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법부 70년 오욕의 역사 기록
- 정권의 하수인 역할 자처하고
- 법 악용한 비적행위 등 비판
- 정의로운 법관 이야기도 담아
12·12 쿠데타 등으로 정권을 잡은 전두환 전 대통령이 제5공화국 대통령으로 취임한 지 한 달 반이 지난 1981년 4월 15일. 대법원에서는 정년을 한참 남겨 놓은 이영섭 대법원장의 퇴임식이 있었다. 그는 회한으로 가득 찬 퇴임사에서 사법부를 사법부( 司法府)가 아닌 사법부( 司法剖)라고 적었다. 사법부의 위상이 행정부의 일개 부처로 전락했다는 사실을 자조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그로부터 35년이 지난 지금, 사법부는 국민의 신뢰를 얻고 있는가. 역사학자 한홍구는 이 책을 통해 대한민국 사법부에 죽비를 내리친다. 10명 중 7명은 사법부를 신뢰하지 않는다는 설문 결과가 버젓이 공개되는 사법 불신 사회를 낱낱이 파헤치며 사법부에 공소장을 던졌다.
저자는 이 책에서 이승만 정권부터 현재까지 대한민국 사법부가 권위주의 정권 아래서 겪은 고통을 기록했다. 하지만 사법부가 고통만 당한 것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사법부는 안기부나 중정 등 권력의 피해자인 것은 분명하지만 피해를 본 국민에게는 살해 공범자이자 가해자였기 때문이다. 인권의 최후 보루이자 힘없는 국민의 든든한 방패막이가 되어야 할 사법부가 정권의 조력자를 넘어 권력이 되기까지 대한민국 사법부의 슬픈 역사 70년이 이 책에 담겨있다.
저자는 이 책에서 '법비'들을 한 명씩 끄집어낸다. 저자는 법비(法匪)란 법을 자기식으로 절대시하고 도구 삼아 비적 행위를 해왔던 사람을 뜻하는 것으로 비적 중에서도 가장 악독하다고 강조한다.
5·16 이후 1963년 12월까지 군정기간은 법원이 완전히 군부의 통제하에 있던 사법부의 암흑기라고 할 수 있다. 혁명재판소와 혁명검찰부를 설치해 사법부는 그야말로 정권의 하수인이었다. 박정희의 유신헌법에는 사법부의 목을 죄는 여러 독소조항을 심어 놓았고 국가관이 없는 판사들이라는 이유로 판사 재임용에서 대거 탈락시키기도 했다. 법관의 영장 없이 체포 및 구속해 비상군법회의에서 심판하는 일도 비일비재했다. 정권은 법관을 협박하고 좌천시키면서 자신이 원하는 판결을 얻어냈다. 1974년 민청학련사건을 맡았던 강신옥 변호사는 군법회의에서 변론 중 "차라리 피고인들과 뜻을 같이해 피고인석에 앉아 있고 싶은 심정"이라고 절규했다가 휴정 중 옆방으로 불려가 집단 폭행을 당하기도 했다. 또 박시환 판사는 즉심에서 정권의 뜻을 거스른 판결을 했다가 인사조치됐다. 그는 1985년 인천공단 가두시위 관련자 11명에게 무죄를 내렸다는 이유로 안기부의 압력을 받고 춘천지법으로 좌천됐다.
이 책은 단순히 사법부의 오욕만 기록한 것이 아니다. 정권의 압력 속에서도 양심적 판결을 내리고 변호했던 정의로운 법관의 이야기도 상당 부분 채웠다. 현재도 법원에는 수만은 과거사 사건, 조작 간첩 사건들이 재심을 기다리고 있다. 저자는 독자들에게 이 사람들을 기억하며 이 책을 '아프게' 읽어 달라고 주문한다. 신수건 기자 giant@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