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사회와 함께하는 문화예술활동을 실천하는 예술가와 기획자의 모임인 홍콩의 우퍼텐(Woofer Ten)이 도심에서 야외상영회를 열고 있다.

- 일본 대안문화·대안적 삶 접하고
- 소셜 키친·코코룸 문화활동 목격
- 홍콩 공장지대 내 거대한 작업실
- 옥상 곳곳에 도시농업 흥미로워

- 베트남 젊은 기획자들 힘찬 동력
- 보트피플 세대, 지역결합 인상적
- 태국·싱가포르 등서 만남도 감동

- 부산의 이야기 나누는 통로 필요
- 亞 프로듀서 캠프서 교류 희망

부산에서 문화예술 기획자로 활동하면서 자연스럽게 교류의 중요성을 절감했다. 부산을 중심으로 움직이지만 부산에 갇히지 않기 위해, 부산을 더 입체적으로 이해하기 위해 부산 바깥의 세상을 보는 작업과 부산 밖에서 부산을 보는 시간이 필요했다. 그렇게 누구도 가르쳐주지 않았던 교류라는 바다로 용기를 내어 나가기 시작한 것이 2010년이다. 그런 활동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2003년 시작한 부산의 독립문화기획자들의 모임 재미난복수, 2008년 문을 열어 지난해까지 운영한 독립문화공간 아지트 등에서 활동하면서 시작한 교류는 짧은 시간에 비약적인 확장을 경험했다. 그렇게 만난 친구들이 이제 자기 나라에서 또 다른 세계를 만들어가고 있다. 드라마틱했던 지난 5년간의 좌충우돌 경험에서 많은 것을 배웠다.

교류의 시작은 2010년께 일본이었다. 부산에서 많은 단체와 행사가 일본과 관계를 맺고 있다. 청년·인디문화와 관련한 활동을 주로 한 독립문화공간 아지트는 비주류에서 상징성을 획득하고 흐름을 만들어 가던 아시아의 친구들을 중심으로 교류를 시작했다. 사회학과 인류학을 전공하고 문화의 사회적 실천에 대한 리서치 활동을 하던 친구 켄이치 에가미의 도움으로 일본의 대안문화 활동 상황을 접했고, '아마추어의 반란' 활동으로 한국에도 제법 알려진 하지메 마쓰모토를 도쿄 코엔지에서 만날 수 있었다. 코엔지에서 젊다는 것에서 출발하는 에너지, 대안으로서 행동, 지역에 스며들어 대안적인 삶을 찾는 방법을 실감했다.

또, 뉴욕에서 9·11테러를 목격하고 일본으로 돌아와 후쿠시마 사고를 경험한 사키코 스가와가 운영하는 교토의 '소셜 키친'(Social Kitchen)에서는 도시농업과 시민학습, 시민 스스로 시작하는 지역사회 재생의 노력을 생생히 보았다. 일본의 가장 큰 슬럼 지역인 오사카의 가마가사키(釜ヶ崎)에서는 시인 겸 활동가 카나요 우에다가 '코코룸'(Coco Room)이라는 문화공간을 운영하며 지역 노숙자 및 보호가 필요한 사람을 위한 방안과 사회문제를 고민하는 문화 활동을 펼치고 있다.

■꼬리를 물고 이어진 새로운 발견

	말레이시아에서 거리벽화를 그리는 현지 예술인들.

그런가 하면 홍콩의 친구들을 만나면서 경험한 문화 충격도 작지 않다. 2013년께부터 홍콩을 비롯해 동남아시아의 문화기획자와 단체를 만나 교류하면서 여러 나라에 관한 선입견이 많이 깨졌다. 감당할 수 없을 정도의 임대료로 도심에서는 생각조차 할 수 없는 많은 문화예술 및 대안활동 관련 작업실이 공장지대에 몰려있었는데 그 규모가 내 상상을 훨씬 벗어날 만큼 거대했다. 그런가 하면 홍콩에 남은 거의 유일한, 농사를 지을 수 있는 지역을 부동산 중심 정책에서 보호하기 위해 아주 다양한 사람이 협력하는 현장도 무척 인상 깊었다. '마포포 커뮤니티 팜'(Mapopo Community Farm·馬寶寶社區農場)이라는 지역이다.

이 활동과 연계해 시작된 홍콩도시농업 프로젝트 'HK 팜'(www.hkfarm.org)도 흥미로웠다. 디자이너와 젊은 문화활동가가 다수 참여하는 이 프로젝트는 마포포 커뮤니티 팜에서 필요한 흙을 공수해 홍콩의 고층 빌딩 옥상 곳곳에 도시농업의 씨를 뿌리고 있다.

