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일 오후 부산 중구 남포동 음악이 있는 카페 '코헨'. 한쪽 벽면을 가득 메운 LP 진열장 앞에 선 카페 사장은 LP를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다는 20대 후반 기자에게 "들어보시면 알아요"라며 기세등등하게 김광석 4집 CD와 LP를 꺼내 들었다. '다르면 얼마나 다를까'하는 의구심이 사라지는 데는 얼마 걸리지 않았다. CD를 들려주고 난 뒤 검은 LP를 턴테이블에 걸고 가는 바늘을 판 위에 올리자 '지~직'하는 기계음 소리와 함께 김광석의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이 구슬프게 흘러나왔다. 음악을 디지털 음원으로만 듣던 귀가 번쩍 트이는 것 같았다. 이때껏 들어본 적 없는 입체적인 소리였다. 확실히 달랐다. 악기와 악기 사이에 형용할 수 없는 공간이 있는 느낌이었다. 그 공간에 내가 있고, 오롯이 음악이 나를 감싸는 듯했다. 동행한 정두환 음악평론가는 "CD는 음역을 깎아내 목소리와 악기 등을 압축적으로 담아내지만, LP의 음역은 훨씬 넓기 때문에 담아내는 소리가 풍부하다"고 설명했다.
'추억의 음반' LP(long-playing record)가 사회적으로 일고 있는 복고 열풍과 함께 부활의 날갯짓을 하고 있다. LP의 귀환을 확인할 수 있는 곳은 유명 레코드 가게다. 교보문고 핫트랙스 부산 센텀점은 지난 4월부터 중고 LP 판매를 시작했다. 이벤트성으로 시작한 행사였지만, 지금까지 월평균 1000만 원의 매출을 기록하며 매대를 유지하고 있다. 이 매장에서는 LP 반응이 좋자 중저가 턴테이블 판매도 시작했다. 부산에서 열기가 뜨겁자 핫트랙스 대구점도 중고 LP 판매를 시작했다. 박상수 센텀점 파트장은 "중고품은 교환 환불이 어려워 판매에 위험 부담이 크지만, 손길과 추억이 묻어 있다는 점 때문에 손님들이 기분 좋게 사간다"고 말했다.
LP가 다시 인기를 끌면서 대중가수들도 아날로그 매력을 이용하고 있다. 최근 아이유 김동률 버스커버스커 백지영 등이 LP를 발매했고 김광석, 조용필 등의 옛 음반도 LP로 재출시됐다.
사람들이 다시 LP를 찾는 이유는 뭘까. 우선 디지털 시대에서 LP는 음악에 좀 더 심취하고 실체감을 갖게 하는 매력이 있다고 전문가들은 분석한다. 또 '나는 가수다' '불후의 명곡' '복면가왕' 등 TV를 통해 가요계에 복고 바람이 불어닥친 것도 주요 요인으로 꼽힌다.
LP의 매력은 단순히 그리운 과거와 아날로그에만 머물러 있지 않다. LP를 구입하는 팬 이야기를 들어보면 하나같이 추억 향수 그리움으로만 설명되지 않는 다른 매력이 있다고 했다. 30대인 한상욱(부산 해운대구) 씨는 "손이 많이 가는 LP를 고집하는 것은 귀가 편하기 때문이다. 음원과 CD로는 성에 차지 않는, 사람 마음을 편하게 하는 느낌이 있다"고 밝혔다. 20년 가까이 중고 LP를 유통해온 남포동 '바하가 숨쉬는 곳' 강희주 대표는 이를 '소리의 여운' 때문이라고 했다. 강 대표는 "디지털은 소리를 단절한다. 소리를 쪼개고 쪼개 담은 것이 디지털 음원인 반면 LP는 악기와 목소리가 들어오고 나가는 것을 현실감 있게 들려준다"고 설명했다. 그는 명반에 담긴 감동 때문에라도 세대 불문하고 LP를 찾을 것이라 장담했다. "서울에서 젊은이들이 운명한 뮤지션의 목소리와 기술진들의 호흡을 듣겠다며 LP를 찾아 돌아다니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LP는 세대를 뛰어넘습니다."
LP의 부활이 이어지려면 전제 조건도 있다. 아이러브뮤직 황성곤 사장은 "LP 인기를 피부로 느끼고 있다"며 "다만 이 열기가 지속하려면 온·오프라인에서 다양한 턴테이블을 살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LP는 아날로그적 향수만 담긴 과거가 아니다. LP에는 최고의 음악을 들려주려 한 음악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노고가 담겼다. 관리하지 않으면 금방 낡은 소리를 내버린다. 애정을 쏟지 않으면 금방 토라지는 연인 같은 LP에서 흐르는 선율에 몸과 마음을 맡겨보자. 비 오는 날이 잦은 이 늦가을 분위기가 더욱 촉촉한 느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