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수영성 문화마을 프로젝트 중 하나로 부산 수영사적 공원 등지에서 열린 제2회 수영성 난장 행사에서 시민들이 공연과 놀이를 즐기고 있다. 박진명 제공

- 역사적 가치로 개발제한 묶여
- 발전 더딘 부산 수영동 일대
- 활력 되살릴 동네콘텐츠 개발

- 기존 지역 커뮤니티로는 한계
- 젊은 예술인 동참 이끌어
- 다양한 사업 아이디어 발굴

- 사적공원서 두 차례 문화난장
- 스토리텔링 공연·장터 선봬
- 마을 잡지·박물관도 만들기로

부산에 수영구는 있어도 수영동이 있는지는 모르는 사람이 많다. 팔도시장은 알아도 수영사적공원은 모르는 사람이 더 많다. 망미동, 센텀, 민락, 광안동으로 둘러싸인 수영동 일대는 30년 넘게 문화재로 인한 개발제한구역으로 지정되어 있다. 주변 높은 건물 사이에서 수영동만 푹 꺼져 있고 건물을 새로 짓는 것도 어려워 대체로 낡은 건물이 많은 데다 수영구에서 고령 인구가 가장 많은 지역이다.

유형문화재인 남문이 있는 수영사적공원에 처음 갔을 때 적잖이 놀랐던 이유는 도심에서 전혀 다른 풍경이 펼쳐졌기 때문이다. 새로운 세계로 가는 문처럼 보였는데 그 속에는 어르신들이 바둑 장기를 두거나, 때때로 음주와 함께 화투를 치고 있었다. 천연기념물인 아름드리 푸조나무와 위엄 있는 곰솔나무를 비롯한 다양한 사적들 내용을 알고 나서는 더욱이 이 매력적인 장소가 제대로 조명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 안타까웠다. 게다가 이곳에서는 수영야류를 포함한 4개 무형문화재 전수가 이루어지고 있다.

수영성을 비롯한 다양한 사적과 4개 무형문화재, 2그루 천연기념물 나무 등 다양한 문화적 유산이 수영동처럼 밀집된 지역은 흔치 않다. 게다가 개발이 제한되고 있어 요즘 자주 회자되는 '젠트리피케이션' 등에서도 조금 더 자유롭다. 부산은 급속한 근대를 경험하고서도 근대의 건축물 등 유산이 제대로 보존되지 못해 아쉬운데 수영동 사적과 스토리는 몇 백년을 넘나든다.

■주민과 만나는 문화사랑방에 집중

	지난달 열린 제2회 수영성 난장 행사에서 어린이들이 그림을 그리고 있다.

처음에는 지역에 대한 조사 때문에 수영동을 만났지만, 문화기획자로서 계속 눈이 갔다. 필자가 속한 부산의 플랜비문화예술협동조합이 지금의 '수영성 문화마을 사업' 준비를 할 때 겸사겸사 수영동 인근으로 이사한 이유이기도 하다. 내 삶과 가까운 지역이어야 고민이 더 깊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흔히 마을만들기 등에서 기존의 지역커뮤니티 위주로 일이 진행되는 경우 시간이 지나면 별 성과 없이 끝나는 경우가 많다. 그분들이 잘못해서 그런 것이 아니라 지역을 바라보는 관점을 새롭게 정립하는 과정이 누락되는 탓이 크다. 그래서 수영동에서 문화마을 사업을 진행하면서 가장 중요하게 설정한 것이 주민들과 커뮤니티인 '문화사랑방'이다.

지역의 작은도서관, 민속보존회의 무형문화재 어르신, 인근에서 전통무예교육원을 운영하는 분, 자체로 문화해설모임을 꾸리는 분, 문화활동을 하는 청년들까지 20명 내외가 반 년 동안 꾸준하게 만남을 갖고 있다. 면면이 다양한 사랑방 참여자들은 관심과 특기에 따라 '느리게 걷기 탐방', '푸조와 곰솔' 잡지, 마을에 대한 조사를 진행 중인 '마을박물관' 프로그램 등으로 연결되며 함께 사업을 만들어가는 주체가 되고 있다.

기존에 지역에서 활발히 활동해왔던 분들뿐 아니라 마을과 인연이 있는 청년을 찾아 문화사랑방에 결합하는 노력도 줄곧 하고 있다. 몇 개월 과정을 통해 수영동에 작업실을 둔 예술가, 수영동에서 쭉 살아온 캐리커처 작가를 만났다. 인근 청년주거 공동체 등도 앞으로 함께 고민하는 중요한 주체가 될 것이다.

새로운 시각을 지닌 청년을 포함해 '커뮤니티'를 새롭게 구성하는 노력이 중요한 것은 역사와 전통이 강하고 고령화된 지역에서 새로운 분위기를 만드는 데는 기존 지역 커뮤니티로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도시에서 공동체는 원래 있던 개념이 아니라, 모인 사람들의 교류와 상상을 통해 새롭게 구성되는 '과정'으로 인식할 필요가 있다.

