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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6세 손경하 시인 30년 만에 두 번째 시집

'그대 홀가분한 길손으로' 출간

  • 조봉권 기자 bgjoe@kookje.co.kr
  •  |   입력 : 2015-10-21 19:02:59
  •  |   본지 2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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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경하 시인이 자택에서 두 번째 시집 '그대 홀가분한 길손으로'를 펴낸 소감과 시에 관한 생각을 들려주고 있다. 김성효 기자 kimsh@kookje.co.kr
- 1949년 최계락과 동시 입상
- 오랜 사유·체험 '노년의 진경'

예술작품의 힘은 '돌아보게 하는 힘'에서 출발한다.

작품 앞에서 자기를 돌아보게 된 감상자의 마음이 크게 움직이는 것이 감동이다. 이렇게 예술가와 향유자가 작품을 매개로 만나 영향을 주고받는 과정이 소통이고 그 열매가 공감이다.

최근 두 번째 시집 '그대 홀가분한 길손으로'(산지니 펴냄)를 내놓은 손경하(86) 시인의 부산 수영구 망미배산로 자택을 지난 20일 찾아갔다. 정갈하고 마당이 예쁜 집이다. 손 시인이 마당 감나무에서 직접 따준 붉은 감은 꼭 인상 깊은 예술작품 같았다.

1929년 경남 창원 출생인 손 시인은 마산상고를 졸업한 뒤로 줄곧 부산에 살았다.

"고등학교 다니던 1949년 영남예술제에 나가 시를 냈는데 입상자가 세 명이었어요. 이형기 최계락 그리고 저였지요." 그렇게 문학에 들어왔다.

부산대 상대에 진학했는데 상업 관련 과목은 이미 명문 마산상고에서 배워온 터였다. 그때 젊은 사자처럼 치열하고 쟁쟁했던 고석규 문학평론가(1958년 26세로 요절) 등을 만나 '신작품' '시연구' 등에서 동인으로 활동했다.

손 시인은 대학을 채 졸업하기 전부터 교편을 잡게 되면서 교육자의 길을 걸었다. "1950년대 당시 젊고 쟁쟁했던 '신작품' 동인들은 자신감이 있었고, 동인지 '신작품'에 글을 쓰면 됐지 기성의 등단 절차를 밟을 필요가 있겠느냐고 생각들 했죠. 저 또한 별다른 등단 절차 없이 현대시학 등에 글을 쓰면서 시의 길에 섰지요." 지금 돌이켜 보면, 지역 문단 청년들의 기개가 당당했다.

1985년 첫 시집 '인동의 꿈'을 낸 뒤로는 '시인 손경하'보다는 '교장 손경하'로 더 널리 알려진 삶을 살았다. 첫 시집 뒤 30년, 21년 전인 1994년 교직에서 은퇴하고 꽤 긴 시간이 지나고서야 그는 두 번째 시집으로 돌아왔다.

시집 '그대 홀가분한 길손으로'에 실린 시는 노년의 진경을 보여준다. 시어는 명징하다. 작품들은 오랜 묵힌 사유와 삶의 체험을 다 갖췄다. 그러므로 노년에 이르러서야만 할 수 있을 대범한 시상 전개와 함께 진실함이 살아있다. 이 시를 노년층 독자가 읽는다면, '나도 시를 써서 내 인생을 돌아봐야겠군' 하고 마음먹게 되리란 생각이 들 만큼 수록 작품은 묵직한 호소력이 있다.

치매를 그린 '미아'는 인상 깊다. 삶의 체험과 오랜 생각에서 나왔다. '컴퓨터 바이러스가 / 입력된 기억을 망가뜨리듯 / 불명의 촉수로 / 인간은 하루에도 / 재생 불능의 뇌신경세포가 / 10만 개나 / 미세한 거품 꺼지듯 / 죽어간다고- / 그러니 / 평생을 / 꿀벌처럼 축적한 우리들의 기억도 / 황폐화할 수밖에…입력 불능의 생소한 현재의 / 그 단절된 회로 사이를 / 뒷걸음치며 / 홀로 배회하는 / 늙은 미아-'(부분)

'반딧불이'는 오래된 날들과 오늘과 미래가 함께 숨쉰다. '산골짜기서 내려온 어둠이 / 마을에 그득 실린다 / 무자치가 지나간 무논에 / 별들이 눈을 비비는 동안 / 개구리 울음이 잠시 / 아득해진다…그들은 지금 / 다 어디 갔을까'(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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