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은 다소 유치하지만 재미로 치자면 올해 개봉한 주류 한국영화들에 비교해 보아도 별로 뒤질 것이 없는 독립영화 한 편이 있다. 얼마 전에 개봉했는데 흥행은 잘 되지 않았고 제목은 '사돈의 팔촌'이고 사촌 간의 남녀가 서로 어렵게 좋아하는 내용이다.
사촌끼리는 서로 좋아하면 안 되는 것인가. 내가 나의 사촌들과 거의 타인처럼 지내는 처지라 사태의 심각성을 못 느끼는 것인지 혹은 근친상간의 문제에 대하여 도덕적으로 불감한 것인지 하여간에 나는 사촌 간의 이 사랑을 보면서 나쁘다 잘못됐다 하는 인식보다는 그게 그렇게 안 되는 일인가 하는 생각이 먼저 들어서 스스로도 다소 당황스러웠다. 게다가 더 한 고백을 하자면 영화의 8할을 차지하는 성인들의 성숙한 고뇌와 교감의 장면들이 아니라 도입부 2할에 등장하는 아이들의 귀여운 사건사고에 가까운 도발 때문에 이 영화를 좋아하게 되었다는 점이다. 그러니까 초등학교 3·4학년쯤으로 보이는 사촌지간의 아이들은 어느 날 서로서로 포옹하고 만다.
나의 경우에 친가 쪽의 사촌은 못 만난 지 수십 년이 되었고 외가 쪽의 사촌은 수년에 한 번 볼까 말까 하고 영화와 같은 애정의 경우는 있지도 않았지만 그럼에도 유년에 그들과 어쩌다 어울릴 때 느낄 수밖에 없었던 약간의 묘한 본능적 긴장감은 지금도 확실히 기억한다. 조금 큰 가족의 울타리 안에서 나와 비슷한 나이 또래의 여자 아이들과 섞여 논다는 사실 자체가 기본적으로 흥분을 자아내기도 했을 테지만 때때로는 정체 모를 야릇한 불길함이나 울렁임이나 혹은 간지러움 같은 것도 느꼈던 것 같다. 그러니 내게 '사돈의 팔촌'의 도입부 소년 소녀의 일화는 유년의 순수하고 아름다운 사랑이기보다는 야릇하면서도 확실할 수밖에 없는 어느 불가피한 리비도의 분출로 보여서 흥미로웠다.
생활에서도 그런 걸 종종 느낀다. 집 근처에 초등학교가 두어 개 있고 때로는 하교하는 아이들 틈에 끼어 걷게 될 때가 있다. 서너 명의 남녀 무리가 가늠되지 않는 이유로 서로 소리 지르며 쫓고 때리고 웃고 할 때, 떡볶이를 사달라며 남자 아이에게 혹은 여자 아이에게 우르르 달려들고 매달릴 때, 나는 이상하게도 이 어린 아이들 틈에서 그들의 동심 보다는 그들의 숨겨지지 않는 리비도를 더 강하게 느낀다. "그 애가 왜 너한테 고백 같은 걸 하고 그러냐"고 소리를 지르면서 내 옆을 지나치는 초등학교 2·3학년쯤 되어 보이는 여자 아이들을 본 적도 있다.
"어떤 감정을 느껴봤자 아이 때 느낀 감정만큼 크지 않대". 영화 속 여주인공은 나보다 훨씬 더 일상적이면서도 설득력 있는 표현으로 그렇게 말했다. 내가 좋아하는 '사돈의 팔촌'의 유년의 장면들에는 세심함과 함께 솔직함이 배어 있다. 아이들이 주인공인 영화를 대체로는 선호하지 않는 기질의 나로서는 이상한 일인데, 뚱보 소년이 예쁜 소녀를 등 뒤에서 꽉 끌어안았을 때 그리고 소녀가 뒤돌아 소년을 다시 따뜻하게 안아 주었을 때 나도 그들처럼 마음이 설레었다. 나의 구태의연한 환상이 또 작동하는 것인가 혹은 이건 너무 불경스러운 인정은 아닌가 아니 어른이 주책없이 이래도 되는 것인가 싶기는 했다. 하지만, 모르겠다. 그래도 설렌 건 설렌 것이니까 어쩔 수 없다.
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