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석 스님의 하얀 연꽃 <11> 낭중지추

시대와 함께 아파할 줄 아는 뾰족한 신념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입력 : 2016-06-03 19:29:19
| 본지 11면

중국의 전국시대 말엽, 진나라의 공격을 받은 조나라 혜문왕은 평원군을 초나라에 보내어 구원군을 청하기로 했다.

맑은 하늘 아래 푸른 소나무의 기상처럼 훌륭한 자질은 스스로 드러나게 돼 있다.

평원군은 문무의 덕을 겸비한 수행원 스무 명과 동행하기로 하고 인재를 찾았다. 열 아홉 명은 찾았고, 나머지 한 사람을 찾아야 하는데 마땅한 사람이 없었다. 그때 모수라는 사람이 자원하고 나섰다.

"제발 저를 수행원 중에 넣어주십시오."

평원군이 말했다."선생은 나의 문하에 몇 해 동안이나 계셨는가?"

"삼 년 됐습니다."

"현명한 선비가 세상에 있으면 마치 송곳이 주머니 속에 있는 것처럼 그 끝이 즉시 나타나 남의 눈에 띄는 법이오. 그런데 내 집에 온 지 3년이나 되었다는 그대는 이제까지 단 한 번도 이름이 드러난 적이 없지 않소?"

그때 모수는 말했다. "그러니 오늘 비로소 주머니 속에 넣어 주시기를 청하는 것입니다. 저를 조금 더 빨리 주머니에 넣어 주셨더라면 벌써 송곳 자루까지 나왔을 것입니다."

재치 있는 모수의 답변에 만족한 평원군은 모수를 마지막 수행원으로 임명했다. 재능이 뛰어난 사람은 아무리 숨어 있어도 눈에 띈다는 낭중지추(囊中之錐)라는 고사성어다.

은유자적이라는 말처럼 시대가 자신과 맞지 않으면 자신을 숨기고 강태공처럼 세월을 낚는 사람이 있지만, 그렇게 살아도 그 재능은 숨길 수 없을 것이다. 그런데 나는 그런 재주와 시대를 아파하는 마음이라면 두꺼운 한쪽 주머니 속에서 뾰족함을 감출 것이 아니라 날카로운 예지로 세상을 맑혀주는 것이 더 좋은 것 아닐까 생각해 본다.

세상은 맑음으로써만 만들어지는 것도 아니고 어둠으로써만 만들어질 수도 없다. 어둠과 밝음이 공존함으로써 세상은 우리가 원하는 밝음을 내어놓을 수가 있을 것이다. 시대가 혼탁해질수록 세상은 선구자가 되어 세상을 맑혀줄 영웅을 찾게 되고 그런 영웅은 유야무야 세상과 적당히 타협하는 소인이 아닌, 본질을 날카롭게 꿰어 보는 눈 밝은 대인일 것이다.

그러한 대인이 어디 나라를 다스리는 곳에서만 필요하겠는가. 종교의 신념을 실천해야 하는 곳에도 반드시 필요하고 작은 동네를 다스리고 작은 모임에서도 그런 사람은 꼭 있어야 자신의 어둠을 감추려는 세상의 부정을 맑힐 수 있지 않을까.

세상을 살아가다 보면 다양한 사람을 만나게 된다. 무조건 나의 의견에, 나의 행동에 찬성하고 비위를 맞추는 사람보다는 세상을 살아가는 신념이 뚜렷한, 날카로움을 숨기고 살아도 어쩔 수 없이 드러나는 사람을 만날 때가 있다. 그럴 때마다 나는 감춰두어도 주머니 속을 뚫고 나오는 송곳처럼 세상의 곪은 곳을 그 날카로운 끝으로 콕 찔러주는 사람이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