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부산메디클럽

[리뷰] '산이 울다'

여성으로 살기, 共生의 윤리학

  • 국제신문
  • 디지털뉴스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5-10-08 19:09:20
  •  |  본지 12면
  • 트위터
  • 페이스북
  • 기사주소복사
  • 스크랩
  • 인쇄
  • 글씨 크게
  • 글씨 작게
   
1948년. 중국의 한 산골 마을에서 사고가 벌어진다. 오소리를 잡기 위해 놓은 덫에 외지 출신의 주민 라홍이 죽게 되자, 마을의 장로들은 공안의 귀에 들어가지 않게 사건을 은폐하고 미망인 홍시아에게 배상하는 선에서 마무리 짓고자 한다. 덫을 놓은 청년 한총은 사고의 책임을 지고 배상금을 마련할 때까지 홍시아의 가족을 돌봐주게 된다. 가족처럼 친해진 두 사람의 사이에는 차츰 내밀한 감정이 피어나지만, 죽은 라홍을 찾는 공안의 손길이 가까워져 오자 주민들은 마을의 안위를 핑계로 홍시아를 쫓아내려 한다.

래리 양 감독의 '산이 울다'는 세 갈래의 축을 엮은 이야기이다. 2005년 노신문학상을 수상한 거쉬핑의 동명 소설을 영화화한 이 작품은 철없는 청년 한총이 한 사람의 성인이자 가장으로서의 책임감에 눈뜨게 되는 성장의 드라마인 동시에 범죄자 남편의 학대에 자기 삶을 통째로 뿌리 뽑힌 여성이 사랑과 행복, 삶의 주도권을 찾아가는 치유의 멜로이며, 마을 전체의 안위라는 명목하에 두 사람의 관계를 허락하지 않고 집단 밖으로 내몰려는 촌락 공동체의 집단 이기주의에 대한 사회학적 관찰이기도 하다.

목소리를 잃은 홍시아의 모습은 남성 중심의 가부장적 윤리가 지배하는 가운데서 여성이 처하게 되는 억압적 상태를 단번에 함축한다. 남편에 대한 원한은 주변을 둘러싼 마을 주민의 관점에서는 미쳐버린 거로 오독되며, 한총과의 관계 역시 마찬가지로 오인된다. 여성이자 장애인에 과부라는 입지를 이중삼중으로 홍시아의 처지에 겹치게 하면서 '산이 울다'는 성차별의 논리가 근본적으로 소수자 혐오와 동일한 전체주의의 맥락에 닿아있다는 일리(一理)를 놓치지 않는다.

한총의 존재는 그런 홍시아의 불우에 비친 작은 구원이자 '산이 울다'가 제시하고자 하는 대안을 잘 보여주는 점일 것이다. 마을 주민이 공유하는 편견과 선입견에 물들지 않은 한총의 '철없음'이 여성으로서 입어야 했던 홍시아의 상처를 이해하게 하고, 언어 장애인으로서 잃어버린 타자와의 소통과 교감을 회복게 하는 공생의 능력으로 발현된 것이다. '산이 울다'는 페미니즘의 윤리학을 통속적 멜로드라마에 매끄럽게 봉합하며 대중성과 작품성 모두를 놓치지 않는 균형감을 보여준다. 페미니즘에 대한 오해, 소수자에 대한 사회적 혐오가 인종차별 수준으로 치달아가는 오늘날의 세태로 미뤄 볼 때 이 영화가 시사하는 바는 결코 작지 않을 것이다.

20주년을 맞이하는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단연 돋보이는 현상은 중화권 영화의 약진일 것이다. 허우샤오시엔의 '자객 섭은낭'이 무협영화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 주목받았고, 지아장커는 신작 '산하고인'으로 다시 부산을 찾았으며, '갱스터의 월급날'이 폐막작으로 선정되었던 지난해에 이어 '산이 울다'로 열흘에 거친 영화제의 막을 내리게 되었다. 중화권 영화가 보여주는 장르의 다양성, 표현의 참신성, 주제의 심도에서 상업성 중심으로 몰려 균형을 잃은 한국영화의 현재를 진단하는 계기를 찾았으면 한다. 

