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부산 출신 여성 싱어송라이터 자이의 공연 모습. 작곡에도 뛰어난 자이는 현재 미니앨범과 프로젝트팀 앨범 제작에 몰두하고 있다. |
추석 연휴였던 지난 9월 28일 오후. 2015 바다미술제가 한창이던 사하구 다대포 해변에 마련된 야외무대에서 건반 앞에 앉아 노래하는 여성 싱어송라이터 자이(정혜정)의 무대를 지켜보다 보니 문득 낯선 기분이 들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대기실에서 호들갑스럽게 수다를 떨던 친구와 동일인물이 맞나?
서울 홍대 앞에서 활동하고 있는 싱어송라이터 자이는 마침 다리를 다쳐 고향 부산에서 요양 중이었다. 부상 투혼을 발휘해 무대에 오른 자이의 노래는 여전히 쓸쓸한 가을의 정취를 가득 담고 있었지만, 창백함에 가까운 하얀 피부와 야윈 체구와는 달리 결코 나약하지 않았다. 그저 막연한 희망이나 대책 없이 달곰한 힐링 메시지보다 훨씬 더 튼튼하고 땅속 깊이 뿌리 내린 단단하고 힘센 슬픔이 곁에서 우는 파도를 다독거리는 것만 같았다. 남들의 이목 때문에 꾹꾹 울음을 참고 있었는데 무대를 마치고 내려온 자이는 어서 술 마시러 가자고 보채는 유쾌한 수다쟁이 혜정이로 금세 변해 있었다.
'경대 여신' 조연희, '서창 여신' 천명실과 함께 웬만한 사내들보다 더 파워풀한 사이키델릭 록을 구사했던 여성 록 밴드 '헤디마마'의 리더이자 베이스와 보컬을 맡았던 자이는 헤디마마 해체 후 '정프로젝트'를 거친 후 싱어송라이터로 서울과 부산을 오가며 활동 중이다. jai란 이름은 인도여행 중에 얻었다. 당신의 영혼에 평화가 깃들기를 바란다는 힌디어 인사말 '나마스떼'와 같은 의미라고 한다. 평화와 낙관적인 마음이 음악으로 전달되길 바라는 뜻에서 '자이'란 이름을 붙였다.
'눈물이 비 오듯 쏟아지는데 전혀 슬프지가 않은 거야. 이게 뭔가 생각해보니 다 잃어버린 평화더라…'. 자이의 노래 '떠난 뒤에'의 가사처럼 사람들이 저마다 마음속에 쓸쓸함과 슬픔이 있지만 그것이 전혀 차갑게 느껴지지 않았다고 한다. 결국 우리는 같은 공간을 살아가며 살을 비비며 마음을 공유하길 원하기 때문이다. 가끔 자이의 노래가 울고 싶은 놈 뺨 때리듯 무자비하게 느껴지지만 어쩐지 그 손길이 따스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이 때문일 것이다. 다만 팬이자 친구로서 아쉬운 점은 오랜 활동에 비해 아직 음원이 발표되지 않아서 자이의 노래를 듣기 위해선 공연장을 찾아가는 수밖에 없다. 정규앨범에 대한 욕심을 버리고 미니앨범 작업에 매진하고 있다고 하니 빨리 완성되어 서러울 때마다 비상약처럼 꺼내먹을 수 있길 바란다. 프로젝트팀 앨범 준비도 병행할 예정이라고 한다. 프로젝트팀은 어떤 형태일지는 알 수 없지만, 혹시 마음의 고향이라는 강렬한 록을 헤디마마 시절처럼 다시 들려주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
| 자이. |
자이는 지난해 6월에는 1970년대를 풍미한 전설적인 보컬리스트 김추자 선생의 33년 만의 컴백 앨범 'It's Not Too Late'에 작곡가로 참여했다. 한국 록의 대부 신중현 선생은 물론 한상원, 정원영, 송홍섭 등등 국내 최고 뮤지션들이 참여한 이 앨범에서 김추자 선생은 젊은 뮤지션과 함께 작업하길 원했고 자이의 곡 '춘천의 하늘'을 택했다. 특히 춘천에 대한 남다른 추억이 있어 이 노래 연습에 더욱 공을 들이셨다고 한다. 개인적으로는 이 앨범에서 가장 좋아하는 곡이었는데도 설마 이 친구가 만든 것인 줄은 상상도 못했다.
김추자 선생은 함께 작업한 자이에 대해 "그 아이 참 술을 잘 마시더라" 라고 평했다고 한다. 자이는 역시 대한민국의 걸출한 여성 보컬리스트 중 한 명인 이은미 씨의 6집 앨범에 '틈'이란 곡으로 참여하는 등 작곡가로도 열심히 활동 중이다.
한 번이라도 더 자이의 노래를 챙겨 듣고 싶은 욕심에 고향 부산으로 돌아오라고 꼬드겨 보았지만, 언제든 갈 수 있지만 아직 서울 홍대 앞에서 해야 할 것들이 남아있다고 한다. 그런데도 자이는 부산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뮤지션으로 착각될 만큼 자주 부산의 로컬 인디 뮤지션들과 교류하고 공연한다. 부산의 여성 싱어송라이터들이 모인 '반했나?' 공연도 꾸준히 참여하고 있다. 부산 뮤지션들은 때론 강하고 투박하지만 그 안에 끈끈한 정과 부드러운 마음이 느껴지는 것이 매력이라고 한다. 예전에는 부산에서 공연할 때 관객들이 소극적이고 수줍어한다는 느낌이 있었는데 지금은 어쿠스틱 위주의 작은 카페 공연이 많아져 관객들 또한 점점 익숙해져들 가는 것 같다고 한다.
누구에게든 친근한 말벗이 될 수 있는 뮤지션이 되는 것이 목표라고 밝히는 자이. 진솔한 대화는 차를 마시면서도 가능하니 술은 조금만 줄였으면 하는 바람이다.
작가·다큐멘터리 감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