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과 뮤지컬을 하는 디아코노스 극단이 지난 9월 25일 PAF에서 학교폭력 예방 메시지를 전하는 연극을 하고 있다. 프라미스랜드 제공

- 프라미스랜드 17주년 기념 행사
- 예술축제 열어 무대 설 기회 제공

- 공연기획부터 열악한 재정 절감
- 넉달가량 후원 구하느라 진땀빼

- 출연진은 60개팀·150여 명 윤곽
- 기독예술인 영역 확대 첫발 디뎌

- 팀당 시간 8분 동안 재능·끼 발산
- 관객·기획자 반짝이는 눈빛 뿌듯

- 1300석 극장 반도 못차 아쉽지만
- 진흙 속의 진주찾기에 계속 매진

왜? 왜? 내가 왜 이 일을 하려는지 수도 없이 스스로 질문했다.

결론은 "공연예술인에겐 무대를. 공연예술인이 필요한 사람들에겐 정보를!"이었다. 17년째 부산 중구 대청동 용두산공원 입구에서 기독교 문화공간 프라미스랜드를 운영하다 보니 전시나 공연을 치르고 행사를 열면서 많은 사람을 알게 되었다. 일단 공연예술인 등 아티스트들은 자신들이 설 무대를 찾고자 했다.

이런 아트스트들은 '원석'이다. 좋은 원석이라도 '가공실'을 거쳐야 보석이 된다. 그 가공실이 무대다. 특히 CCM(기독교 계통 대중예술) 등 기독교 예술인에겐 가공실이 많이 모자란다. 있어도 이미 인맥과 재정 논리에 길게 줄을 선 상태. 원석은 살길을 찾아 이리저리 뛴다. 오디션프로그램, 서울의 대학로, 페이스북, 유튜브에서 존재를 알리려 애쓴다.

또 다른 분들도 있다. 이들은 "이번에 행사를 하려는데 좋은 아티스트 좀 소개해주세요. 참 찾기 어려워요"라고 물어온다. 두 종류 사람들이 공통으로 하는 말. "(무대가)없다. (사람이)없다". 그런데 둘 다 있다. 프라미스랜드 운영 17년 경험으로 나는 "있다"고 확신한다. 그래서 프라미스랜드 17주년 기념행사로 '프라미스 아트 페스티벌'(PAF)를 열어 연결의 장을 만들기로 결심했다.

■ 홍보·섭외, SNS와 '발품작전' 병행

스트리트댄스로 복음을 전하는 힛츠.

첩첩산중의 시작이었다. 프라미스랜드는 사실 가난하다. 공연을 기획하려면 돈이 필요한데, 뾰족한 방법은 없었다. 지난 5월 초 부산시민회관 대극장부터 대관했다. 공연날짜는 추석 직전인 9월 24, 25일. 추석 연휴 직전이지만, 뭐 그리 큰 문제가 될까 생각했다. 계약금을 입금하고 만약을 위해 500만 원 대출을 신청한 뒤 섭외에 들어갔다.

출연진 섭외는 페이스북을 많이 활용했다. 페이스북에서 공개모집을 했다. 2년 전 이보다 작은 규모로 프라미스랜드 15주년 기념행사를 할 때 인연을 맺은 기독교인 예술가와 단체가 먼저 호응해주었다. 1차로 신청한 출연진 위주로 6월 중순에 전단을 만들었다. 후원이 적어 힘들었다.

후원과 협찬 구하기는 줄곧 힘겨웠고, 재정은 늘 걸림돌이었다. 부산시민회관에 완납해야 할 대관료 170만 원을 구할 길이 없었다. 결국, 7월 24일 시민회관에 행사를 취소하러 갔다. 그런데 담당자가 휴가라 다음 주에 오라고 한다. 그게 전화위복이었는지 그사이 한 음악업체의 후원을 받았다. 힘을 얻어 8월 하순께 다시 준비에 들어갔다. 페이스북 홍보, 출연진 확정, 전단 제작, 언론 홍보, 홍보영상과 펼침막 제작, 그리고 살인적인 일정을 소화하며 교회, 선교단체, 학교, 방송국, 학원 등 50여 곳을 찾아다니며 대면 홍보에도 나섰다. SNS와 발로 뛰는 홍보를 병행하니 조금씩 반응이 온다.

이때쯤 출연진은 60개 팀, 150여 명으로 윤곽이 잡혔다. 나는 오래 품었던 생각을 실천했다. 출연진의 간명한 정보와 프로필, 전화번호, 이메일, 계좌번호가 들어간 책자를 3000부 제작했다. 내게는 이 책자가 감동이었다. 기독교 예술인들과 이들을 원하는 관객을 '연결'하겠다는 이번 공연의 기획의도를 이 책자는 상징하기 때문이다. 책자에 교통비와 식비만 제공하면 어디든 가겠다는 기독교인 아티스트들의 순정도 써넣었다. 물품을 협찬하고, 쌈짓돈 후원금을 건네고, 페이스북 보고 해외에서 후원하는 분이 조금씩 생겼다.

