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명관 잡문집 '이 외로운 사람들아'에 실린 들판 사진. 백성의 삶터이다. 천년의상상 제공

- 유가는 정치요 이웃사랑이다
- 공자·맹자 말은 배려심이다
- 강명관 교수 잡문 형식 빌려
- 세상의 이치·도리 엄히 따져

그러려고 했던 것은 아닌데 하다 보니 이 책을 집에 가져가서 읽게 되었다. 방에 들어가서 책을 펼치기 전에 버릇처럼 TV부터 켰다. 불교TV에서 어떤 큰스님의 법문을 방송하고 있었다.

그렇게 책을 편 지 한 시간쯤 지난 뒤 문득 깨달았다. 책을 읽는 동안 TV에서 나오는 소리를 전혀 느끼지 못했다는 사실을.

그 순간에도 줄곧 법문을 하고 있었던 큰스님께는 죄송한 일이지만, 그만큼 인문학자 강명관(부산대 한문학과) 교수의 '잡문집' 이 외로운 사람들아는 읽는 사람을 강하게 빨아들였고, 묵직했고, 거침없었다. 글 자체도 간결하고 아름답다.

이름난 고전학자인 저자가 읽고 공부한 조선시대 옛글을 바탕으로 자기를 돌아보고, 이웃을 생각하며, 세상의 이치와 도리를 따진 책이 '이 외로운 사람들아'이다. 맹자와 다산이 인용한 시경의 구절 '부자들이야 괜찮겠지만, 이 외로운 사람들이 불쌍하구나'에서 제목을 따왔다.

강명관 교수

"성인의 예법 운운하면서 번문욕례(繁文縟禮)를 지껄이고, 왈리왈기(曰理曰氣) 따위의 애매한 언사를 늘어놓는 것은 유가가 아니다. 유가는 곧 정치고, 그 정치가 우선 배려하는 대상은 사회적 약자다. 늙어서 아내가 없는 삶, 늙어서 남편이 없는 삶, 늙어서 자식 하나 없는 삶, 어려서 부모가 없는 삶을 상상해보라."('이 외로운 사람들아' 중)

"공자와 맹자는 '이'와 '기'를 결코 말하지 않았다. 그들이 입이 닳도록 말한 것은 타인에 대한 배려심과 백성을 착취하지 않고 물질적으로 풍요하게 만들어주는 정치였다.…이쯤 되면 성리학은 이미 공자, 맹자가 말한 유학의 본래 정신에서 3만8천 리나 떨어진 것이 되고 만다. 홍길주(정조 시대의 선비)가 보았던 19세기 성리학은 유교의 정신을 배반한 것이다."('19세기 성리학의 본말' 전도 중)

그가 '친구 아무개 목사에게 예수 믿기를 권함'이라는 제목으로 쓴 글은 몸집은 비대해지고 정신은 앙상해진 일부 거대 종교기관과 종교인을 절실한 마음으로 깨우쳐 주려 한다. '그 교수전(傳)'이란 글은 저자 자신이 몸 담은 대학사회를 아픈 마음으로 돌아보고, 지극히 진솔한 언어로 냉엄하게 비판한다.

이 책을 처음 접했을 때는 '강명관 잡문집'이라는 제목만 보고 슬쩍 밀쳐뒀던 게 사실이다. 그간 이런저런 인사가 내는 잡문집 성격의 책을 보면서 '잡문'이란 낱말에 선입견이 생겼기 때문이다. 그랬는데, 이 책의 머리말을 보면서 그런 인식이 와장창 깨져나갔다.

"이 잡문들은 내가 작정하고 쓰는 논문이나 책과 다를 것이 없다. 논문은 논문의 형식으로, 책은 책의 형식으로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는 것이고, 잡문은 잡문의 형식을 빌려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는 것일 뿐이다. 그러니 본질적으로 다를 것은 없다. 아니, 다르다고 한다면 그야말로 분열증이 아니겠는가?"

제대로 된 학자라면 종류를 가리지 않고 모든 글이 좋아야 한다. 논문은 열심히 쓰고, 잡문은 살살 쓴다면 그건 엉터리다.

그런 점에서 '이 외로운 사람들아'는 고전인문학자인 저자가 그간 펴낸 날카롭고 깊은 단행본·논문과 형식만 다를 뿐 똑같이 깊다. 한가위를 맞아 '진국 같은' 책을 읽고자 하는 독자에게 주저 없이 권할 수 있다. 정치인에게는 더욱 권하고 싶다.