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초봄, 눈 먼 숭어가 연안에 올 때
- 숭어목에 그물 둘러 기다렸다가
- 숨어있던 망쟁이 고기떼 발견해
- 대기 선원들과 합 맞춰 건져올려
- 한번에 2만 마리 넘게 잡히기도

- 신항만·거가대교 들어서며
- 불빛·소음으로 숭어 줄어들어
- 개발·보존의 조화 생각해볼점

■맛도 좋고 몸에도 그만

	저녁 노을 물든 어촌- 조선중기 화가 이징이 그린 작품. 어촌에 찾아드는 저녁노을을 묘사한 그림으로 정박해 있는 배, 언덕 위에 솟은 나무들, 건너편 모래언덕, 먼 뒤쪽 풍경의 산등성이가 잘 묘사돼 있다. 국립중앙박물관 제공

숭어는 예로부터 그 맛이 빼어나 수어(秀魚)로 불렸다. 요즘도 감칠맛 나는 회는 물론이거니와 구이, 탕, 조림, 전골, 탕수육, 만두 등으로 다양하게 조리되어 우리의 입을 즐겁게 한다. 특히, 숭어를 넣고 끓인 미역국은 겨우내 잃었던 입맛을 돋우는 봄철 별미이며, 살짝 말린 숭어를 김치에 얹어 쪄낸 숭어 김치찜 역시 빼놓을 수 없는 진미다.

조선시대 우리네 선조들은 숭어알을 말려 어란(魚卵)을 만들었는데, 이를 건란(乾卵)이라고 불렀다. 어란은 조기알이나 민어알로도 만들었으나 숭어알로 만든 것을 일품으로 쳤다고 한다. 어란은 염장(鹽藏) 후 여러 번 건조하는 과정을 거치는 매우 귀한 음식이었다. 그리하여 임금님께 진상하거나 대가(大家)에서 주로 즐긴 음식이었다고 한다.

숭어 내장은 젓갈을 만들어 먹었다. 그런데 그 맛이 얼마나 좋았던지 일본에서는 숭어 내장 젓갈을 성게, 해삼의 내장 젓갈과 함께 3대 별미로 여겼을 정도였다.

숭어 살로는 어전(魚煎)과 숭어채를 만들었다. 어전은 생선살을 재료로 만든 전인데, 정부인 안동장씨(安東張氏, 1598~1680)는 '음식디미방'에서 "살집 많은 숭어나 아무 물고기든 가시 없게 저민 후 이를 기름장에 밀가루를 입혀 재워서 기름에 지져서 쓰라" 라고 조리법을 소개했다.

숭어채는 조리서인 '주방문(酒房文)'에 "수어(숭어)를 한 치만큼 베어 회 치듯 하여 녹두가루로 버무려 삶고 초간장에 찍어 먹는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밖에도 우리 선조들은 숭어 살로 얇게 저민 뒤 소를 넣고 찐 어만두, 얇게 저며 말린 어포, 대발에 넓게 편 뒤 채소와 고기를 넣고 말아서 쪄낸 어선 등도 만들어 먹었다.

여러 문헌에서 소개하고 있듯이 숭어는 맛이 뛰어난 물고기이지만 가덕도 바다에서 잡힌 숭어 맛은 특히 유명했다. 지금도 가덕도 숭어는 다른 지역 숭어보다 육질이 부드러우면서도 쫄깃하고 향긋한 맛까지 머금어 가히 일품이다. 가덕도 주민들은 앞 바다의 거센 물살과 맑은 바닷물을 그 이유로 꼽는다. 그렇다 보니 갯벌에서 잡히는 것보다 당연히 육질의 맛과 향이 우수할 수밖에 없다.

숭어는 맛도 좋지만 영양가도 높아 우리 몸에 그만인 건강식품이기도 하다. 숭어는 유기물이나 각종 조류를 진흙과 함께 먹는다. 그리하여 조선시대에도 우리 몸의 비위(脾胃)를 보하는 데 약효가 있는 것으로 널리 알려져 있었다.

1433년(세종 15)에 완성된 '향약집성방(鄕藥集成方)'과 1610년(광해군 2)에 허준(許浚, 1539~1615)이 지은 '동의보감(東醫寶鑑)'에는 "(숭어는) 맛이 감(甘)하고 평(平)하고 무독하다. 위를 열고 오장을 통리(通利)하며 오래 먹으면 사람을 비건(肥健)하게 한다. 이 물고기는 진흙을 먹기 때문에 백약(百藥)에 기(忌)하지 않는다" 고 숭어의 약성(藥性)이 기술되어 있다.

이수광(李晬光, 1563~1628)도 '지봉유설(芝峰類說)'에서 "숭어는 진흙을 먹어 토기(土氣)가 있으므로 비위를 보한다"고 했으며, 서유구(徐有榘, 1764~1845)도 '난호어목지(蘭湖漁牧志)'에 "숭어는 성질이 진흙을 먹기를 좋아하므로 숭어를 먹으면 비장(脾臟)에 좋다"고 기록했다. 비장뿐만 아니라 숭어는 아이를 출산한 산모의 산후조리에도 효험이 있다고 한다. 숭어가 많이 잡힌 가덕도 주민 중에는 출산 후 푹 고아낸 숭어 국물을 먹어 본 경험이 있는 이들이 여럿 있다고 한다.

이처럼 숭어는 맛뿐 아니라 우리 몸에도 그만이다. '숭어껍질에 밥 싸먹다가 논 판다'거나 '보릿고개에도 숭어 비늘 국 한 사발 마시면 정승 보고 이놈 한다'는 속담이 괜히 생겨난 건 아닌듯하다.

