~20m로 다른 지역 말미잘보다 몸체가 커 4~5마리면 1㎏이 넘어간다.
붕장어 잡이 배는 2t에서 100t 정도의 크기다. t당 주낙줄을 10바퀴 정도 싣는데, 대개 40~60바퀴씩 준비하여 출항한다. 470~500m 주낙 줄 '한 틀'을 '한 바퀴'라고 하는데, 크고 둥근 고무대야 안에 한 틀의 주낙줄을 준비해 두기에 그렇게 부른다. 물때와 계절 따라 차이는 있지만 보통 30~80㎏ 정도 어획한다고.
기장의 말미잘 요리는 정성의 음식이다. 그만큼 식재료의 손질이 어렵고 까다롭다는 뜻이다. 우선 칼로 말미잘 표피의 점막을 긁어내고 촉수를 제거한다. 그리고는 말미잘을 반으로 갈라 안의 내장을 일일이 손질한 후, 적당한 크기로 자른다. 장만한 말미잘은 체에 걸러 흐르는 물에 불순물을 씻어내고 손으로 바락바락 문질러 독을 뺀다. 제대로 장만하지 않으면 말미잘에 남아 있는 독성으로 먹은 후 입과 목이 싸~하다.
일광 학리 해녀촌에서 지인들과 앉았다. 식탁에 '말미잘매운탕'과 '말미잘수육' '말미잘숯불구이'가 차례대로 올라온다.
'말미잘매운탕'은 말미잘과 붕장어를 함께 넣고 얼큰하게 끓인 음식이다. 밤새 고운 붕장어 뼈 육수에 된장, 고춧가루를 풀고 적당히 토막 낸 붕장어와 말미잘을 넣어 20~30분을 더 끓여내기에 '여름철 보양식'으로는 그저 그만이다.
그 효능이 '보약 한 재' 효과라고 하여 '바다의 십전대보탕' '용봉탕'이라는 별칭이 붙기도 했다. '신랑각시탕'으로도 불리는데, 말미잘은 여성에게 유효하고 장어는 남성의 기력 보충에 좋으니, 둘의 궁합이 부부금슬 좋아지는 음식 중 최고의 반열이라는 뜻이겠다.
◇ 꼬독꼬독 씹히는 매력적인 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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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담백한 맛의 수육. |
국물 한술 뜬다. 국물이 걸쭉하고 진한데도, 얼큰하고 시원한 맛이 돈다. 고소한 맛 또한 정점이다. 방아와 땡초, 대파, 양파 등속과 간 마늘 등을 넉넉히 넣어서인지 마치 해물된장국처럼 개운하기조차 하다.
말미잘 한입 집어 맛을 본다. 아작아작 오독오독 씹는 맛이 일품이다. 부드러운 연골을 씹듯 톡톡 터지는 식감이 아주 특별하다. 짭조름한 양념 간 밴 도가니와도 비슷하다. '말미잘수육'과 '말미잘숯불구이' 또한 그 맛과 식감이 독특하고 이색적이다.
말미잘수육을 맛본다. 은근하고 담담하게 씹히다가 점점 고소한 향이 강하게 치고 올라오는 매력이 있다. 은은하게 간이 배여 있기에 초고추장이나 간장에 살짝 찍어 먹어도 그 맛이 훌륭하다.
숯불에 구운 말미잘숯불구이도 한입 집어 먹어본다. 우선 숯불 향이 물씬 나고 달짝지근한 고추장양념의 감칠맛이 특별하다. 숯의 불향과 들큰한 양념, 말미잘 본연의 식감이 서로 어우러져 환상적인 맛을 낸다. 한입 가득 씹으니 꼬독꼬독한 식감도 최고점을 찍는다.
서양에서는 아름다우면서도 치명적인 '바다의 꽃'으로, 우리나라에서는 입에 올리기 거북하지만 서민들의 삶의 해학을 느낄 수 있는 '말의 미주알'로, 서로가 극명하게 대비되는 바다생물, 말미잘. 어찌 됐거나 독성을 가진 강장동물 '말미잘'이 기장 사람들에게는 여름을 나는 '이독치독, 이열치열의 음식'으로 환영받고 있으니, 이 또한 부산 사람들의 수용적인 성정과 부산의 '음식 다양성'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식재료라 할 것이다.
※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아 취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