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부산메디클럽

반짝반짝 문화현장 <12> 논어 맹자 중용 이어 '한비자' 펴낸 고전학자 정천구 박사

한비자를 만나세요, 당신이 세상의 乙(을)이라면

  • 조봉권 기자 bgjoe@kookje.co.kr
  •  |   입력 : 2016-04-21 19:24:50
  •  |   본지 21면
  • 글자 크기 
  • 글씨 크게
  • 글씨 작게
- 기존에 출간된 책보다 매끄럽고 쉬운 번역을 해야겠다고 생각했죠

- 한비자는 처세술이 아닌 경영학+정치학의 통치술
- 특히 사회에 나가기 전인 청년에 일독을 권합니다

고전학자 정천구(49) 박사를 부산 금정구 남산동 연구실 겸 자택에서 지난 19일 만나자마자 평소의 의문부터 털어놓았다.
'한비자' 번역본을 펴낸 고전학자 정천구 박사가 한비자의 사상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다. 그는 본지에 연재한 기획시리즈에 바탕을 둔 단행본 '한비자, 제국을 말하다'도 함께 냈다. 서정빈 기자 photobin@kookje.co.kr
"재작년 이른바 대한항공의 '땅콩회항' 사건으로 우리 사회가 들썩인 적이 있지 않습니까? 그 일이 떠오를 때마다 저는 사건의 장본인 조현아 당시 대한항공 부사장이 일찌감치 '한비자'를 공부했다면 어땠을까, 이런 일이 생겼을까 생각하곤 했는데요."

커피콩을 가는 수동 커피그라인더를 돌리던 정 박사가 대답 대신 요즘 우스개를 하나 들려준다. "어떤 청년에게 꿈이 뭐고, 그 꿈을 이루는 데 어려운 점이 뭐냐고 물었더니 '재벌 2세가 되는 게 꿈인데 아빠가 노력을 안 해요'라고 답하더랍니다." 참 절묘한 농담이다.

곱게 간 커피가루에 물을 부어주면서 정 박사가 덧붙인다. "한비는 전혀 다르게 말하죠. 아버지의 자리를 이어받을 수는 있어도 능력은 물려받을 수 없다. 필요한 덕목을 터득해서 네가 1세가 되라, 네 삶의 군주가 되라 하는 메시지와 내용이 '한비자'에는 있지요."

요약하면, '한비자'를 쓴 중국 전국시대(거의 2500년 전이다) 법가 사상가 한비가 땅콩회항의 현장을 봤다면, "그렇게 공부하라고 했건만…"하고 혀를 찼을 수도 있다는 이야기. 물론, '한비자'에서 배울 것은 이것이 전부가 아니다. '한비자'는 훨씬 풍부하고 깊고, 모골이 송연할 정도로 현실감이 높다. '한비자'는 2500년 세월을 거치며 강철처럼 단련되고 엄정하게 검증받은 책이다.

■거칠지 않게 어렵지 않게 번역

정천구 박사는 최근 산지니출판사에서 '한비자' 완역본을 펴냈다. 한비자를 전면에 내세워 현대 한국사회의 현실과 문제점을 날카롭게 비판한 '한비자, 제국을 말하다'도 같은 출판사에서 함께 냈다. '한비자,제국을 말하다'는 지난해 3월~8월 국제신문에 연재한 글을 다듬어 엮은 책이다.

그는 비중이 크고 중요한 책을 꾸준히 번역하거나 저술했다. 저서로 '삼국유사, 바다를 만나다' '맹자독설', 번역서로 '차의 책' '동양의 이상' '원형석서' '일본영이기' '밝은 마음을 비추는 보배로운 거울-명심보감' '삼교지귀' '모래와 돌' '베트남 선사들의 이야기' 등이 있다.

그의 저서 가운데 '논어, 그 일상의 정치' '맹자, 시대를 찌르다' '중용, 어울림의 길'은 고전 주해서로 하나의 흐름을 이룬다. 동양 고전을 깊이 읽고 새로운 시각에서 해석하기 때문이다. '한비자'가 그 흐름을 이었다.

"다른 연구자의 번역서가 나와 있는데, 정천구 번역본 한비자를 다시 내신 뜻이 있습니까?" 이 질문에 그는 답했다. "한비자 전체를 번역한 책은 현재 시중에 4종 정도 있는 것으로 알아요. 그런데 대체로 번역이 거칠고 상그러워요. 대학생 이상이면 읽는 데 어려움이 없는 번역서가 필요하다고 봤지요." 정 박사는 "그리고 번역은 단순히 언어를 옮기는 게 아니라 옮기는 이의 해석과 시각과 역량이 담기게 마련"이라고 덧붙였다.

