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년기 보낸 부산에 특별한 애정
- 2층 그림방 작품 등 교체 계획
- "관람객 '이게 뭘까' 느낌이 중요
- 국내외서 통할 공간에 자부심"
빛바랜 코르덴 바지와 재킷, 손질하지 않은 하얀 머리카락. 미술관에서 이우환(80) 선생을 보더라도 현대미술의 세계적인 거장임을 눈치채지 못하고 지나치기에 십상이다. 소탈한 겉모습에서 '갤러리'나 '미술관' 등 거창한 이름을 마다하고 다만 '이우환 공간'을 고집한 그의 뜻을 짐작할 수 있었다. 지난해 4월 10일 개관한 '이우환 공간' 1주년 기념행사 참가차 부산을 방문한 이우환 선생을 지난 19일 오후 부산시립미술관(부산 해운대구 우동)에서 만났다. 이우환 공간은 부산시립미술관 별관이며 선생의 조각·회화 등 20여 점이 내외부에 전시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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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19일 부산 해운대구 부산시립미술관 별관 '이우환 공간'에서 이우환 선생이 작품 '대화'를 설명하고 있다. 김성효 기자 kimsh@kookje.co.kr |
이우환 공간의 건물은 선생이 직접 설계했다. 건물 자체가 선생의 작품인 셈이다. 개관 후 1년이란 시간이 흘렀다. 직접 설계한 공간과 작품의 조화가 애초 의도했던 바에 부합할까. "대체로 조화가 이루어집니다만 부분적으로 손을 보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2층 그림방 작품이 공간에 비해 사이즈가 작아 좀 더 규모가 크고 힘이 있는 작품으로 한두 점 바꿀까 싶습니다. 벽면 한 쪽을 비워뒀는데 거기에도 그림을 걸까 싶고. 바깥 뜰의 조각은 너무 조용한 느낌이라 적극성이 있는 큰 작품을 설치하려고 준비하고 있습니다. 요란하지는 않지만 다이내믹한 느낌을 줄 수 있도록, 아이들이 보고 '우와' 하는 느낌을 줄 수 있는 작품을 올여름에 설치할 생각입니다."
고맙고, 놀라운 일이었다. 부산시가 요청하지도 않았는데, 선생이 먼저 작품 교체까지 계획하고 있다니. 선생의 작품은 미술시장에서 한 점에 수십억 원에 거래된다. 현재 이우환 공간에 기증한 작품만 해도 100억 원이 넘는다고 알려졌다. 한 해 40만 명이 찾는 일본 나오시마 '이우환 미술관'은(2010년 개관) 한 번도 작품을 교체하지 않았다고 한다.
경남 함안 출신인 선생이 부산에 이토록 특별한 애정을 갖고 있는 이유는 "가장 예민한 소년 시절을 부산에서 보냈기 때문"이다. 선생은 경남중을 다니며 소년 시절을 대신동 등 부산 원도심에서 보냈다. "부산은 어떤 의미에서 고향이에요. 지금 기억이 제일 많은 시기도 소년 시절이에요. 한국이라기보다 부산이 나를 키운 곳이다는 느낌이 강합니다."
선생의 작품을 본 관람객은 당황스러울지도 모른다. 철판과 돌이 전부인 조각, 점과 선만 그려진 그림. 세계적으로 유명한 작가라고 하니 자신의 부족함을 탓하며 작품과 이내 멀어질 수도 있다. 하지만 선생은 단호히 "관객에게 심오한 뜻을 전달하는 걸 피한다"고 말했다. "인체나 형상이 있는 조각이 아니라서 '이게 뭘까' 하는 의문이 들 것입니다. 하지만 희한하다는 느낌을 받는 것 자체가 중요합니다. '산업사회를 대표하는 철판, 자연을 상징하는 돌'이라는 설명으로 충분합니다. 거기서 더 이야기하면 관람객은 흥미를 잃습니다. 한편 잘 모르는 느낌을 갖는 것도 좋습니다. 요즘은 뭐든 뻔합니다. 뭔가 와닿지 않고 얘기하기 힘들다는 걸 아는 것도 괜찮다고 봅니다."
이우환 선생을 포함해 박서보 등 우리나라 '단색화' 1세대의 작품이 세계 미술시장에서 큰 관심을 받고 있다. 하루가 다르게 경매 최고가를 갱신했다는 소식이 들린다. 이에 대해 선생이 어떤 견해를 갖고 있을지 궁금했다. "국제 미술계에서 좋은 평가를 받는 것을 크게 환영하고, 우리 미술계를 위해 좋은 일입니다. 하지만 상업적인 측면과 갑자기 결부돼, 아직 미술사적·이론적 검증이 약한 상태에서 너무 올라가 들뜬 느낌이 있습니다. 우리나라를 포함한 국제사회가 좀 더 천천히 검증하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상업·저널리즘 쪽에서 우쭐해진 분위기는 가라앉기를 바랍니다."
부산시민도 이우환 공간에 대해 자부심을 느끼지만, 선생 또한 자부심을 갖고 있었다. "아주 전문적인 공간입니다. 국내외 어디에 가져다 놓아도 통합니다. 조금도 타협하지 않고 만들었습니다. 이런 걸 하게 해준 부산시에 감사합니다."
박정민 기자 link@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