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르마코스. 희생양. 또는 속죄양. 문명 국가라던 민주주의 시초 그리스 시대에도 말도 안 되는 의식이 있었어요. 국가에 기근이나 흉년 같은 재앙이 들면 보복위험 없는 약자들, 병든 부랑자, 가난하고 불구인 사람들을 폴리스 밖으로 데려가서 돌로 쳐 죽이는 처형이지. 기근이나 흉년이 든 걸 그 사람들한테 책임을 묻는 거예요."

21~31일 나다소극장에서 상연되는 연극 '실종' 연습 장면. 극단 미지 시어터 제공

21일 나다소극장에서 개막하는 미지 시어터의 연극 '실종'(양지웅 작·연출)의 대사다. 미스터리 추리극이라는 대중적인 외피(外皮) 속에 묵직한 메시지를 담은 작품의 성격을 엿볼 수 있다.

연극은 조 기자(양성우)와 술집 고 사장(염지영)이 결박된 상황에서 시작한다. 이들을 납치한 배 씨(김병철)는 조 기자에게 '의문의 사건'을 제보한다. '기레기'로 자조했던 조 기자는 이 사건을 추적해가며 '진짜 기자'로 변해간다.

납치나 실종은 영화 드라마에서 흔히 다뤄지는 소재다. 미스터리 추리극에서 이를 다룰 때는 '범인 찾기'를 향해 일직선으로 내달리는 스토리로 장르 특유의 카타르시스를 준다.

그러나 이 연극은 다르다. 중층으로 쌓인 이야기와 함축적인 대사가 간단치 않다. '당신도 공범이다'는 포스터의 문구도 관객을 자문(自問)하게 한다. '실종'이라는 제목 역시 현시대를 비추는 알레고리로 기능한다.

양지웅 연출은 "수년 전부터 우리 사회에서 사회적 약자가 희생되는 일련의 사건이 있었다. 예술가로서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 질문하며 이 연극을 만들게 됐다. 관객 입장에서는 대사 속에 숨겨져 있는 사건의 정보나 수수께끼를 쫓아가는 데서 재미를 느낄 수도 있다"고 말했다.

▶21~31일 오후 8시(월요일 공연 없음) 부산 남구 대연동 나다소극장, 균일 1만 3000원, 010-9237-9390

박지현 기자 anyway@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