조재휘 영화평론가


[국제신문 공식 페이스북] [국제신문 인스타그램]
  • 기사주소복사
  • 스크랩
  • 인쇄

건강한 부산을 위한 시민행동 프로젝트
많이 본 뉴스 RSS
  • 종합

  • 정치

  • 경제

  • 사회

  • 스포츠

해양문화의 명장면
조선 전기에도 통신사가 있었다
정두환의 공연예술…한 뼘 더
‘사람이 먼저’인 문화환경을 생각한다
국제시단 [전체보기]
어둠이 내릴 때 /박홍재
단풍 들어 /정온
글 한 줄 그림 한 장 [전체보기]
코 없는 사람
인공지능과 공존하는 미래를 위하여
리뷰 [전체보기]
경계인 된 탈북여성의 삶, 식탁·담배·피 묻은 손 통해 들춰
방송가 [전체보기]
MC 이휘재 vs 성시경 ‘미식여행’ 승자는
위기 이겨낸 기업…비법은 직원 기살리기
새 책 [전체보기]
사랑은 죽음보다 더 강하다 外
마거릿 대처 암살 사건(힐러리 맨틀 지음·박산호 옮김) 外
신간 돋보기 [전체보기]
자살에 이르게 한 심리흔적
현실에서 음악가로 산다는 것
아침의 갤러리 [전체보기]
무자연(舞自然)-점화시경, 장정 作
木印千江 꽃피다-장태묵 作
어린이책동산 [전체보기]
31가지 들나물 그림과 이야기 外
아이가 ‘다름’을 이해하는 방법 外
이 한편의 시조 [전체보기]
샛별 /정애경
가을산 /이성호
이기섭 8단의 토요바둑이야기 [전체보기]
제35기 KBS바둑왕전 준결승전
2016 이민배 본선 4강전
이원 기자의 Ent 프리즘 [전체보기]
허세 대신 실속 ‘완벽한 타인’ 배워라
봄여름가을겨울, 음악과 우정의 30년
조재휘의 시네필 [전체보기]
암수살인과 미쓰백…국민 국가의 정상화를 꿈꾸며
상업영화 후퇴·독립영화 약진…‘뉴시네마의 여명’
책 읽어주는 남자 [전체보기]
가슴에 담아둔 당신의 이야기, 나눌 준비 됐나요 /정광모
가족갈등·가난, 우리 시대 청춘들 삶의 생채기 /박진명
책 읽어주는 여자 [전체보기]
눈물과 우정으로 완성한 아이들 크리스마스 연극 /안덕자
떠나볼까요, 인생이라는 깨달음의 여정 /강이라
현장 톡·톡 [전체보기]
지역출판 살리려는 생산·기획·향유자의 진지한 고민 돋보여
‘영화철학자’ 잉그마르 베르히만의 패션·예술 유산 한곳에
BIFF 리뷰 [전체보기]
알폰소 쿠아론 감독의 '로마'
퍼스트맨
BIFF 인터뷰 [전체보기]
‘렛미폴’ 조포니아손 감독, 마약중독에 대한 인간적 접근…“그들도 결국 평범한 사람이에요”
감독 박배일 '국도예술관·사드 들어선 성주…부산을, 지역을 담담히 담아내다'
BIFF 피플 [전체보기]
‘국화와 단두대’ 주연 배우 키류 마이·칸 하나에
제이슨 블룸
BIFF 현장 [전체보기]
10분짜리 가상현실…360도 시야가 트이면 영화가 현실이 된다
BIFF 화제작 [전체보기]
‘안녕, 티라노’ 고기 안 먹는 육식공룡과 날지 못하는 익룡의 여행
묘수풀이 - [전체보기]
묘수풀이 - 2018년 11월 14일
묘수풀이 - 2018년 11월 13일
오늘의 BIFF [전체보기]
오늘의 BIFF - 10월 9일
오늘의 BIFF - 10월 8일
이기섭 8단의 바둑칼럼 [전체보기]
제 5회 대주배 남녀 프로시니어 최강자전
제 5회 대주배 남녀 프로시니어 최강자전
정천구의 도덕경…민주주의의 길 [전체보기]
致虛守靜
陶冶而變化
걷고 싶은 부산 그린워킹 홈페이지
국제신문 대관안내
스토리 박스

무료만화 & 게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