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도구 동삼동 해녀가 해양대 해역에서 문어를 잡아 올리고 있다. 국제신문 DB

- 소로 태어나지 못해서
- 여자로 태어났다는 제주 방언
- 물질하는 삶의 恨 담겨있어

- 깊게 팬 주름·굳은 손마디
- 그들의 신성한 노동 생각하며
- 이젠 비하 뜻 담긴 '해녀'대신
- 의미깊은 '잠녀' 명칭 어떨까

■해녀의 본래 이름, 잠녀(潛女)

예전의 잠녀들은 '소중기'를 입고 물질을 했다. 처음에는 흰색이 많았으나 물질 할 때 쉽게 얼룩져서 검은색 등 짙은 색 천에 물을 들여 만들었다. 한국콘텐츠진흥원 문화콘텐츠닷컴 제공

잠녀는 나잠어업(裸潛漁業)을 하는 여자를 말하는데, 우리에겐 해녀(海女)로 더욱 잘 알려져 있다. 언제부터 잠녀라는 이름이 생겼는지는 정확하지 않다. 다만, 문헌상으로는 1628~1635년 사이 제주도에서 유배생활을 한 이건(李健)의 '제주풍토기(濟州風土記)'에서 처음 확인된다. 그는 '바다에서 미역을 캐는 여자'를 '잠녀'라고 표현했다. 1814년(순조 14)에 제주찰리사(濟州察理使) 이재수(李在秀)가 비변사에 올린 별단(別單)에서도 잠녀라는 이름이 보인다. 그는 별단에서 제주도에서 세금으로 거두는 미역, 즉 수세곽(收稅藿)은 모두 잠녀가 감당하는데, 그 양이 너무 과해 여기저기에서 울부짖으니 감해 달라고 비변사에 요청했다.

잠녀라는 이름은 일제강점기에 해녀라는 일본식 이름이 건너오면서 빠르게 자취를 감췄다. 해녀는 일본에서 물질하는 여자를 비하해 부르던 이름이다. 그런데도 이런 이름이 우리나라에서 득세하게 된 것은 무슨 까닭일까.

그것은 일제강점기라는 시대적 배경과 함께 바다와 여자를 천시한 육지민의 시선 때문이었을 것이다. 이들은 잠녀를 발음이 유사한 잡녀(雜女)에 빗대 천대했으니 그 이름을 당장에라도 벗어던지고 싶지 않았을까. 하지만 잠녀의 고향인 제주도에서는 지금도 잠녀 혹은 잠수(潛嫂)라는 이름을 적지 않게 사용하고 있다.

우리가 알고 있는 해녀의 본래 이름은 잠녀다. 해녀라는 이름이 워낙 강하게 각인된 탓에 이젠 본래의 이름으로 되돌리기가 쉽지는 않아 보인다. 그렇더라도 우리의 이름 '잠녀'를 잊지는 말아야 할 것이다. 잠녀라는 이름에는 단순히 해녀가 가진 '해산물을 채취하는 여자'라는 의미 외에도 모진 해파(海波)를 견디며 살아 온 우리 여인네들의 질곡의 역사가 진하게 배어있기 때문이다.

■쉐로 못 나난 여자로 낫쥬

요즘의 잠녀들은 물질을 할때 어느정도 보온이 되는 고무재질의 옷을 입는다. 하지만 이도 춥긴 마찬가지여서 작업을 마치면 곧바로 불을 지펴 언 몸을 녹인다. 국제신문 DB

거친 파도와 싸우며 이루어지는 잠녀의 노동은 그 고됨이 가히 상상을 초월한다. 제주도에는 '쉐로 못나난 여자로 낫쥬'란 방언이 전해 온다. 이 말은 소로 태어나지 못해 여자로 태어났다는 뜻이다. 노동 강도가 얼마나 세었으면 차라리 소로 태어나는 편이 더 나았을 것이라고 했을까. 잠녀로 살아가는 삶의 한스러움이 진하게 배어 있다.