우리나라는 조선시대 내내 한비자 주석서가 안 나온다. 비교적 근래까지 한비자에 관한 관심이 없었다. 일본만 해도 에도시대에 한비자 주석서가 쏟아져 나왔고 권위 있는 책도 많다. 이런 사정으로 우리나라에서 유명세에 비해 한비자 번역은 상대적으로 활발하지 않았다.

■제자백가 책은 고루 읽어야

그가 한비자를 새로이 공들여 번역한 뜻은 또 있다.

"기존 한비자 번역서에는 한비자로 대표되는 법가사상이 유가사상과 단순하게 대립하고 배척만 한 것으로 이해하는 면이 있죠. 유교에 대한 이해의 폭이 좁고, 그러다 보니 유가와 법가의 관계를 잘못 이해한 데서 비롯된 것입니다." 정 박사가 볼 때 둘 사이의 관계는 훨씬 긴밀하다.

법가의 거물로, 진시황이 완성한 천하통일의 바탕을 마련한 상앙은 당시 유가를 비판하면서 법가체계를 구축하고 이를 '상군서'라는 책으로 남겼다. 유가의 거목 맹자는 이런 '상군서'를 끊임없이 의식하고 비판하면서 자기 사상을 펼친다. "불교사상이 없었다면, 성리학이 성립할 수 없었던 것과 비슷하게 법가와 유가의 관계는 복합적이고 다면적인 데가 있었죠."

이는 정천구 박사가 강조하는 고전 공부법의 요체로 이어진다. "함께 읽어야 해요." 한비자를 비롯한 제자백가는 '나는 논어가 좋아' '그럼 나는 맹자' 하는 식으로 접근하면, 제대로 배울 수 없고 고전공부에서 아주 중요한 균형감각까지 못 갖추기 십상이라고 그는 지적한다.

세상 살기 어렵다고 노자와 장자에만 빠져들면 도피로 흐르고, 법가만 파고들면 각박해질 수 있겠다. 실제로 에도시대부터 한비자에 열광한 일본은 국가 발전을 앞당기는 데 성공하지만, 그 뒤 침략적 제국주의로 흘렀다. 조선은 법가와 유가가 균형을 이룬 전기에는 융성했으나, 성리학과 관념론에 빠져버린 조선 후기에는 참혹했다. 정 박사는 '한비자' 또한 '논어' '맹자'를 비롯한 여러 제자백가의 책과 함께 볼 것을 권했다.

■당신이 을이라면 한비자를 읽자

'한비자'의 문장은 간결한 아름다움이 있다. 상당 부분이 치밀하고 논리적이다. 권력과 정치의 속성과 본질을 지적하는 대목에서는 2000년이 지난 지금과 하나 다를 게 없어 간담이 서늘하고 모골이 송연해질 지경이다. 각 장의 제목만 봐도, 옛날 이야기가 아니라 바로 지금 한국 정치 현장 이야기처럼 생생하고 현실감이 강하다.

망징(나라가 망할 징조) 팔간(신하의 여덟 가지 간사한 짓) 십과(군주의 열가지 허물) 세난(유세의 어려움) 간겁시신(간사하고 겁주고 시해하는 신하)…. '한비자' 자체가 강한 책이라는 인상을 지우기 힘들다. '한비자'는 인간사회의 관계를 힘(권력)의 관계로 보고 이를 활용하고, 여기서 살아남고, 번성하고, 안정되는 법을 논한다.

"그러므로 단순한 처세술이 아니라 경영학과 정치학을 아우른 통치술이지요. 조직 위계에서 아래 쪽에 있는 분들, 갑을관계에서 을인 분들은 반드시 읽어야죠. 그래야 안 당하죠. 20대 청년들도 사회에 나가기 전에 꼭 읽기를 권합니다. '한비자' 속에는 일화가 많아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 논어 맹자 등 다른 책과 함께 읽을 때, 당신을 강하게 만들어 줄 책이다.


# 고전학자 정천구와 그가 말하는 인문학

정천구 박사는 부산대 국문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대 대학원에서 석사와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매주 수요일 오후 7시 부산 동구 민주시민교육원 나락한알에서 도덕경을, 매주 목요일 오후 7시 사상구 사상평생학습관에서 맹자를 강의한다. 이 두 군데에서 강의하면서 공부하고, 연구하고, 책 쓰고, 노니는 삶을 산다.

