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이 다가오면 마음이 어지럽다. 무엇을 하고 있는가? 무엇을 남겼는가? 잘 사는가? 타인에게 뒤떨어진 삶을 사는 것은 아닌가? 내 인생은 어떻게 될 것인가? 생각이 깊어지면 자족과 감사는 점점 멀어지고 걱정과 염려는 가까워진다.

교도소에서 근무하는 지인이 말했다. "세상에는 두 종류 사람이 있는데 들킨 죄인과 들키지 않은 죄인이다." 사람들은 말한다. "큰 죄인은 길거리에 있고 작은 죄인은 담장 안에 있다." 역사학자나 사회운동가는 말한다. "한 사람을 죽인 자는 살인자나 테러분자가 되지만, 많은 사람을 죽이는 자는 영웅이 된다." 모순적인 명제들이다.

사람들이 왜 불평과 불만을 가질까? 세상이 불공평하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왜 삶의 의욕을 잃을까? 수고의 결과가 공정하게 주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공동체에 적개심과 증오를 가지는 이유는? 모멸적 차별을 받고 인격적 주체로 대우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조금만 냉정하게 생각해 보면 처음부터 세상은 공평하거나 공정하지 않았다.

사자와 쥐는 출발부터 다르다. 재벌 회장 아들과 촌부의 아들이 같은 삶을 살 수가 있겠는가? 출발이 다르고 기회가 다르다. 스스로 속이지 말아야 한다. 공평이나 공정을 기대할 것이 아니라 현실을 직시하는 것이 어쩌면 세상을 이기는 탁월한 지혜로움일 것이다.

개천에서 용이 나지 않는다. 그런 경우는 거의 전무하다. 용의 출현은 특별한 조건과 환경에서 가능하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완전하지 않다. 태초부터 존재했던 제도나 조직과 사상 중 어떤 것도 완벽하거나 완전하지 않았다. 공평하거나 온전하지 않았다. 공평과 정의는 실현 불가능한 신의 영역이다.

그런데 세상은 세상이 공평하다, 정의롭다고 가르친다. 존재하지도, 실현 가능하지도, 정의롭거나 공평하지도 않은 세상에서 공평과 정의를 강제로 인식하게 한다. 그러다 배움과 다른 현실을 만나면 분노하고 증오한다. 타인과 자신의 삶을 파괴한다.

어머니와 자신에게 끝없는 폭력을 행사하는 알코올중독자 아버지를 죽인 고교생을 교화한 적이 있다. 그는 분노를 결코 감추지 않았다. 사람을 죽인 것이 아니라 짐승을 죽였다고 했다. 시간이 지난 후 그는 "나는 나의 삶을 살아야 했다. 아내와 자식을 폭행한 아버지도, 그런 아버지를 죽인 나도 사람이 아니라 짐승이었다"고 말했다. 짐승이라 폄하하고 저주했던 아버지를 죽임으로 인해 스스로 인간이라고 자부했던 자신의 망가진 삶을 후회했다. 아버지를 죽인다고 그의 삶이 달라진 것이 아니었다.

세상 변화는 변화를 이끌 수 있는 위치에 있을 때 가능하다. 비판과 비난, 분노와 증오를 통해 세상은 결코 달라지지 않는다. 약자의 저항은 영웅적 정의가 아니다. 문제는 힘이 없을 때는 증오와 의협심을 가졌지만, 정작 권력의 위치에 오르면 그토록 증오했던 힘의 편협함과 기득권의 비열함을 그대로 행한다는 것이다. 세상은 지금까지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선악이 공존하는 역사를 가졌다. 그러므로 타인에게 부정적 영향을 받지 않고 자신의 삶을 즐거워하는 것이 행복한 인생을 위한 바른길이다. 현재의 삶에 자긍심을 가지고 주체적 즐거움을 누려야 한다.

가야교회 담임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