과거 제주도 잠녀는 7∼8세가 되면 헤엄치기를 시작해 12∼13세 때에는 어머니로부터 '두렁박'을 받아 깊은 곳으로 헤엄쳐 들어가는 연습을 했다. 15∼16세가 되면 바닷속에서 물질을 시작해 잠녀가 되었고 17∼18세에는 비로소 제 몫을 하는 잠녀로 인정받으며 60세 전후까지 활동했다. 잠녀는 아이를 가진 몸으로도 물질을 해야 했다. 그리하여 물질을 마치고 돌아오는 배 안에서 아이를 낳는 경우도 있었는데, 이때 낳은 아이를 '배동이', '축항동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잠녀는 아이를 낳고도 쉴 틈이 없었다. 사흘이 지나면 아이를 삼태기에 뉘어놓고 다시 물질을 시작했고, 그 탓에 갓난아이도 이레 만에 젖 대신 밥을 먹어야 했다고 한다.

요즘 잠녀는 고무로 만든 물옷을 입지만 예전에는 거의 알몸에 가까운 상태로 작업했다. 그리곤 차디 찬 겨울바다에 몸을 던져야 했으니 그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었을 것이다. 세종 때 제주목사를 지낸 기건(奇虔)은 한 겨울 순력(巡歷) 길에 바다에서 알몸으로 물질하는 잠녀들을 보고 너무 놀랐다. 어찌 이 추운 겨울에 알몸으로 바다 속에서 작업할 수 있단 말인가. 이런 잠녀들이 안쓰러워 그는 이후로는 잠녀가 물질해 올린 전복과 미역 등은 먹지 않았다고 한다. 어느 정도 보온이 되는 잠수복을 입고 물질을 하는 요즘 잠녀도 작업을 마치면 곧바로 장작불을 지펴 언 몸을 녹인다. 오랜 시간 물질에 얼마나 몸이 얼었는지 어떤 잠녀는 살이 불에 새까맣게 타들어가 흉터가 남을 정도가 되어도 아픔을 느끼지 못할 정도란다. 이러니 그 옛날 잠녀들의 고통이야 더 말해 무엇하겠는가.

■강인한 생명력의 대명사

물질은 바닷속에서의 작업이므로 늘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잠녀는 상어와 같은 물고기의 공격을 받기도 하고 손에 감은 빗창(단단한 무쇠로 만든 30㎝ 가량의 칼) 끈이 전복에 끼어 물 위로 떠오르지 못해 목숨을 잃기도 한다. 하지만 잠녀는 이런 위험에도 물질을 계속한다. 잠녀에게 물질은 가족의 생계가 달린 생명줄이요, 미래의 희망이기 때문이다. 제주도 속담에 '애기짐광 메역짐은 베여도 안 내분다'는 말이 있다. 바다에 몸을 던져 건져 올린 미역은 아기만큼이나 소중해 절대 버릴 수 없다는 뜻이다. 자신의 목숨을 걸고 건져 올린 미역이니 어찌 소중하지 않겠는가.

잠녀는 물질의 숙련도에 따라 상군, 중군, 하군으로 나뉜다. 잠녀는 보통 수심 5m 바다에 서 30초 남짓 작업한 뒤 다시 수면 위로 올라오지만 상군과 같이 기량이 뛰어난 잠녀의 경우 수심 20m 바다 속에서 2분 이상을 견딜 수 있다고 한다. 물속에서 작업을 마치고 수면으로 떠오른 잠녀는 '호오이' 하는 소리를 내며 참았던 숨을 몰아쉰다. 마치 휘파람 소리처럼 들리기도 한 이 숨소리는 '숨비소리', '숨비질소리', '솔비소리', '솜비질소리' 등으로 불리는데, 그야말로 살아있음을 확인하는 경이로운 생명의 소리다.