홍콩에서 '웨스트 쿨롱 문화지구'(www.westkowloon.hk) 같은 거대한 프로젝트를 움직이는 친구들도 만났다. 얼핏 대안적 문화활동과 관련이 적거나 상반된 활동을 하는 것 같던 다양한 홍콩 친구들이 미래와 공동체를 위한 가치를 공유하며 흐름을 이루고 있다는 점이 놀라웠다. 쇼핑과 화려한 경관이 우선 연상되는 홍콩에서 보물처럼 반짝반짝 빛나는 것은 사실 이 같은 사회적 실천의 현장이라고 생각했다. 그 덕분에 어떤 지역에 대한 상식적, 상투적 접근이 얼마나 위험한지 새삼 절감했다.

■베트남의 인상 깊은 젊은 문화

	2013년 방콕에서 대안문화 활동가들과 교류활동을 하고 있는 필자 류성효(왼쪽) 씨.

베트남이 가진 상징성도 크다. 개인적으로 1년 정도 베트남에서 일을 하며 삶의 현장에 더 가까이 있을 수 있었다. 베트남은 대개 한국 사람에게 외국인 신부, 쌀국수, 베트남전쟁, 오토바이 등등 몇몇 이미지에 한정되어 이해된다. 하지만 어떤 지역이 이렇게 단순한 몇 가지 단어로 해석되겠는가. 1년간의 생활과 최근까지 이어진 몇 차례 문화 활동 관련 리서치여행 경험에 더해 올해 한국의 예술경영지원센터의 시각예술 지원사업인 프로젝트 비아(Project Via)에 필자도 선정되어 다시 한 번 베트남을 다녀왔다.

이번 리서치에서는 베트남의 근현대 역사를 조사하고 학습했다. 호찌민 시를 중심으로 문화현장의 한가운데 있는 활동가와 기획자를 만나는 시간도 가졌다. 베트남은 굴곡진 근현대사를 딛고, 한국과는 비교할 수 없이 젊은 국민 평균 연령에서 기인한 힘찬 동력이 사회 곳곳에서 요동친다. 산 아트(San Art)와 제로 스테이션(Zero Station), 비아 프로젝트(Bia Project) 등 현대 미술 관련 공간이 의욕적으로 운영되고 있었으며, 보트피플로 설명되는 앞선 세대가 해외에서 뿌린 씨앗이 성장해 현재의 베트남으로 돌아와 지역과 결합되는 모습도 인상적이었다.

태국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대만 싱가포르 등에서 운영되는 상징적 공간이나 아티스트, 활동가와의 만남도 감동적이었다.

독립문화공간 아지트의 레지던시 프로그램에 참여했던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의 '시각예술+음악+실험예술' 대안공간 핀다르스(FINDARS)의 친구들이 건네던 잔잔하지만 묵직한 문화적 실험 이야기, 그리고 세련된 문화 콘텐츠 생산이 무엇인가를 정확하고 유쾌하게 보여준 방콕의 팀 '베리 카인드 인벤션'(www.verykindinvention.com)', 페스티벌의 꿈을 이야기했던 방콕의 '빅 마운틴 뮤직 페스티벌' (www.bigmountainmusicfestival.com)과 홍콩의 '클로켄플랩 페스티벌'(www.clockenflap.com). 뜨거운 청춘이 보여줄 수 있는 이야기를 사회에서 찾기 위해 뛰어다니던 대만의 '지-스트레이트 카페'(G-Straight Cafe).

■성의껏 손만 뻗으면 만날 수 있다

싱가포르 사회에 필요한 사회·문화적 대안을 고민하는 시각예술 프로젝트 '포스트-뮤지엄'(www.postmuseum.wordpress.com) 또한 멋진 문화기획 일꾼들이었다. 나는 부산의 고민을 안고, 아시아를 만나며 표현하기 어려운 드라마를 경험했다. 한 권의 책으로도 설명이 어려운 드라마를 본 느낌이다.

그리고 이런 정보와 이야기를 부산 사람들과 어떻게 공유할 수 있을지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했다. 더불어 깊이 체감할 수 있는 부산의 많은 이야기를 그들과 나누는 방법도 고민하고 있다. 부산 문화판의 사람들도 '아시아의 친구들'에게서 배울 것, 느낄 것이 매우 많다고 본다.

다음 달 초 아시아의 공연예술 프로듀서가 모여 교류하고 토론하고 고민하고 협력하는 '아시아 프로듀서 플랫폼 캠프'(www.asianproducersplatform.com)에 필자도 선발되어 참가할 예정이다. 이 캠프에서 부산에 대한 몇 가지 제안을 하고자 준비하고 있다. 이런 과정을 거쳐 부산이 아시아와 더 뜨겁게 만나면 좋겠다.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자세를 장착한 교류. 그것은 결핍을 장애로 인식하지 않고 계기로 전환하는 우리의 가능성에 대한 확인이다. 성의껏 손만 뻗으면 만날 수 있는 흥미진진한 우리의 삶이기도 하다.

류성효 부산 플랜비문화예술협동조합 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