그는 인문학을 제대로 공부하거나 가르치려면 "장기 강의는 필수"라고 잘라 말한다. 그 자신이 강사로서 한비자 84주, 맹자 60주, 중용 36주, 순자 32주를 강의했다. 현재 하고 있는 맹자는 96주 진행했다. 드문 장기 강의이다.

좋은 인문학 강의는 진지하게 이뤄지며, 수강생에게 배우는 재미와 삶의 변화를 체험하게 해준다. 정 박사는 이렇게 의견을 밝혔다."적어도 인문학 공부라면 1회성 강의나 특강은 보람과 효과를 느낄 수 없다. 80주에 걸쳐 해야 할 공부를 단 두 시간에 듣는 것은 '나도 안다'는 착각만 조장한다. 공부의 효과는 단숨에 얻을 수 없다. 꾸준히 해야 한다. 그것 말고는 길이 없다. 그 과정을 통과해야 인문학의 참맛을 느낀다."

조봉권 기자 bgjoe@kookje.co.kr
ⓒ국제신문(www.kookj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국제신문 뉴스레터
국제신문 네이버 뉴스스탠드 구독하기
국제신문 네이버 구독하기
뭐라노 뉴스

 많이 본 뉴스RSS

  1. 1만만찮은 사우디…부산 반격의 시작
  2. 2“오시리아선 연장 등 교통난 해소 주력”
  3. 3캠코, 압류재산 공매 느는데…해마다 손실 150억
  4. 4커피챔피언 부산서 또 나왔다…문헌관 씨 세계대회 우승
  5. 5부산 5개권 영어마을 조성…생활속 외국어친화환경 만든다
  6. 6기업 61% "가격인상으로 대응"…6%대 물가 쓰나미 온다
  7. 7월 1만 원 넘는 OTT…‘단기구독 서비스’ 다변화 목소리
  8. 8[이준영 기자의 전지적 롯데 시점] 갈수록 힘 빠지는 ‘선발야구’…이달 고작 4승
  9. 9[사설] 인사 잡음 걱정스러운 하윤수 부산시교육감 당선인
  10. 10인문학의 바다로 풍덩…부산지역 대학 강좌 개설
  1. 19대 부산시의회 의장단 구성…부의장직 놓곤 3자 경선도
  2. 2윤 대통령 취임 한 달 반만에 국정평가 '데드크로스'(종합)
  3. 3민주 부산 지역위원장 공모, 현역 7명 미응모...대거 교체 전망
  4. 4낙동강연합 꾸리는 국힘, 영남 복원책 찾는 민주…총선 대비 포석
  5. 5장제원 포럼에 친윤계 총집결... 안철수도 스킨십 확대
  6. 6차기 울산경제부시장에 안효대 전 국회의원 내정
  7. 7"지방대 살리려면 교육특구 도입-거버넌스 구축을"
  8. 8尹 국정평가 취임 6주 만에 부정>긍정 '데드크로스'[리얼미터]
  9. 9박지현 "尹, 美 임신중지권 판례 반대 의사 밝혀야"
  10. 10윤 대통령 출국, 나토서 3박 5일 다자외교 '데뷔'
  1. 1만만찮은 사우디…부산 반격의 시작
  2. 2캠코, 압류재산 공매 느는데…해마다 손실 150억
  3. 3커피챔피언 부산서 또 나왔다…문헌관 씨 세계대회 우승
  4. 4기업 61% "가격인상으로 대응"…6%대 물가 쓰나미 온다
  5. 5내달 전기료 1535원, 가스료 2220원(4인 가족 월평균) 인상
  6. 6엑스포 세대교체 전환점 2030부산세계박람회 <5> 국제정세와 미디어 성능 감소
  7. 7'문송합니다'는 옛말... 디지털아카데미 비전공자 더 많다
  8. 8부산 임차 소상공인 지원 대출…녹색경영 추진 기업 금리우대까지
  9. 9농협은행- 찾아가는 청소년 금융교육…농산물로 배우는 ‘허그팜’ 경제체험도
  10. 10주가지수- 2022년 6월 27일
  1. 1“오시리아선 연장 등 교통난 해소 주력”
  2. 2부산 5개권 영어마을 조성…생활속 외국어친화환경 만든다
  3. 3인문학의 바다로 풍덩…부산지역 대학 강좌 개설
