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 달간 신중현 사무실서 대기
- 단번에 펄시스터즈 후계자로
- 1969년 창·전통춤 맞춤형 음반

- 미국 쇼무대 모방 등 탈피
- 섹스어필로 음반시장 석권
- 다양한 손동작 간첩 오해도

한국에서 '댄싱퀸'의 시초가 누구냐고 물어보면 김완선이라고 답하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50세가 넘은 사람들은 주저 없이 1970년대를 주름잡았던 김추자를 언급한다. 물론 그 이전도 무대에서 기존의 여성가수들과는 차별적으로 활발한 무대매너를 보인 사람은 있었다.

	1969년 김추자 데뷔음반. 맏며느리감 같은 복스러운 김추자의 얼굴은 섹시한 이미지에 대한 거부감을 줄여 대중성을 강화했다. 김형찬 제공

'미스 다이너마이트'라 불린 여가수 이금희가 무대를 앞뒤 좌우로 무질서하게 왔다 갔다 하면서 팔과 엉덩이를 조금 흔들었을 때에도 대중은 그런 춤을 신기하게 바라보았고, 어른들마저 귀엽다고 하며 넘어갈 정도로 함량 미달의 춤이었다. 1969년 초부터 소울사이키의 선두주자로 출발했던 펄시스터즈도 세련된 춤동작을 동반하기는 했지만 섹시하다기 보다는 정돈되고 절제된 춤이었다.

펄시스터즈가 대성공을 거둔 이후, 신중현의 사무실에는 가수 지망생들이 연이어 찾아왔다. 신중현의 매니저가 추천해 찾아온 김추자는 한 달간 버티면서 자신에게 신중현이 눈길을 주기를 기다렸다. 어느 날, 신중현은 그녀의 노래를 테스트해보고 바로 펄시스터즈의 후계자로 점찍었다.

펄시스터즈는 본래 미8군 무대에서 잔뼈가 굵었기 때문에 미국식의 창법과 춤으로 성공했지만, 그런 경험이 없는 김추자는 사정이 달랐다. 신중현은 생각을 바꾸고 맞춤 전략을 구사했다. 이미 창과 전통춤을 배운 바 있는 김추자의 적성을 살려서 한국적인 느낌을 더해 작곡하고 음반을 제작했다. 1969년 10월 발표한 음반은 펄시스터즈만큼은 아니지만 음악계에서 주목받는 신인으로 알려지게 한다.

신중현 씨가 가장 심혈을 기울여 사사해내었다는 신인 여가수가 등장, 가요계의 시선을 끌고 있다. 이색적 사이키 작품 '늦기 전에'를 데뷔곡으로 김 양은 '월남에서 돌아온 김 상사'외 총 6곡의 LP도 함께 발표했다. 특히 데뷔곡 '늦기 전에'에서는 프레이징의 반복이라는 사이키의 정형 외에도 우리 민요에 있어서의 창법적 바이브레이션을 도입, 현대적 가요와 고전적 융합을 꾀하고 있다. 패티김에 버금가는 안정되고 풍부한 성량과 67년도 전국 무용대회에서 고전 발레에 특선한 관록은 움직이는 가수로서의 전망을 밝게 해준다. --'신중현 리사이틀서 선보인 신인들', '주간경향', 1969. 11. 5. 60쪽

	1970년 MBC 10대가수상 신인왕을 수상했던 당시 김추자.

김추자의 매력은 라이브 무대에서 드러났다. 이미 창을 익힌 김추자는 흐느끼면서도 힘 있는 소울 창법을 한국적으로 재창조했으며, 그녀의 탁월한 곡 해석력은 노래를 더욱 빛내주었다. 얼굴은 전통적으로 선호하는 복스러우면서도 귀염성 있는 형태였다. 무엇보다 압권은 그녀의 독특한 춤이었다. 당시 미8군 무대에서는 미국 라스베이거스 쇼무대를 모방한 정도의 춤이 일반화되어 있었지만, 일반 무대에서는 음악에 맞춰 가볍게 몸을 움직이거나 손동작을 조금 하는 정도였다. 그러나 김추자는 이 모든 것을 뛰어넘었다.

몸의 한 부분을 중심으로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몸 전체가 복합적이고 유기적으로 움직이는 춤이었다. 예를 들면 엉덩이를 움직이면 몸 전체가 자연스럽게 움직이지만 더 나아가 어깨를 한 번 튕겨주어 몸 전체가 더욱 출렁이게 했는데, 이런 춤은 처음 선보이는 것이었다. 더 나아가 다양한 손동작을 보여주었는데, 나중에 이것이 간첩에게 보내는 신호라는 어처구니없는 오해까지 받게 된다.

이 모든 것이 합쳐져서 대단히 뇌쇄적이고 관능적인 느낌을 자아냈다. 펄시스터즈의 춤이 정교하게 짜인 미국식 춤이라면 김추자의 춤은 타고난 감각과 직관으로 이루어진 한국형 춤이었다. 김추자는 이렇게 전례 없는 섹스어필의 이미지로 선배 가수들이 도달하지 못했던 차별적인 위치로 올라섰다.

1970년 MBC의 10대가수상에서 신인상 수상으로 출발한 김추자는 1971년 접어들면서 영광과 시련을 동시에 경험하게 된다. 먼저 1970년 11월에 제작된 '님은 먼 곳에'가 1971년 초에 접어들면서 챠트에서 전국 톱을 기록하면서 음반 시장을 석권한다. 그 결과, 연말의 시상식 중 TBC의 방송가요대상에서는 7대 가수에 선정됐다. 가요계의 정상권에 진입했음을 증명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가요계의 보수적인 서열 구조는 고분고분하지 않은 신인이 급격히 부상하여 자신들의 아성을 위협하는 것을 탐탁지 않게 여겼다.

1971년 7월 부산에서 김추자, 김세레나, 배호 등 여러 가수가 출연했던 공연에서 김추자는 자신을 제대로 대우해주지 않고 김세레나를 내세우려 한 것에 불만을 품고 한 회의 공연에 불참하는 시위를 벌인다. 이런 김추자의 행동 때문에 김추자는 쇼 흥행계, 방송계, 음악계 선배들로부터 공격받는 사면초가의 상황에 빠졌고, 급기야 연예협회 가수분과위원회는 1971년 9월부터 11월까지 3개월간 연예활동 중지라는 징계를 내리게 된다. 하지만 김추자 최대의 시련은 그 해 12월에 찾아왔다.

대중음악저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