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8군서 인기 팝송을 카피하며
- 히키라는 애칭으로 불리던 그는
- 자기 음악을 만들기 시작했지만
- 록으로 돈을 벌 수 없던 시대에
- 밴드 결성·해체를 반복해야 했다

6·25전쟁 중 부모를 잃고 고아가 되어 초등학생 나이부터 힘든 노동을 시작했던 신중현은 기타 학원 강사를 하다가 1955년 스프링버라이어티쇼에 입단하면서 미8군 무대로 진출한다. 키만 한 기타를 메고 미군들이 좋아하는 신곡을 엘비스의 흉내까지 내면서 완벽히 소화하는 신중현을 미군들은 '히키' 혹은 '재키'라는 별명으로 부르며 환호했다. 그런데 신중현은 이에 안주하지 않고 놀랍게도 자신의 연주곡을 담은 음반을 발매한다.

1966년 당시 애드포 멤버. 왼쪽부터 리드기타 신중현, 베이스 한영현, 드럼 권순권, 리듬기타 이승재. 김형찬 제공

1960년대 초반 발매했던 '히키신 기타 멜로듸 경음악집'이 그것이다. 여기에 수록한 12곡은 기존의 민요, 동요, 가곡을 자신의 스타일로 연주한 연주곡이다. 부기우기 스타일로 연주한 '아리랑', 재즈적 기타 솔로가 들어 있는 '동심초', 국악 리듬을 도입한 '밀양아리랑' 등은 그가 미8군 무대에 서기 위해 연습했던 음악 양식들을 바탕으로 자신의 음악 스타일을 확립하기 위한 습작들이라 볼 수 있다. 이때 이미 그가 국악 리듬에 관심을 보인 사실은 매우 중요하다.

1962년 생계 유지를 위해 4인조 패키지쇼 그룹인 클럽데이트를 결성했다. 1963년 클럽데이트를 해체하고 미8군에서 활동하던 멤버들을 모아 드디어 4인조 록그룹 애드포를 결성한다. 팀명인 애드포는 기타 코드의 이름인데, 3화음으로 이루어진 기존의 안정된 코드에 비화성음인 네 번째 음을 첨가하여 만들어지는 긴장감 있는 성격의 코드다. 따라서 팀명을 통해 신중현은 기존의 음악계에 새롭고 긴장감을 주는 음악으로 도전하겠다는 포부를 드러냈다.

1960년대 초 발매했던 '히키신 기타 멜로듸 경음악집'.

미군 제7사단에서 4개월간 연습하여 미8군 쇼 무대에 그 모습을 보였지만, 비틀스 열풍이 있기 전이라 큰 반응을 얻지 못했다. 애드포는 결성 이후 KBS-TV에 출연하거나 '세시봉'과 같은 음악감상실의 라이브 무대에서도 선을 보였다. 그러나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6개월 만에 해산하고 말았다.

1963년 비틀스가 첫 싱글 음반을 내고 전 세계적으로 선풍을 일으키는 것을 보고 신중현은 한국에서도 비틀스와 같은 록그룹을 선보이겠다고 생각하고 새롭게 멤버를 모았다. 이번에는 음반부터 낼 결심을 했다. 과거 실패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밥줄이던 미8군 생활까지 접었다. 생계를 위해 동두천 기지촌에 방을 얻어 멤버들과 함께 생활하면서 밤에는 쇼 출연으로 돈을 벌고 낮에는 작곡과 연습을 했다. 그러나 음반을 내기 직전 멤버들 간의 문제로 팀은 또다시 해체됐다. 다시 서울로 올라와 멤버를 재정비하고 1964년 12월 '애드훠의 첫 앨범'을 발매한다.

그러나 '한국 최초의 록밴드 음악 음반 발매'라는 타이틀은 1963년 늦가을에 결성돼 1964년 7월 3일 첫 음반을 발매한 키보이스에게 돌아갔다. 그런데 키보이스의 첫 음반은 비틀스를 비롯한 외국 팝송을 리메이크한 것이었기에, 신중현은 '한국 최초의 록밴드 창작 음반'이라는 타이틀로 만족해야만 했다.

음악의 내용을 보면 객원 여성 보컬인 장미화가 부르는 '천사도 사랑을 할까요'와 '굿나잇 등불을 끕니다'의 두 곡은 팝적인 스타일이고, '쓸쓸한 토요일 밤'과 '상처 입은 사랑'은 블루스 리듬을 사용하고 있다. 게다가 생뚱맞은 것은 바이올린이 '빗속의 여인'을 비롯한 여러 곡에서 계속 사용된다는 점이다. 이것은 신중현이 1962년부터 클래식 음악 전공자로서 한국 최초로 대중음악인들을 가르쳤던 이교숙에게 음악을 배우고 있었던 경험이 반영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렇게 애드포의 첫 음반이 본격적인 록음악이라고 보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었던 이유는 신중현의 첫 번째 시도였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키보이스가 초기에 비틀스 음악의 카피에 일관했던 것과는 달리 신중현은 처음부터 창작곡을 내놓았고 자신이 공부했던 서구의 대중음악을 자신의 스타일로 재창조하려는 의욕이 강했기 때문이라고 판단된다. 첫 음반에서 '빗속의 여인'이 알려지면서 가끔 무대에 서기도 했지만, 여전히 1960년대 중반은 젊은이들의 새로운 음악인 록 음악이 돈벌이가 될 수는 없는 시기였다. 신중현은 1966년 '한국의 벤처스 Add4 신중현 경음악 편곡집 vol.1'이라는 음반을 마지막으로 출시하고 밴드를 해산했다.

신중현은 먹고살기 위해 다시 미8군 무대로 복귀해 1966년 패키지쇼를 위한 그룹 조커스, 1967년 미8군 무대 전속 하우스 밴드인 블루즈테트를 거쳐 1968년 동키즈라는 그룹을 만들었다. 동키즈에는 오르간이 새롭게 도입되는데 그 이유는 신중현이 동키즈 때부터 사이키델릭이라는 새로운 음악을 시도했기 때문이다. 사이키델릭 음악은 1960년대 기성세대의 가치관을 부정했던 미국의 히피들이 자신들이 생각하는 이상향에 도달하기 위해 복용했던 마약의 경험을 음악으로 표현한 초현실적인 음악이다. 그러나 이렇게 새로운 음악적 시도를 위한 신중현의 투지가 드높을수록 현실의 장벽은 신중현의 목을 더욱더 죄어올 뿐이었다.

대중음악저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