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성희가 1981년 출연한 연극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의 한 장면. 김남석 교수 제공

- 1943년 데뷔해 연극 400편 출연
- 최근까지 무대 선 '영원한 현역'

- 김남석 교수·연출가 전승환 등
- 전설과의 인연 기억하며 추모

화장(化粧)을 해달라 했다. 구순의 여배우가 입은 환자복은 매무새가 반듯했다. 마지막까지 흐트러진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 한 것은 70여 년을 여배우로 살아온 백성희의 자존심이었다.

지난 8일 향년 91세로 타계한 '한국 연극의 살아있는 역사' 원로 배우 백성희. 지난해 발간된 그녀의 회고록 '연극의 정석, 백성희의 삶과 연극'을 쓴 부경대 김남석(43·국어국문학과) 교수가 그녀를 마지막으로 만난 것은 지난달 22일 서울에서 열린 출판기념회를 며칠 앞둔 날이었다.

그녀는 출판기념회를 기다리고 있었다. 병마 탓에 끝내 참석하지는 못했다. 비록 주인공은 없었지만 내로라하는 연극인들이 모여 행사를 치렀다. 그러나 이후 출판기념회가 끝났다는 것을 아무도 그녀에게 말하지 않았다. 삶의 고삐를 놓지 않는 것이 어쩌면 그 희망 때문인지도 몰라서다. 박수갈채 속 화려하게 무대에 오를 생의 마지막 기회. 그 날을 기다리던 백성희는 지난 8일 연극인으로 온 힘을 다해 살아온 인생의 마침표를 찍었다.

1943년 데뷔한 백성희는 국립극단 창단멤버로 400여 편의 연극에 출연, '한국 연극의 살아있는 역사'로 불린다. 김 교수와 그녀의 인연은 10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부경대 부임 바로 전해인 2004년. 데뷔 60주년을 맞아 그녀의 연극 인생을 담은 자전극 '길'(이윤택 작, 김혜련 연출)이 제작됐다. 당시 김 교수가 드라마투르기·조연출로 참여해 대본의 토대가 될 사전 인터뷰를 했다. 인터뷰 내용은 그해 '배우의 거울'이라는 책으로 나왔다. 지난해 국립극단에서 회고록 발간 계획을 세우자 백성희가 김 교수를 필자로 추천했다. '연극배우 백성희' 사관(史官)이 된 배경이다.

김 교수는 "백성희는 삶과 연극관 모든 면에서 배우가 '거울'처럼 바라보고 본받아야 할 이상적인 모델이었다"고 했다. 김 교수는 12일 서울에서 치러지는 발인에 참석해 고인과 작별을 한다.

극단 전위무대 전승환 연출에게 백성희는 '영원한 현역'이다. 그는 "15년 전쯤 백 선생님을 비롯해 당시 생존해 계시던 차범석, 장민호 선생님 등과 함께 강화도에 갔던 기억이 생생하다"면서 "입원 소식에도 뵙지 못하고 돌아온 게 생전에 뵐 마지막 기회가 될 줄은 몰랐다"고 아쉬워했다. 2013년까지도 작품 활동을 했던 열정을 가리켜 "힘이 있는 날까지 무대에 선다는 연극 정신을 몸소 보여준 분"이라고 힘주어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