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에게나 그런 책 한 권 쯤 있을 것이다. 여행지에 가져가서 읽고 싶은 책, 울적한 날 꺼내 읽고 싶은 책, 좋은 사람에게 선물하고 싶은 책. 나에게 박완서의 산문집 '못 가본 길이 더 아름답다'는 그런 책이다.

'못 가본 길이 더 아름답다'는 지인에게 선물로 받은 책이다. 생각해 보면 책을 선물한다는 건 좋은 선택이 아닌 듯싶다. 선물 받는 이가 어떤 장르(취향)의 이야기를 좋아하는지 고려해야 하며, 혹여 그가 그 책을 읽기라도 했다면 낭패가 아닐 수 없기 때문이다. 이 책을 선물 받은 내 경우도 산문을 읽지 않는 나의 독서편식으로 인해 꽤 오랫동안 책장에 꽂혀 있었다.

잊고 있던 이 책을 읽게 된 계기는 여행을 떠나면서이다. 여행지에서 호흡이 긴 소설을 읽기는 버겁고, 시(詩)를 음미할 수 있을만한 시간적 여유가 없기에, 산문집 '못가본 길이 더 아름답다'가 최종 선택된 것이다. 그리고 나는 여행이 주는 즐거움보다 '자택 마당에 웅크리고 앉아 호미로 잡초를 뽑고 있는' 박완서의 이야기에 매료당했다.

책은 3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에 담긴 글들은 사람과 자연에서 비롯되는 기쁨, 애정, 감사함이 고스란히 담겨져 있다. "살아 있는 것들만이 낼 수 있는 기척은 흙에서 오는 걸까. 씨앗들로부터 오는 것일까… 씨를 품은 흙의 기척은 부드럽고 따습다. 내 몸이 그 안으로 스밀 생각을 하면 죽음조차 무섭지 않아진다"(15쪽) 선생은 아주 일상적이며 사소한 데서 삶의 의미를 발견하고 또 담담히 (자신의) 죽음을 준비하고 있음을 짐작게 한다.

2부는 2008년 '친절한 책읽기'라는 제목으로 신문에 연재한 글들을 모아놓았다. 선생이 어떤 장르의 글 읽기에도 주저 없음을 알 수 있으며, 자신이 좋아하는 작가에 대한 애정이나 글 읽기의 즐거움 등 감정을 숨김없이 표현하고 있어 흥미롭다. "아무 곳이나 펴놓고 읽다가 무슨 소리인지 잘 이해가 안 되는 건 건너뛰기도 하지만 마음에 와 닿거나 위로가 되는 부분은 읽고 또 읽게 된다."(227쪽) 단 하나의 문장까지도 모두 이해하고 지나가야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나게 만드는 순간이다.

마지막 3부에서는 김수환 추기경, 박경리 소설가, 박수근 화백을 추억한다. 사실 이 책은 세상을 떠난 사람들(아들의 장례식 등), 한국 전쟁에 대한 기억 등이 담겨 있어 '죽음'의 문제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그런데 선생은 이 죽음 앞에서 회피하거나, 두려워하지 않는다. 삶이 죽음과 함께 있음을 주지하며 일상의 영역에 두고 있기 때문이다.

작가 박완서는 세상에 대한 관심과 애정을 놓치지 않으며 쉼 없이 글을 썼다. 굳이 이 책이 아니라도 좋다. 선생이 남겨놓은 수많은 작품 중, 한 편을 골라 읽어 보길 권한다. 그 작품 속에서 못 가본 길을, 소리 없이 스쳐간 시간들을, 사람들을 만날 지도 모를 일이다.

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