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새들의 109가지 둥지 탐사 기록
- 인간처럼 허세·사치·낭비 없이
- 과학적이고 지혜로 찬 보금자리
- 기발한 건축적 구조에 탄식 넘어
- 생명의 경이·삶의 깨달음 얻게해

"몬테주마매달린집새는 30m가 넘는 나무의 가지 끝에 풀을 엮어서 1m나 되는 긴 둥지를 짓습니다. (천적인 원숭이가 나무를 타고 올라와도 둥지 안에 손이 닿지 않는다.) 천적이 집에 들어오지 못하게 하는 방법이 또 있습니다. 옐로럼프카시케는 땅벌 집 옆에 둥지를 짓습니다. 원숭이나 긴코너구리 등 천적이 둥지에 다가오면 벌은 자기 집을 습격하려는 적으로 간주하고 달려듭니다."(58~60쪽)

오목눈이의 둥지- 거미줄과 나방 고치의 실, 이끼, 다른 새의 깃털 등을 이용해 만들어 견고하고 보온성이 좋다.(왼쪽), 몬테주마매달린집새의 둥지- 천적 원숭이가 올라오지 못하게 높이 30m가 넘는 나무 위에 길이 1m가 넘게 지었다.

이 대목을 읽고, 이 장면을 그린 그림을 보는 동안 여러 종류의 느낌이 몰려왔다.

새들은 어떻게 이렇게 '과학적으로' 집을 짓는 것일까. 집 짓는 법을 어떻게 배우는 걸까. 따로 배우는 게 아니라 본능에 따라 짓는 것이라면, 그 본능을 유전자에 각인하기까지 도대체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렸을까. 간명한 글과 세밀한 그림이 가득한 둥지로부터 배우다는 자연사를 접하는 즐거움과 생명의 경이를 선사하는 과학 분야 책이다.

무척 '인간적인' 감정도 밀려온다. 어딘지 짠한 것이다. 둥지를 마련하기 위해 새와 짐승이 쏟아붓는 노력, 발휘하는 지혜는 상상을 넘어선다. 선인장굴뚝새와 큰로드러너는 둥지를 가시투성이 선인장 위에 짓는다. 가시투성이 선인장 위에 집을 짓느라 고생이 이만저만 아니겠지만, 일단 지으면 뱀 같은 천적이 접근하지 못한다.

아프리카스윈호오목눈이는 식물의 솜털과 이삭, 면화를 펠트처럼 가공해 둥지를 짓는데 가짜 입구를 따로 만든다. 천적을 속이기 위해서이다. 노랑가슴베짜는새의 수컷은 암컷이 보는 앞에서 열심히 집을 짓는다. 어느 정도 완성되면, 암컷에게 검사를 받는다. 암컷이 둥지를 보고 마음에 들면 암컷과 수컷은 부부가 된다. 암컷이 '이 수컷은 집 짓는 솜씨가 형편없군'하고 느끼면 모든 게 도로아미타불. 암컷은 떠나버린다.

새들이 온 힘을 다하는 모습에서 집 장만을 위해 애쓰는 한국인의 모습이 겹치기 때문에 이 책은 짠하다. 그런 면에서 자기를 돌아보는 인문적 사유를 도와주는 과학책이다.

일본 그림책 작가 스즈키 마모루가 그리고 쓴 '둥지로부터 배우다'는 역작이다. 떼베짜는새, 망치머리황새, 무덤새, 굴파기올빼미, 벼랑제비 같은 새뿐 아니라 두만가시고기, 일본다람쥐, 굴토끼 등 109개 종류의 동물 둥지를 보여준다. 설명과 그림이 이토록 간명하다는 것은 저자가 이 분야를 깊이 알고 사랑한다는 뜻이다. 그는 20년 넘게 동물 둥지를 탐사했다.

이 책을 읽다 보면, 점점 빠져들면서 작은 깨달음에 닿게 될 것이다. 동물은 온 정성을 다해 둥지를 마련하는데 그 과정에서 허세, 사치, 낭비는 전혀 없다는 점이다. 자연 속에서 자연스러운 집을 마침맞게 짓고 살 뿐이다. 기어코 집을 투기의 블랙홀로 만든 우리 현실이 떠오른다.

이 책을 감수한 이정모 서울시립과학관장은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더 중요한 것은 둥지의 구조 외에도 그들의 세상을 사는 방식과 집을 짓는 태도일 것이다. 지금의 우리에게는 자연이 주는 이러한 가르침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고 썼다.

조봉권 기자 bgjoe@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