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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찬의 대중음악 이야기 <17> 가요 흐름 바꾼 펄시스터즈(하)

판탈롱 입은 펄 자매, '동백아가씨' 울리고 가수왕 차지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6-05-16 18:55:06
  •  |   본지 2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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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 대중음악 두 장르 혼합
- '소울사이키'란 트렌드 열고
- 가요계 주류 트로트와 맞짱
- 데뷔 1년 만에 리사이틀 가져

- 파격적인 디자인의 의상 입고
- 세련되고 섹시한 춤 선보여
- 기존 시스터즈·윤복희 초월
- 댄스 여가수의 계보 선두주자

펄시스터즈가 등장하기 이전에 '시스터즈'라 불렸던 걸그룹은 도시적이고 팝적인 곡목에서는 새로웠지만 무대 위에서의 동작은 기존 여성 가수처럼 정적인 모습을 벗어나지 못했다. 하지만 펄시스터즈는 이런 한계를 뛰어넘었다. 166㎝의 큰 키에 균형잡힌 몸매와 준수한 외모라는 완벽한 조건으로 절도 있으면서도 섹시한 춤까지 선보여 TV 시청자들의 눈을 단번에 사로잡았다. 사실 이런 조건으로 무대에 처음 선 사람은 2년 전의 윤복희였으나 대중에게 낯선 존재로 끝나고 말았다.

   
화보가 예쁘게 나와 각종 언론 매체의 사랑을 받았던 펄시스터즈의 1968년 사진. 김형찬 제공
펄시스터즈가 기존의 시스터즈와 윤복희의 한계를 뛰어넘었던 것은 그들이 내세운 '소울 사이키'라는 새로운 트렌드 때문이었다. '소울'이란 1960년대 미국 흑인들의 공민권 투쟁이라는 자아 찾기 운동이 음악에 반영되어 흐느끼듯 절규하는 창법의 음악을 말한다. '사이키'란 '사이키델릭' 음악의 준말인데 1960년대 후반부터 미국 백인들이 마약을 하면서 느꼈던 비현실적이고 환상적인 느낌을 담아낸 몽환적인 음악을 말한다.

미국 대중음악계에서는 이 두 가지 트렌드가 독립적으로 존재했지만 한국에서 1969년부터 이 두 가지가 결합되어 '소울 사이키'라는 새로운 트렌드로 부상한 건 신중현의 새로운 음악적 실험 때문이었다. 1968년 말 펄시스터즈의 갑작스런 히트로 국내에 주저앉게 된 신중현은 흐느끼듯 절규하는 여성 가수를 전면에 내세우고 자신의 밴드는 뒤에서 그에 어울리도록 화려한 사이키델릭 사운드로 반주를 담당하는 형태로 김추자, 이정화, 임희숙, 김상희 등의 가수 음반을 계속 발매하며 가요계의 새로운 흐름을 주도해 나갔다. 이 중 펄시스터즈와 김추자가 대성공을 거두면서 '소울 사이키'는 기존의 기성세대가 주도해왔던 가요계의 흐름을 뒤집는 강력한 새로운 흐름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데뷔 음반으로 인기 절정에 오른 펄시스터즈는 1969년 7월 4일부터 사흘간 서울 시민회관에서 '쇼 올 카니발'이라는 리사이틀을 갖는다. 당시 리사이틀이란 경력과 무게가 있는 정상급의 가수만 열 수 있었는데 데뷔 1년도 안 된 펄시스터즈가 리사이틀을 열었다는 것만 보더라도 이들의 인기가 어느 정도였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정훈희, 이주랑, 코코브러더즈, 키보이스, 임희숙, 배상하 재즈 오케스트라와 한익평 재즈 발레단 등이 찬조 출연했고, 조영남이 사회를 보았으며 신중현의 밴드인 동키즈가 반주를 맡았다.


   
완벽한 신체조건과 외모를 갖춘 펄시스터즈
나흘을 계속해서 3000석 객석이 콩나물시루처럼 빼곡히 들어찬 장내는 연방 터지는 박수와 갈채로 해서 흥분의 도가니를 이루고, 쌍둥이처럼 귀엽고 예쁜 펄 자매들은 그 박수에 보답하기 위한 온갖 애교를 총동원했다. 특히 이날의 레퍼토리 중엔 이들 자매의 오리지널한 가요곡들 외에도 이미자 양의 '동백 아가씨'를 비롯한 많은 다른 가수들의 히트곡이 모조리 소울풍으로 둔갑하여 관객들의 인기를 독차지했다. 한편 이번의 리사이틀을 위해 펄 자매는 특별히 무대 의상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최신식 유행의 모드를 쫓았는데, 그중에서도 판탈롱 슈트가 단연 주역. 어떻게 보면 고대 이집트의 신화에 나오는 여왕과도 같고, 또 어떻게 보면 아프리카 인디언족의 아름다운 추장 딸과도 같은 분장엔 예전엔 미처 깨닫지 못했던 펄의 새로운 매력이 면면이 묻어나더라는 객석의 반응-<펄시스터즈 리사이틀>, '명랑', 1969. 9., 107쪽


이미자의 '동백 아가씨'를 소울풍으로 불렀다는 사실은 기존 가요계의 주류인 트로트와 맞짱을 뜨겠다는 펄시스터즈의 자신감에서 비롯된 도발적인 행동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특히 당시 패션계의 스타이던 노라노 여사가 디자인한 사이키델릭풍의 판탈롱 의상까지 동원하여 춤, 노래, 의상이 모두 새로운 음악 경향인 '소울·사이키'의 이미지를 총체적으로 보여주도록 연출했다는 사실은 주목할 만하다.

펄시스터즈의 화려한 등장은 연말 MBC 10대가수상에서 펄시스터즈가 가수왕을 차지하면서 극적인 결말을 장식했다. 이미자와 경합을 벌이던 펄시스터즈가 호명되자, 펄시스터즈는 눈물을 터뜨리고 이미자는 서둘러 퇴장하던 광경을 상상해보라. 한국 대중음악계의 판도가 바뀌는 역사적인 순간이었다.

   
이렇게 등장한 지 1년 만에 가요계의 판도를 바꿔버린 펄시스터즈는 '소울사이키'라는 새로운 미국 지향적 음악 경향을 만들어냈고, 그들의 세련되고 정교한 댄스는 1980년대 김완선으로 시작되는 댄스 음악 계보의 맨 앞자리에 자리잡는다. 무엇보다 봄날을 만난 사람은 신중현이었다. 연속된 록밴드의 실패를 접고 '소울사이키'의 대부가 되어 이후 신중현 사단이라는 막강한 히트 제조기를 손에 넣게 되었다. 그동안의 실패를 거울 삼아 대중적 코드를 파악한 신중현은 이때부터 성공가도를 달리게 된다.

대중음악저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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