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원작 본래 의미 살리면서도
- 주인공 감정 변화에 따라
- 신문 활용해 참신한 연출 보여
- 극 중간중간 한글 안내판 재치
그를 미치게 한 것은 무엇이었을까.
"저 여자를 사랑할 처지냐. 돈도 한 푼 없는 빈털터리가. 주제를 알아야지!" 직장 상사의 모욕이 준 좌절감 때문이었을까. "조금 전까지 극장이었는데. 왠지 일하러 가기 싫다." 지루하고 삭막한 직장생활탓? "시종무관이 뭐 대단하다고. 코를 금으로 만든 것도 아니고 나나 세상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재채기하는 코일 뿐이야." 그도 아니면 짝사랑했던 여인을 잘난 남자에 빼앗긴 열패감? "어쩌면 내가 장군인데 관리처럼 보이는 건 아닐까. 역사 속에도 그런 일이 있잖아. 평범한 사람인 줄 알았는데 고관대작으로 밝혀지는 것." 이상과 현실의 낙차를 거슬러 오르려 한 무리수였는지도 모르겠다. 어느 날 그는 외친다. "나는 스페인의 왕 페르디난드 8세다!" 그렇다. 미친 것이다.
제13회 부산국제연극제 콘셉트 공연 초청작 '광인일기'가 9~11일 부산문화회관 중극장에서 상연됐다. 러시아 극작가 니콜라이 고골의 작품으로 조지아 코테 말자니시빌리 극단과 이탈리아 에밀리아 로마냐 극단이 합작해 만들었다. 조지아가 부산국제연극제 참가한 것은 처음이다.
국제연극제 관계자는 "이번에 참가한 말자니시빌리 극단은 1928년 설립된 전통 있는 극장을 갖고 있고 전 세계 축제에서 공연해 성공을 거둔 팀"이라고 설명했다.
광인일기는 평범한 하급관리인 주인공 포프리친이 여배우를 향한 짝사랑마저 실패로 돌아간 뒤 미쳐가는 이야기를 다뤘다. 고골의 원작이 가진 의미를 훼손하지 않으면서 참신한 무대 연출을 보여줬다.
극이 시작되자마자 제일 먼저 눈길을 끈 것은 신문지의 활용이다. 주인공이 직장에서 하는 일을 신문지를 찢어 버리는 것으로 묘사한다. 극이 점점 진행될수록 신문을 구긴 뭉치가 하나둘 늘어나더니 포프리친이 정신병원에 갇힌 뒤에는 신문뭉치가 발이 잠길 정도로 쌓인다. 극은 그가 신문 더미 속에 파묻히는 것으로 끝난다.
제작진은 9일 열린 '아티스트 토크'에서 "신문은 관료제나 큰 시스템 일부를 상징한다"며 "신문을 찢는 행위나 신문으로 만든 장미는 주인공이 자유로워지고 싶어하는 것을 나타낸다"고 말했다. 무대의 반투명막 뒤에서 주인공이 자전거를 타고 출·퇴근하는 모습도 효과적으로 표현했다. 주변 사람, 나무 소품 등을 활용해 속도감을 연출했다. 극 중간중간 한글로 쓴 안내판을 활용한 것 역시 재치가 돋보였다.
박지현 기자 anyway@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