  4. 4[뉴스 분석] 정부 경찰국 공식화한 날 김창룡 청장 사의…접점없는 갈등
  5. 5이갑준 사하구청 당선인 "민관합동협의회 꾸려 개발 성과 낼 것"
  6. 6부울경 흐리고 비…예상강수량 10~40mm
  7. 7오늘의 날씨- 2022년 6월 28일
  8. 8법무부는 헌재에 ‘검수완박법’ 권한쟁의심판 청구
  9. 9[박기철의 낱말로 푸는 인문생태학]<570> 변이와 변화 ; 인류의 앞날
  10. 10“6·25 참전용사 희생, 우리 젊은이에 적극 알릴 것”
  1. 1[이준영 기자의 전지적 롯데 시점] 갈수록 힘 빠지는 ‘선발야구’…이달 고작 4승
  2. 2‘플래툰 시스템’ 족쇄 벗은 최지만…좌완 상대 5할(0.520) 맹타
  3. 3한국, LPGA 18개월 메이저 무관 한 풀었다
  4. 444개월 슬럼프 훌훌…‘메이저퀸’ 전인지 부활
  5. 5올해도 제구 불안…2년차 거인 김진욱 갈길 멀다
  6. 6우승보다는 친교…아마골프 강자가 대회에 나가는 이유
  7. 7또 박민지…시즌 3승 독주
  8. 8권순우, 27일 윔블던 1회전부터 조코비치 만난다
  9. 9김지윤 프로의 쉽게 치는 골프 <8> 발 끝 오르막과 내리막 샷
  10. 10새로운 물결 넘실대는 한국 수영…11년만의 메달·단체전 첫 결승
우리은행
그 장면 여기서 찍었네 부울경 촬영명소
조폭과 스님 자존심 건 승부…부처의 가르침 기막힌 해학으로 풀어
박현주의 그곳에서 만난 책
정훈 시집 ‘새들반점’
문화 다이어리 [전체보기]
바리톤 최성규 독창회 外
제171회 알바트로스 시낭송콘서트 外
문화현장 톡톡 [전체보기]
예술로 승화시킨 동물의 세계…라이온킹, 이유있는 1억 관객몰이
부조니 콩쿠르 우승자의 위엄…박력과 섬세함이 공존한 베토벤 소나타
박현주의 신간돋보기 [전체보기]
청년이 묻고 답한 부산의 현재 外
쥐떼가 장악한 디스토피아 外
서상균의 그림으로 책 보기 [전체보기]
인간의 순리
신간 돋보기 [전체보기]
어린이를 위한 ‘진짜’ 놀이터
청력 잃고 겪게 된 차별의 벽
이 한편의 시조 [전체보기]
설거지 /제만자
미라에 말을 걸다 -투탕카멘 /김덕남
이원 기자의 드라마 人 a view [전체보기]
‘소년심판’ 판사로 열연 호평
이원 기자의 영화 人 a view [전체보기]
‘브로커’ 주연 송강호
‘오마주’ 감독 신수원
이원 기자의 Ent 프리즘 [전체보기]
여름 흥행시즌 개봉일 선점 눈치싸움
한국영화 빙하기를 딛고 뜨거운 여름 맞았다
조재휘의 시네필 [전체보기]
‘애프터 양(2021)’…존재의 ‘없음’이 비로소 그 ‘있음’을 상기시킨다
‘쥬라기월드:도미니언’ 추억팔이·억지설정…흥행공식 매몰된 블록버스터
뭐 볼까…오늘의 TV- [전체보기]
뭐 볼까…오늘의 TV- 2022년 6월 28일
뭐 볼까…오늘의 TV- 2022년 6월 27일
방호정의 컬쳐 쇼크 & 조크 [전체보기]
넷플릭스 드라마 ‘종이의 집 - 공동경제구역’
더 바스타즈 (The Vastards) 첫 정규앨범 ‘CARNIVAL’
오늘의 운세- [전체보기]
오늘의 운세- 2022년 6월 28일(음력 5월 30일)
오늘의 운세- 2022년 6월 27일(음력 5월 29일)
조해훈의 고전 속 이 문장 [전체보기]
요즈음 계절, 한 문사의 모습과 이별을 읊은 시
마음 먹었다면 중도에 포기하지 말라는 중용의 글
  • 부산해양콘퍼런스
  • 낙동강 일러스트 공모전
  • 제21회 국제신문 전국사진공모전
  • 유콘서트
걷고 싶은 부산 그린워킹 홈페이지
국제신문 대관안내
스토리 박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