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사라는 부품을 안다고해서 조립품 전체를 아는 것은 아니다.

역사의 형태는 두 가지, 즉 사실적 역사와 기록된 역사가 존재한다.

원래의 역사를 우리는 모른다. 누군가의 지식과 관점에 의해 각색된 역사만을 알고 있다. '알고 있다'라고 하지만 실상은 기록된 역사의 내용도 잘 모른다. 다만 현실적 요구와 필요 앞에서 조금 더 논리적 가치와 개념을 가진 사람이 서술한 것을 차용할 뿐이다.

기록된 역사와 내가 요청하는 역사가 일치할 때, 사실이 아니라 단지 기록된 역사가 사실적 역사로 내게 각인이 된다. 동일한 역사적 사건도 보는 사람과 기록하는 사람에 의해 완전히 달라진다.

이 다양한 기록의 역사는 시간의 흐름을 따라 기득권자나 권력자에 의해 하나의 관점 아래 고착된다. 권력자나 다수의 우위가 바뀌면, 고착화된 역사는 다른 방향으로 고착된다.

지식의 한계는 과학의 종말을 통해서 이미 예견됐다. 사실 안다는 것은 그 실상이 존재하지 않는다. 실체가 없었지만 자아가 필요를 따라 창조적 행위를 통해 형상을 만들고, 만들어진 그것을 실체라고 인식하고 취급한다. 그래서 그 실체를 가지지 못한 사람은 아무리 그 실체에 관해 설명해도 이해하지 못한다.

우리 아버지는 스마트폰을 모르고 돌아가셨고, 두 살짜리 아이는 기하학을 모른 채 자라고 있다. 아버지와 아이는 지금도 두 실체를 모른다. 따라서 안다는 것은 자아가 부여한 개념을 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자아의 개념도 실상은 사실이 아니다. 스마트폰을 분해하면 여러 가지 부속품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 부품이 다른 것과 결합하면 전혀 다른 개념의 물건이 된다.

그래서 어떤 것의 부품은 다 아는데 그 부품들이 모여 조립된 물건은 무엇인지 모르는 경우가 있다. 나사와 유리, 플라스틱은 아는데 디지털카메라를 모를 수 있다.

세상의 이치를 있는 그대로 아는 것이 진정한 앎인데 우리가 원래의 이치를 알고 있는 것이 얼마나 될까? 본다는 것도 마찬가지다. 나의 프리즘으로 보는 세상이 원래부터 존재했던 모습은 아니다. 그것은 내가 보고 싶은 것을 보기 위해 보는 것이다. 세상의 전체적 지식을 통해 지혜를 얻게 된다면 내가 아는 지식의 지혜는 정말로 적다. 사물과 현상을 객관화할 필요충분의 요건을 채워주는 나의 지식과 지혜는 조족지혈이다.

진보는 보수를 이해하고 수용했으면, 또 보수는 진보를 용납하고 품었으면 좋겠다. 아는 것과 보는 것의 심각한 한계를 가진 자들이 너무 자신의 일천한 가치와 개념만을 주장한다면 공동체의 분열과 쇠락은 명약관화하다.

나의 식견과 가치관이 중요하듯이 상대의 것도 소중하다. 진정한 인격자와 지성인은 타인의 삶을 존중한다. 그런데 더불어 번영해야 할 민족공동체가 보수와 진보로 나누어 이념전쟁을 한다. 평화의 공동체인 종교가 파멸과 분열을 획책한다. 서로 탄압하고 비난한다. 가장 무서운 전쟁이 종교 전쟁이다.

참 웃기지 않는가? 유한자들이 자신의 존재를 망각한 채 서로를 정죄, 비난하므로 모두를 자신들이 가장 싫어하는 파멸 즉 지옥으로 몰아가고 있다는 것이.

가야교회 담임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