■160여 년을 이어온 '숭어들이'

	분청사기 상감 물고기 매병- 보물 제347호로 조선 전기에 제작됐다. 높이 30.0㎝ 아가리 지름 4.6㎝ 밑지름10.4㎝다. 2마리의 물고기를 각각 흑백상감하고 물결을 흑상감으로 처리했다. 국립중앙박물관 제공

1530년(중종 25) 간행된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도 기록되었듯이 조선시대 숭어는 삼면 바다에서 흔하게 나던 물고기였다. 19세기 말경에도 이러한 사정은 여전했다. 1893년(고종 30)에 간행된 '조선통어사정(朝鮮通漁事情)'(부산시민도서관 소장)을 살펴보면 당시에도 숭어는 한 번 그물에 6000여 마리를 건져 올릴 수 있을 정도로 많이 났다고 한다.

조선시대에 숭어는 다양한 방법으로 잡았다. 가장 원시적이면서도 흔한 방법은 어살이었다. 돌을 쌓아 만든 독살이나 대나무를 엮어서 만든 죽방렴으로 갯골을 막아 숭어를 잡았던 것이다.

지역에 따라 숭어 잡는 법도 조금씩 달랐다. 현재도 숭어산지로 유명한 영산강 하류는 뗏발과 뗏줄을 이용해 숭어를 잡았다. 뗏발 앞에 뗏줄을 친 후 숭어를 몰아 뗏줄에 놀란 숭어가 뗏발에 떨어지면 당구리로 숭어를 두들겨 잡는 방식이다. 진도에서는 개막이로 숭어를 잡았으며, 고창에서는 개펄에 말뚝을 박아 그물을 걸어 잡기도 했다고 한다.

한편, 가덕도에서는 '숭어들이'라는 방법으로 숭어를 잡았다. '숭어들이'는 이 지역에서 160여 년간 이어오고 있는 전통 숭어잡이법이다. 숭어는 본래 눈이 크고 잘 발달되어 있다. 또 의심이 많고 화를 피하는 데에 민첩하며 잘 뛰어 오르는 속성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그리하여 정약전(丁若銓, 1758~1816)도 '자산어보(玆山魚譜)'에서 "(숭어는) 물이 맑으면 그물에서 열 발자국쯤 떨어져 있어도 그 기색을 잘 알아챌 수 있으며, 그물 속에 들었다 해도 곧잘 뛰쳐나간다. 그물이 뒤에 있을 때에는 물가로 나가 흙탕 속에 엎드려 있고 물속으로 가려 하지 않는다. 그물에 걸려도 그 흙탕에 엎드려 온몸을 흙에 묻고 단지 한눈으로 동정을 살핀다"고 설명한 바 있다.

이런 숭어는 초봄이 되면 눈이 먼다. 숭어는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눈에 하얀 막이 생기기 시작해 초봄이 되면 눈에 막이 쌓이는 것이다. 이처럼 눈먼 숭어가 연안 가까이 접근할 때를 기다려 그물로 둘러 잡는 방법이 바로 '숭어들이'다. 일명 '육소장망'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숭어들이'에는 많은 인원과 배가 필요하다. 숭어 떼를 기다리며 망을 보는 망쟁이를 비롯해 숭어가 드나드는 숭어목에 그물을 치고 대기하는 여섯 척의 무동력선과 숭어가 그물에 들었을 때 끌어 올릴 선원이 여럿 필요한 것이다. 가덕도에서는 망쟁이를 비롯해 총 21명이 한 팀을 이루어 작업했다고 한다.

'숭어들이'의 성패는 망쟁이에 달렸다. 어로장을 뜻하는 망쟁이는 숭어 떼를 잘 관찰할 수 있는 벼랑 끝에 설치한 망통(망대)에 들어가 숭어가 드는 것을 감시한다. 망쟁이는 망인, 망지기, 망수로도 불리는데 여간 '고기 눈'이 밝지 않고선 맡을 수 없다. 그는 바다의 색깔을 보고서 숭어 떼의 움직임을 알아차릴 수 있으며, 기후나 바람의 변화까지도 예측이 가능한 전문가다.

숭어 떼가 들 때를 기다리며 망을 보는 망쟁이는 고독하다. 그는 한시도 바다에서 눈을 뗄 수 없고 망통을 외롭게 지켜야만 한다. 식사도 바다에 있는 배 위에서 망통까지 연결한 줄에 실어 날라 해결한다. 오랜 기다림 끝에 숭어 떼가 들면 망쟁이는 배 위 선원들에게 우렁찬 목소리로 신호를 보낸다. 그러면 좌우 3척씩 진을 펴고 있던 배의 선원들은 미리 쳐둔 그물을 바짝 조여 숭어를 가둬 도망치지 못하게 한 뒤 배 위로 건져낸다.

'숭어들이' 한 번에 잡히는 숭어의 양은 예전에는 2만 마리 이상이었을 때도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요즘은 아득히 먼 이야기가 되고 말았다. 가덕도 주변이 한참 개발되고 있는 탓이다. 섬 주변에 신항만이 들어서고 거제와 연결하는 가덕대교와 거가대교가 놓이면서 불빛과 소음에 민감한 숭어들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 이 때문에 가덕도의 전통 숭어잡이법인 '숭어들이' 도 자취를 감추고 있다. 인간 생활의 편의를 위해서는 개발도 필요하다. 하지만 그 개발이 소중한 자연과 문화를 해쳐서는 안 될 것이다. 이 봄, 가덕도 숭어가 개발과 보존의 적절한 조화를 다시금 생각하게 한다.

부산박물관 학예연구사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아 취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