거의 맨손으로 '말도 안 되는' 행사를 시도한 이유는 절실한 필요 때문이다. 이번 PAF에는 일반 관객보다 문화기획자들의 관람 비율이 높았다. 이들 기획자가 지금 '원석들'을 보석으로 다듬고 있어 보람이다. 출연진 60팀의 카카오톡 단체방도 만들어 소통했다. 그러자 출연진 각자 홍보영상을 찍어 자기 페이스북에 올리고 유튜브에 띄웠다. 보도자료를 내자 적잖은 매체가 기사를 실어줘 힘이 났다.

■ 진심이 통하면 감동은 터진다

CCM 가수 김선실(왼쪽)과 우미나.

드디어 공연 첫날인 9월 24일. 전날 비가 왔다. 관객은 얼마나 올지 알 수 없다. 다만, 공연시간이 되면 즉각 시작해야 한다. 그런데 비까지. 날씨야 도와다오. 비가 와서 대극장에 에어컨을 켜면 비용이 또 수십 만 원이다. 다행히 비는 그친다. 출연진이 도착한다. 페이스북으로 섭외한 아티스트가 많아 나도 오늘 처음 만나는 출연진이 많다. SNS시대에는 이런 식으로도 공연기획이 된다. 24일과 25일 출연진은 각각 30개 팀. 팀마다 주어진 공연시간은 8분. 리허설을 해보니 아무리 애써도 4시간이 넘는다. 공연 시작을 30분 당기기로 한다.

세가지 원칙을 지키고자 했다. 출연진에게 불편함이 없는 무대를 제공한다. 음향, 조명, 영상을 최대한 받쳐줘 기량을 발휘할 수 있게 한다. 관객과 문화기획자들이 책자를 보고 언제든 자유롭게 출연진을 섭외할 수 있게 열심히 홍보한다. 6시35분. 공연 시작.

여기에 그 많은 출연진을 다 소개할 수는 없다. 원웨이(한길)의 힙합을 시작으로 길가는 밴드의 포크록, 이메이징 소울의 춤과 비보잉, 미국에서 온 성악가 부부팀 아이노스. 박은규 씨와 어린 학생 20여 명의 오카리나, 부산의 숨은 보석 디트로밴드…. 열창과 온 힘을 쏟는 연주가 이어지자 객석이 뜨겁다. 밤 10시 40분 . 4시간 5분의 첫날 공연이 마무리됐다. 한 관객은 이렇게 평해주었다. "오늘 PAF 공연의 감동은 출연진의 진심에서 나왔다."나는 울컥했다.

기획사 모리아뮤직에 소속된 예술인들.

이튿날. 어제 공연한 덕분인지 조금씩 여유가 있다. 잘 몰랐던 출연진은 서로 인사도 한다. 오늘도 30개 팀. 천재 기타리스트 박진모와 우수에 찬 싱어송 라이터 차빛나, 학교폭력 예방 메시지를 전한 극단 디아코노스, 국악선교단에서 활동하는 신새봄의 판소리, 트리니티합창단….

그리고 이런 일이 있었다. 인터넷에서 공연소식을 보고 한 분이 연락해왔다. 시각장애인 성악가 전영진 씨였다. "PAF에 꼭 출연하고 싶다." 우리 스태프는 단 3명. 시각장애인 전 선생님을 따로 모실 여력이 없다. 꼭 동행자와 함께 와 달라고 당부했다. 그런데 혼자 오셨다. 난감했다. 이때 다른 출연진이 전영진 씨를 부축하고, 안내하고, 함께 밥도 먹고…. 아름다운 모습이었다. 죽을 힘을 다해 노래하고 쓰러질 듯 무대에서 내려온 전영진 씨 말씀이 잊히지 않는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물고기에게 물이 필요하듯 아티스트에겐 무대가 필요하단 사실을 다시 절감했다.

■ 실패 뒤에 숨쉬는 성과

성공보단 실패라는 말이 어울릴 것 같다. 1300여석인 부산시민회관 대극장에 관객은 하루 300여명, 이틀 600여명밖에 들지 않았다. 큰 실패다. 추석의 영향력이 이렇게 셀 줄 몰랐다. 하지만 선은 그었다. PAF의 의미는 일회성이 아니라는 데 있다. 처음부터 지속성을 꿈꾸었다. 견고한 기존 프레임을 흔들어 균열을 만들고 기독교인 예술가들이 활동할 틈을 넓히자고 계획한 공연이다. 그러므로 새로운 시작이다. 요즘 "같이 해보자"는 연락이 계속 온다. PAF 공연 영상은 하나씩 유튜브에 오르고 있다. 이 영상은 다시 페이스북으로 공유된다.

관객에겐 무료 공연, 출연진에겐 교통비와 숙식만 제공, 총예산은 1500만 원이었다. 돈이 없어도 인맥이 아니어도 대기업 지원 없이도 원석이 보석이 되는 무대가 이곳저곳 만들어지기를 기원한다. 다양한 아티스트가 세상 끝까지 알려지는 새로운 우리들 문화를 만들자고 기도한다.

박후진 기독교 문화공간 프라미스랜드 운영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