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시대에도 불 밝혀 멸치잡이
- '물속 울타리' 어전 치는 방식은
- 오늘날의 죽방멸치로 계승

- 더 많은 어획량 위해 고안한 게
- 뭍에서 후릿그물 당기는 방식
- 1953년 소설 '갯마을'서 잘 묘사

- 남녀노소 고된 후리질 작업
- 예부터 능률 위해 노동요 발달
- 기장지역 기록만 남았지만
- 다대포선 전승돼 문화재 지정

■기다려 잡고, 찾아서 잡고

	개항 후 부산 송도 앞바다에서 어부들이 멸치를 잡고 있는 모습. 1910년께 찍은 사진으로 추정된다.

현재 멸치는 대부분 유자망을 이용해 잡는다. 유자망은 어선을 타고 바다에 나간 후 멸치의 이동로에 그물을 쳐서 잡는 방식이다. 배 한척을 사용하기도 하고 두 척을 사용하기도 한다고 한다. 그럼, 조선시대에는 어떻게 멸치를 잡았을까?

김려(金鑢, 1766∼1822)는 '우해이어보(牛海異魚譜)'에서 "더운 날에 안개가 짙게 낄 때에 조수가 솟는 곳에 가서 삼태그물로 건져 올린다"고 했다. 또 정약전(丁若銓, 1758∼1816)은 '자산어보(玆山魚譜)'에서 "멸치는 불빛을 좋아하기 때문에 밤에 등을 밝혀 움푹 팬 곳으로 유인하여 광망(匡網)으로 떠올린다"고 했다. 이로 미루어 볼 때 조선시대 어부들은 멸치 떼가 자주 출몰하는 해역에 그물을 설치하고 밝은 빛을 좋아하는 습성을 이용해 멸치를 잡았던 것 같다.

	유운홍(劉運弘, 1797-1859)이 그린 '어선(漁船)'. 국립중앙박물관 제공.

일반적으로 잘 알려진 조선시대의 고기잡이 방법은 어전(漁箭)을 이용하는 것이다. 어살이라고도 불리는 어전은 물고기를 잡기 위해 자주 출몰하는 해역에 쳐 놓은 울타리다. 밀물을 타고 어전에 든 물고기는 썰물에 빠져 나가지 못해 꼼짝없이 갇히고 만다. 멸치도 이러한 방식으로 잡았는데, 요즘도 남해안 일부 지역에서는 이러한 방식을 계승해 멸치를 잡고 있다.

어전을 설치해 잡은 멸치는 깨끗하다. 그물에 손상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상품성이 높다. 요즘 죽방멸치가 높은 가격에 거래되고 있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하지만 이 방식으로는 다량의 멸치를 어획하기가 어렵다. 멸치가 어전 안으로 들기를 기다려야 하니 어획량이 적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멸치를 보다 많이 잡기 위해서는 그물을 이용해야 한다. 그물은 주로 후릿그물을 사용한다. 망쟁이는 높은 곳에서 멸치 떼의 이동 상황을 살핀다. 그러다가 멸치 떼가 해변으로 다가오면 뭍에 있는 사람들에게 그물을 내리라고 지시한다. 그리고 그물 속으로 멸치 떼가 들어오면 뭍에서 사람들이 힘을 합쳐 그물을 끌어당기게 된다. 소설가 오영수(吳永壽, 1914~1979)의 1953년 작품 '갯마을'에는 이런 멸치잡이 광경이 잘 묘사되어 있다.

"초여름이었다. 어느 날 밤, 조금 떨어진 멸치 후리막에서 꽹과리 소리가 들려왔다. 여름 들어 첫 꽹과리다. 마을은 갑자기 수선대기 시작했다. 멸치 떼가 몰려온 것이다. 멸치 떼가 들면 막에서는 꽹과리나 나팔로 신호를 한다. 그러면 마을 사람들은 막으로 달려가서 그물을 당긴다. 그물이 올라 수확이 많으면 많은 대로 적으면 적은 대로 '짓'이라고 해서 대개는 잡어를 나눠 받는다. 수고의 대가다.……해순이와 숙이 엄마는 물기슭 모래톱으로 해서 후리막으로 달려갔다. 맨발에 추진 모래가 한결 시원하다. 벌써 후리는 시작되었다. 굵직한 로프에는 후리꾼들이 지네발처럼 매달렸다. -데에야 데야- 이편과 저편에서 이렇게 서로 주고받으며 로프는 팽팽해지면서 지그시 당기어 온다. 해순이와 숙이 엄마도 아무렇게나 빈틈에 끼어들어 줄을 잡았다. 바다 저만치서 선두가 칸델라 불을 흔들고 고함을 지른다. 당겨 올린 줄을 뒷걸음질하는 사내들이-데에야 데야-를 선창해서 후리군들의 기세를 돋우고, 막 거간들이 바쁘게들 서성댄다. 가마솥에는 불이 활활 타고 물이 끓는다."

그물에 든 멸치는 도망치려 발버둥 치다가 촘촘하게 짜인 그물코에 몸이 꽂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신세가 되고 만다. 뭍의 사람들은 그물을 끌어낸 뒤 곧장 턴다. 그물코에서 멸치를 떼어내기 위해서다. 그물을 이용한 멸치잡이, 즉 멸치 후리질은 참으로 고된 작업이다. 또 남녀를 불문하고 여럿이 함께 하는 공동 노동이다 보니 서로 호흡도 잘 맞춰야만 한다. 그래서인지 흥을 돋아 노동의 고단함을 잊고 능률을 높이기 위한 노동요가 일찍부터 발달했다.