제주도 잠녀의 물질은 제주 바다를 건너 육지 연안에서도 이루어졌다. 경상도, 전라도, 충청도, 강원도, 황해도, 함경도 등 바다를 끼고 있는 지역에서 모두 잠녀의 손길을 필요로 했기 때문이다. 제주도 잠녀는 이 지역으로 나가 짧게는 한 달, 많게는 여러 달을 머물며 물질을 하고 노임을 받아 생계에 보탰다.

이렇게 타 지역으로 나가 물질하는 잠녀를 '출가잠녀'라고 부른다. 출가잠녀 수가 가장 많았던 지역은 경상도였다. 1937년에 발간된 '제주도세요람(濟州道勢要覽)'을 보면 그 해 3월 말 현재 출가잠녀의 도별 분포가 나오는데, 전체 출가잠녀 2801명 중 2123명이 경상도(경남 1650명, 경북 473명)에 분포하고 있었다.

출가잠녀는 작업을 마치면 고향인 제주도로 돌아갔다. 하지만 그 중 일부는 그 지역 사내를 만나 혼례를 치른 후 정착하는 경우도 있었다. 부산의 기장(機張)도 그런 곳 가운데 하나였다. 기장은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 동래현조에 미역을 진공하였다는 기록이 있을 만큼 15세기 이전부터 미역이 유명하였던 곳이었으니. 기장에 정착한 제주 잠녀는 70대 중반까지도 물질을 했다고 하는데, 이는 제주 잠녀가 아니고선 좀처럼 어려운 일이라고 한다.

출가잠녀는 딸을 낳으면 대를 이어 물질을 시키기도 했다. 삼천포나 구룡포 지역 잠녀들에게서 이런 모습이 나타난다. 하지만 기장 대변마을 잠녀들은 대부분 기장 출신이란다.

기장에는 현재 500여 명의 잠녀가 있다. 대부분 60대 이상이며, 주로 말똥성게 등 해산물을 채취한다. 그리고 1980년대 이후 양식이 대세를 이루면서부터는 자연산 돌미역도 채취한다. 돌미역은 청정해역 해안가 바위에서 자연 생산되는데, 설을 지난 이맘때가 채취의 적기라고 한다. 기장 잠녀들은 돌미역 채취에 앞서 매년 10월 말에서 11월 초 무렵에 해안가 바위를 씻어 준다. 나무에 철정을 붙여 바위에 붙은 다른 잡초를 제거해 미역 포자가 잘 달라붙게 하려는 것이다. 이를 '실게질'이라고 부르는데, 이때 아래와 같은 '미역 돌 씻기 노래'를 불렀다고 한다.



어이샤 어이샤// 이돌을 실걸려고/ 찬물에 들어서서// 바다에 용왕님네/ 구비구비 살피소서// 나쁜물은 설물따라 물러가고/ 미역물은 덜물따라 들어오소// 백색같이 닦은 돌에/ 많이 달아주소// 어이샤 어이샤// 내년봄에 이 미역따서/ 풍년되어 잘 살아보세.



노동의 고단함을 잊고 미역 채취가 풍년을 이루길 바라는 기장 잠녀의 간절한 마음이 녹아 있다.

지난 휴일에 이기대 갈맷길을 걷다가 '막사' 앞에서 물질로 건져낸 해산물을 펼쳐놓고 판매하는 잠녀들을 만났다. 검게 그을린 얼굴에 깊게 패인 주름, 굽은 등, 거칠고 딱딱하게 굳은 손마디가 그녀들의 지난 삶을 대변해 주었다. 아직은 제주뿐만 아니라 부산 곳곳(기장, 해운대, 이기대, 오륙도, 영도 등)에서도 잠녀를 만날 수 있다. 하지만 점점 그 수가 줄고 노령화하고 있어 이런 날도 그리 오래지는 않을 것 같다. 더 늦기 전에 잠녀에게 관심을 가져보자. 모진 세월의 풍파를 억척스럽게 헤쳐 온 잠녀야말로 진정 우리 부산의 어머니일 테니까.

부산박물관 학예연구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