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71년 '기러기 남매' 함께 출연
- 비중 맞춘다고 작가 세번 교체

- 72년 가수왕전 때 시민회관 화재
- 불참 나훈아는 괘씸죄 방송금지

- 남진, 미국서 엘비스 의상 구입
- 화려한 무대로 차별화 꾀해

두 차례의 리사이틀을 통해 열광적인 팬들을 확보한 남진은 팬클럽을 조직화했다. 1972년 6월 18일 1000여 명으로 시작된 남진 팬클럽은 가입비 500원에 매달 회비가 100원(1972년 버스 요금 20원)이었지만 이후 1만여 명까지 늘어났다. 그들의 활동은 신곡 출반 때 방송에 신청 엽서 보내기, 연말 시상식 팬 투표에 대비해 집단으로 엽서 보내기, 리사이틀 때 박수 부대 역할 등으로 조직적으로 전개됐다.

	남진과 나훈아가 1971년 함께 출연한 영화 '기러기 남매'.

이에 대한 보답으로 남진은 팬클럽 회원들을 위해 청평 남이섬에서 야유회를 했다. 이상화악단과 평소 친분이 두터운 동료 연예인 이상열, 태원, 이태신, 임희숙, 챰스, 안일 등이 동행해 호화로운 미니 쇼의 형식으로 진행됐다. 팬들의 노래자랑, 고고 페스티벌 등은 물론 행운권을 추첨해 당첨된 사람 50명에게는 남진의 사인이 담긴 독집을 상품으로 전달하는 초호화 야유회였다.

1972년 말에는 남진과 나훈아의 과열된 라이벌전으로 사람이 아니라 건물이 사망(?)하는 사건이 터졌다. 12월 2일 시민회관에서 열린 'MBC 10대가수 청백전'은 가수왕이 누가 될지 초미의 관심사였다. 그런데 대세가 기울었음을 파악한 나훈아는 월남 공연을 핑계로 불참했다. 당연히 남진이 가수왕을 차지했는데, 공연 도중 조명기 과열로 화재가 발생해 시민회관이 전소하는 바람에 한국의 대표적인 공연장으로 10년 넘게 기여해왔던 대중음악의 전당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되었다. 이때 나훈아는 괘씸죄로 MBC에서 방송 금지를 당한다.

	남진이 미국에서 구입한 엘비스 의상. 쌀 열두 가마니보다 비싼 돈을 들였다.

거듭되는 라이벌전은 계속해서 새로운 모습으로 변신할 것을 요구했다. 남진은 1972년 10월 미국으로 공연갔다가 라스베이거스에서 엘비스의 쇼를 보고 그의 무대 의상에 반했다. 어렵게 수소문해 600달러(당시 한화 25만 원, 1972년 쌀 한 가마니 2만 원)나 되는 거금을 주고 사 왔다. 이 옷은 소매와 바지 끝에 모두 25개의 전등이 꽃 모양으로 장식되어 달려 있는데, 허리띠 뒷부분에 숨겨진 전지에 연결되어 불 꺼진 무대 위에서 입고 춤을 추면 현란한 장면이 연출되는 실로 기상천외한 의상이었다. 이 옷은 1973년 2월 13일부터 아세아극장에서 열린 '남진 제3회 리사이틀'에 선보였고, 일렉트릭 기타까지 들고 나와 연주했다. 이때부터 남진은 트로트 가수의 이미지에서 벗어나 단추를 가슴까지 풀어헤치고 한쪽 다리를 덜덜 떨면서 시대를 앞서가는 팝 가수의 이미지를 연출하게 된다.

무대 위에서의 불꽃 튀는 라이벌전은 은막의 무대인 영화로 옮겨져 그 도를 더해갔다. 1971년의 '기러기 남매'란 영화에서 남진과 나훈아가 동시에 출연했다. 그런데 촬영에 들어가기도 전부터 기싸움이 시작됐다. 두 사람의 출연 비중이 똑같지 않다고 해서 시나리오 작가가 세 번이나 바뀌는 수난을 겪었다. 결국 시나리오를 작가 신봉승이 맡아 양쪽 모두 56신으로 똑같이 조정하여 승낙을 받았다. 게다가 주제가도 똑같이 두 곡씩 부르고, 포스터에 얼굴도 똑같은 크기로 나오게 하고, 자막도 아래위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세로로 똑같이 나오게 하고서야 합의됐다.

	남진 팬클럽 야유회. 김형찬 제공

그런데 남진과 나훈아의 라이벌전을 대하는 팬들의 태도나 이것을 다루는 방송의 관행은 일정한 차이를 보였다. 남진을 좋아하는 팬들은 주로 도시에서 자라난 사람들이며, 나훈아를 좋아하는 팬들은 주로 농어촌에서 도시로 와서 정착한 사람들이다. 그래서 남진은 트로트를 넘어 엘비스를 모창하며 팝가수로서 이미지를 바꾸려 했지만, 나훈아는 꺾는 목을 강조하는 트로트 창법으로 일관한다. 따라서 방송에서도 이에 걸맞은 이미지로 연출했다. 남진이 나올 때는 화려한 의상과 세트로 세련된 도시적 분위기를 연출하고 나훈아는 자연 속에서 작업복이나 평상복을 입고 소탈한 분위기로 노래하는 모습을 연출한다.

1960년대에 경제개발과 동시에 농어촌에서 도시로 인구가 이동했고 1970년대에는 상당한 수준으로 진행되었지만, 도시적인 삶으로의 전환은 좀더 시간이 걸리는 일이었다. 따라서 도시에서 나고 자란 사람들과 고향을 떠나 도시로 흘러들어온 사람들의 문화적 취향에는 상당한 차이가 있었고, 각자의 취향에 따라 가수를 선택하면서 이런 라이벌전의 토대를 이루었을 것이다. 또한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이 격화된 모습을 보인 것도 1970년대에 들어오면서 각종 주간지와 TV 등 매체의 확장으로 상업주의적 관점에서 라이벌전을 부추겼기 때문이며 이것이 라이벌전의 차원을 다르게 만들었다.

이렇게 1970년대에 들어서서 전개된 남진과 나훈아라는 걸출한 두 트로트 스타의 라이벌전은 도시와 농촌, 영남과 호남이라는 사회적 측면이 반영되어 진행되었다. 팬들 간의 라이벌전, 영화계에의 라이벌전, TBC와 MBC라는 양대 방송국 간의 라이벌전, 지구와 오아시스라는 메이저 음반사 간의 라이벌전으로 확대되면서 트로트는 1970년대에 전성기를 맞았다.

대중음악저술가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아 취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