■만경창파…메러치 떼가 몰려오네

	남해군의 죽방멸치 어장.

'멸치의 메카'인 기장군 일광면 칠암리와 장안읍 임랑리에는 '멸치 터는 소리'가 전한다. '후리소리' 혹은 '멸치잡이 소리'라고도 부르는 이 노동요는 일찍이 채록되어 문헌으로만 전할 뿐 어업 현장에서는 전승이 끊긴지 오래다. 공동 작업인 후리질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아쉬운 대로나마 사설을 잠시 감상해 보자.

자갈치 시장에 가니까/ 헤이 야차 에야차/ 멸치 한 통에 삼천 원/(중략)/ 어서나 털고 가자/ 배가 고파 밥을 먹고/ 어서나 털고 가자/ 정든 님이 기다리네/ 멸치 한 통 담아 이고/ 부산자갈치 가니/ 멸치 한 통 담아 이고/ 달도 밝네 보름달이가/ 밝아서 놀기 좋네/ 높은 산에는 눈 날린다/ 낮은 산에는 재 날린다

	지난 4월 대변항에서 어부들이 멸치를 그물에서 털어내고 있다. 국제신문DB

멸치털이에 시장해진 배를 채우고 멸치를 내다팔기 위해 자갈치 시장으로 발걸음을 재촉하는 모습이 흥겹게 그려진다. 기장과 달리 다대포에선 후리소리가 잘 정리되어 전승되고 있다. 이 소리는 다대포 지역에서 멸치잡이를 할 때 불렀던 노동요다. 다대포는 부산 낙동강 하구에 잇닿아 있기 때문에 멸치가 살이 많고 맛있다고 한다. 다대포 후리소리는 '그물 싣는 소리', '용왕제'. '그물 당기는 소리', '멸치 터는 소리', '풍어소리'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멸치 후리질의 전 과정이 잘 정리되어 있어 동해안의 '명태잡이 소리', 서해안의 '조기잡이 소리'와 함께 우리나라의 대표적 어업 노동요로 꼽힌다. 1987년 7월 1일 부산광역시 무형문화재 제7호로 지정되었다. 내친 김에 다대포 후리소리도 감상해 보자.

'그물 싣는 소리'

어부님네 한마음 일심으로 배에다 그물을 잘 사려 실읍시더/에-헤이 사리야/ 사려보세, 사려보세/ 그물 한 채를 사려보세/(중략)/그물 한 채를 내어다가/ 웃시울에 우끼를 달고/ 아래시울에 돛을 달아/ 그물 한 채 꾸며다가/ 고깃배에 사려 실어/ 멸치잡이를 떠납시더/ 여보시오 어부님네/ 삼치, 꽁치, 갈치를 두고/ 멸치 잡아 무엇하리/ 여보시오 그 말 마소/ 열두 독 젓을 담아/ 황금빛에 맛 들면/ 첫째 독은 헐어다가/ 나라에다 상납하고/ 둘째 독은 헐어다가/ 부모님 전에 봉양하고/ 셋째 독은 헐어다가/ 형제간에 갈라 먹고/ 넷째 독은 헐어다가/ 이웃 간에 노놔 먹지/ 남은 독은 팔아다가/ 논밭전지를 많이 사서/ 부귀영화를 누려보세/ 다 실었소


'그물 당기는 소리: 후리소리'

어기여차 당겨주소/ 어기여차 당겨주소/ 용왕님 은덕으로/ 메러치 풍년 돌아왔네/ 어기여차 당겨주소/ 산은 첩첩 천봉이요/ 물은 잔잔 백옥인데/ 우리 다대포 꽃이 피네/ 꽃 피고 봄이 오니/ 매러치 풍년이 아닐쏘냐/ 십오야 둥근 달이/ 삼경인들 변할쏘냐/ 똘똘 뭉친 우리 어부/ 일구월심 변할쏘냐/ 만경창파 푸른 물에/ 메러치 떼가 몰려오네…



'멸치 터는 소리'

그물 다 땡겼으니 불통을 쪼읍시다/ 에- 산자/ 많이도 들었구나/ 오뉴월 삼복더위에/ 황소 붕알같이 늘어졌구나/ 어데서 놀다가/ 이제사 왔나/ 기장 바다에서/ 놀다 왔나/ 대마도 바다에서/ 놀다 왔나/ 학수고대/ 기다린 매러치/ 오늘날에/ 당도하였네/ 너무나 쪼으다가/ 불통이 터지면/ 고생한 것이/ 허사가 돼요/ 그만 쪼으고/ 메러치를 풉시다


멸치잡이를 위해 후릿그물을 배에 싣고, 해변에서 수십 명의 어부들이 후릿그물에 연결된 벼릿줄을 당기며, 멸치가 가득 담긴 후릿그물을 털어 그물 안의 멸치를 그물 가운데로 모으는 장면이 저절로 연상된다. 멸치 후리질의 고단함을 넉넉한 마음과 흥겨움으로 이겨낸 우리 선조들의 인정과 지혜에 박수를 보내본다.

지금 기장을 찾으면 싱싱한 녀석들을 만날 수 있다. 그곳에서 후리소리를 읊조리며 인생의 고단함을 잠시나마 잊어보는 것도 좋으리라. 부산박물관 학예연구사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아 취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