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극단적인 밑바닥 인생살이에도
- 밥그릇·팬티·아랫목 사수 위한
- 그들만의 투표·정권교체가 있다

권력을 인간 관계에 편재한 것으로 파악한 것은 미셀 푸코였다. 그 힘의 의지는 도처에서 널려있다. 국가 간, 국내 정치뿐 아니라 직장, 학교, 심지어 가정까지. 가장 작은 단위로 환원한 것이 연극 '방바닥 긁는 남자'(2~12일 한결아트홀)다. 네 사람이 누우면 꽉 차는 비좁은 방바닥.

연극 '방바닥 긁는 남자'에서 네 사내가 바닥에 누워 국민체조를 하고 있다. 한결아트홀 제공

극은 코를 골며 자던 네 사내가 깨어나는 데서 시작한다. "자고 또 자고…인생이야 자다보면 끝나겠지"라며 하루 19시간을 자는 이들은 자신을 방바닥에 납작하게 붙어있는 '누룽지 인간'이라고 칭한다. 국민체조 음악이 나오면 다시 드러누워 손발만 들어올린다. 신문지를 찢어 세수하고 바지 속까지 닦는다. '잠자리'인 방바닥에 침을 뱉기도 한다. 그러나 누추한 방 무대 세트와 배우의 지저분한 몰골·행동으로 공들여 묘사되는 '밑바닥 인생'은 관객의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외피에 불과하다. 진짜는 지금부터다.

교회 집사가 두고 간 밥 한 그릇을 나눠먹는 장면. "나 한 숟갈, 우리 편 한 숟갈." 숟가락을 쥔 사내가 "나는 지도층"이라며 자신과 자기 편인 사내의 밥그릇만 채우고 나머지 두 사내에게는 온갖 이유를 붙여 밥을 나눠주지 않는다. "너희는 지도층, 우린 서민이냐. 서민 밥까지 싹싹 긁어먹는 게 지도층이냐!" 빈 숟가락을 쥔 사내는 부르르 떤다. 지도층 사내는 "밥 많이 먹을 권리, 따뜻한 곳에서 잘 권리, 뭐든 내 것이라고 우길 권리! 내 왼손, 오른손, 입으로 분리했어. 삼권분립!"을 외치며 팬티까지 빼앗아 간다.

권불십년(權不十年)이라 했던가. 이 방바닥에서는 권불일년이다. 때마침 오늘이 1년만에 두대왕(頭大王)을 뽑는 선거날이란다. 투표를 위한 줄자가 동원되고 머리둘레가 더 큰 사내로 정권이 교체된다. 권력을 빼앗긴 사내는 "되자마자 시민 숙청한다"고 저항하지만 소용없다. 팬티와 밥그릇, 아랫목은 이제 새 정권의 차지다.

이 연극은 비단 권력관계 풍자에만 그치지 않는 데 묘미가 있다. 방 안에 자신을 유폐한 채 나가기를 두려워하던 사내들이 마지막 장면에서 방 밖으로 나오며 외친다. "일단 신문사부터 가자. 누룽지 인간이 누룽지 생활을 접고 세상을 향해 나가는 인류학적 대사건을 알리는 거야." 이 뉴스가 보도된다면, 그것은 아마 자기만의 '감옥'을 가진 이들을 향한 강렬한 유혹이자 위로, 희망의 메시지가 되지 않을까.

▶2~12일(월요일 공연 없음) 평일 오후 8시 주말 오후 4시 부산 연제구 거제동 한결아트홀, 일반 3만 원. (051)868-5955 박지현 기자 anyway@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