■마을잔치 '수영성 난장' 두 번 개최

올해 10월과 11월 두 차례 수영사적공원에서 '수영성 난장' 문화행사를 진행했다. 지역의 매력을 알리면서 주민도 즐기는 축제로 기획했다. 첫 번째 난장은 극단 고춧가루부대의 마당극, 지역의 스토리로 판소리 사설을 만든 곱창카레 공연, 시민 참여 장터로 펼쳤다. 이렇게 '전통적인' 요소를 포함한 이유는 수영동이 지닌 장점이나 스토리와 어떤 식으로든 상호작용을 해갈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또 행사장에서 무대이자 소품으로 활용하는 프로그램에서 수영동 내 작은도서관이 책수레를 운영했고, 문화사랑방 참여자들이 국궁체험 아이디어를 내놓았다. 오랫동안 수영동에서 활동하는 주민자치조직에서 양말로 만든 인형을 장터에서 선보였다.

제1회 수영성 난장에 선보인 '타로수레'를 확장해 두 번째 난장에서는 포춘텐트라는 타로존을 만들었다. 광안리에 작업실을 둔 예술가도 타로존에 참여했다. 수영동 일대에 100개 가까이 되는 점집이 있다. 사람의 심리를 어루만지는 무속 영역도 이 지역의 중요한 자원이라는 점에 착안한 아이디어였다. 기복의 대상이기도 한 천연기념물 나무, 여러 개 사당 등을 고려해 타로존이라는 이색 프로그램을 마을 수호신인 푸조나무 인근에서 진행했다. 70, 80년대 가장 번성했다는 수영동 역사를 고려해 사적공원 놀이마당은 고고장으로 꾸몄다. 추억의 DJ와 로큰롤, 옛날 힙합 공연으로 흥을 더했다. 부녀회가 음식을 했고, 마을 문화해설사 분들이 두 가지 코스 탐방을 진행했다.

수영성 난장에서 한 축은 마을에서 줄곧 활동해온 분들과 문화사랑방에 참여하는 분들이 아이디어를 내거나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또 하나의 축은 여러 예술가들이 그들의 감각으로 마을을 만나고 기록하는 것이다. 다른 세대, 다른 분야, 지역주민의 시선을 몰랐던 사람들이 뒤섞이면서 있는 이야기는 새롭게 조명받고, 그 과정에서 새로운 이야기가 만들어진다. 주민으로 오래 살면서 지역을 속속들이 아는 분들도, 주민이 아니어도 새로운 감각을 지닌 다양한 외부자의 시선도 모두 지역의 자원이 될 수 있다.

■마을책자와 박물관, 탐방까지

마을을 만나는 방식은 다양하다. 난장처럼 즐기는 축제도 있지만, 마을에 대한 조사와 인터뷰를 바탕으로 마을책자를 발간하는 마을박물관 프로젝트도 진행 중이다. 이달까지 6개월에 걸친 조사가 끝나면, 내년 초 마을 책자를 내고 조사 과정에서 나온 다양한 자료를 바탕으로 마을 박물관도 꾸린다.

또 마을 주민과 인근의 활동가들로 구성된 편집위원회를 통해 '푸조와 곰솔'이라는 잡지의 창간준비호가 나왔다. 이 잡지는 이후 주민이 주축이 되어 마을기업이나 단체를 만들어 제작을 이어가기 위한 논의가 진행 중이다. 잡지뿐 아니라 수영성 난장의 마켓 운영, 탐방, 문화해설도 새롭게 구성된 단체를 통해 주민이 주축이 되어 진행할 예정이다.

수영성 마을 프로젝트 같은 '커뮤니티 기획'을 하는 최종의 목표는 지역 활성화이다. 이 목표가 달성되면 기획자의 역할은 거의 소멸한다. 그러나 이 과정은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커뮤니티 기획자의 몫은 기꺼이 그 소멸의 시간을 앞당기는 것이고 그 역할을 커뮤니티의 몫으로 치환하는 것이다. 하나의 자리를 놓치지 않으려고 발버둥치는 것이 아니라 커뮤니티를 통해 마을을 공동의 자산으로 환원하는 것. 그것이 마을만들기나 도시재생의 중요한 목표가 되어야 할 것이다.

※수영성 마을 프로젝트

문화체육관광부가 지원하는 문화마을 조성사업에 선정된 사업이다. 개발에 치중하지 않고 마을 고유 정체성과 문화를 살리면서 동네 콘텐츠도 만드는 도시재생사업이다. 부산의 플랜비문화예술협동조합이 맡아 올해 8월께 본격 착수했다. 2017년까지 3년간 국비 시비 구비를 합쳐 해마다 2억 원을 지원해 수영동 일대를 주민과 함께 문화로 가꾸는 프로젝트다.

박진명 수영성 마을 프로젝트 문화기획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