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를 담은 사찰 밥상'(이경애 지음)에 소개된 영월 금몽암 우거지 빡빡된장. 조계종출판사 제공

바람이 이젠 제법 차가워졌다.

며칠 전 서울에 볼일이 있어 갔다가 인사동에 있는 솥밥집을 찾아가게 되었다. 평상시에 밥의 양이 그리 많지 않은 내게 그 솥밥집은 양이 조금은 많은 걸 알면서도 왠지 그 날은 따끈한 밥 한 그릇 먹어야 마음이 따뜻해질 것 같은 느낌이었다.

대학 때부터 가끔 들렸던 그 밥집은 이십여 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똑같은 밥맛으로 가끔 추억 속에서 나를 찾아보기에도 좋고, 추억 속에서 어머니께서 지어주시던 그 밥맛을 느끼기에도 모자람이 없다. 그래서 필자에게는 추억의 장소이기도 하다.

언젠가 TV 드라마를 잠깐 보는데 이런 장면이 나왔다. 두 사람의 음식 경연자가 음식으로 대결을 시작했다. 한 사람은 맛을 내기 위해 애썼다. 한 사람은 음식을 만들고 있었으나 과거에 그 음식에서 위로받았던 그 느낌, 어떤 일에 실패해서 실의에 빠졌을 때 어머니가 해주신 그 음식을 먹고 위안을 느낀 그 느낌 그대로 음식을 만들고 있었다.

당연히 승리는 추억의 음식을 만든 사람이 차지했다.

나 또한 어린 시절 꽁꽁 언 항아리에서 금방 꺼낸 얼음 박힌 동치미의 맛을 잊지 못한다. 된장 풀어서 파 몇 조각 두부 몇 개 넣고 할머니가 설렁설렁 끓여주셨던 어느 여름날의 된장찌개의 맛을 잊지 못한다. 시험 치러 가는 날 아침 어머니께서 싸주신 도시락의 맛을 잊지 못해 몸이 아프거나 마음이 아플 때 문득문득 떠오르는 음식 중의 하나가 바로 그 도시락이다.

그리고 그것은 과거가 아니라 여전히 현재가 되어서 내 지친 마음에 힘을 주곤 한다.

은사 스님께서 돌아가시기 얼마 전이었다. 은사 스님께서 알고 계시는 절을 찾아가 하룻밤 묵게 되었다. 날씨도 추웠고, 어른을 모시고 가는 길이 조금은 힘들었지 싶다. 마침내 절에 도착했을 때 막 나온 저녁 공양상에 올려진 것은 토란탕이었다.

아무 생각 없이 한 숟갈 떠서 입에 넣는 순간 눈물이 핑 돌았다.

별스럽게 맛을 느껴서가 아니었다. 미끈한 토란에 들깨 갈아 넣은 탕이 이십 대의 젊은 필자가 느끼기에는 밋밋한 맛이었다. 그런데 한 숟갈 떠먹고 또 떠먹을수록 가슴이 따뜻해지고 배가 따뜻해지고, 마지막에는 마음이 따뜻해지면서 이유 없는 눈물이 핑 돌았다. 좋은 음식이란 것은 그런 것이었다.

몸을 녹이고 마음을 녹이는 그래서 마음에 뭉쳐진 응어리도 녹이는 것이었다.

학창시절 밥을 나눈다는 것은 영혼을 나누는 일이라 여겼다. 그래서 나는 누구와 밥을 먹는 일을 잘 만들지 않았고, 지금도 의무적으로 밥을 먹는 자리는 조금 불편해 누구와 밥 먹자는 약속을 선뜻 하지 못했다.

그런데 아침저녁 찬바람이 옷깃을 여미게 하는 요즘 따뜻한 음식을 볼 때면 누구든 그 따뜻함을 함께 나누고 싶은 생각이 드는 것은 왜일까.

마음도 조금은 서늘해지는 때 마음 녹이는 음식 하나쯤 만들어서 서늘한 그 마음 녹여줄 사람 앞에 놓아준다면 내 마음이 먼저 따뜻해질 것 같다.

대운사 주지·복합문화공간 쿠무다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